기업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는 '이윤의 극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그렇지 않은 기업과 기업가들이 있습니다. 기업 설립의 목적도 '돈'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 있습니다. 감히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고 말하는 사람들, 지금부터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
"요즘은 스팸 댓글처럼 보이지 않는데, 스팸 댓글인 경우가 많아요. 저는 매일 밤, 그 댓글들을 지우고 있고요."스팸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는 서희선(25)씨가 말했다. 그녀는 2년째 스팸 댓글 지우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의 업무 시간은 오후 8시 40분부터 다음날 새벽 3시 20분까지. 업무는 집에서 이루어진다. 늦은 시간 일하지만,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재택근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뇌성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다. 장애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일을 하고 싶었던 서씨는 서울시 일자리센터에 문의했다. 그곳에서 소개해준 곳이 바로 그녀가 지금 일하고 있는 '시지온(CIZION)'이다.
IT는 장애인에게 새로운 기회
시지온에 처음부터 장애인들이 함께했던 것은 아니다. 시지온은 소셜 댓글 '라이브리'를 개발하면서, 스팸 댓글 모니터링 작업을 할 직원이 필요했다. 처음 규모가 작을 당시에는 모니터링 업무를 회사 직원들이 번갈아가면서 했다.
그런데 회사 규모가 커지고 댓글 수가 증가하면서, 스팸 댓글 모니터링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인력이 필요했다.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이 적당할 지 고민하다가 '장애인을 고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업무 난이도도 장애인 인력에게 적당했다. 무엇보다 시지온이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의 미션에도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김범진(28) 시지온 대표는 지난 3월 28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IT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분들의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라면서 "시지온은 모니터링 사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부터 장애인 일자리를 생각했다, 본인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고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 모니터링 고용은 시지온이 '지역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시지온은 현재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 '지역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예비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 실현, 영업활동을 통한 수익창출 등 사회적 기업 인증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요건을 갖추고 있으나 수익구조 등 일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기관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하여 장차 요건을 보완하는 등 향후 사회적 기업 인증이 가능한 기관을 말한다.)
현재 시지온에는 서씨와 같은 장애인 5명이 재택근무를 하며 스팸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하고 있다. 시지온은 2009년 9월 아시아 최초로 소셜 댓글 '라이브리'를 개발한 IT 벤처기업이다. IT계 '1호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소셜 댓글 프로그램 라이브리는 악성·스팸댓글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라이브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로 특정사이트 게시판에 댓글을 달면 본인의 댓글과 게시판 링크가 본인의 SNS로 유통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SNS 아이디로 로그인 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라이브리 댓글은 자동으로 자신의 SNS에 공유되기 때문에 악성댓글이나 스팸댓글을 작성하기 힘들다.
지인들이 지켜보는데 근거없는 말이나 욕설이 담긴 댓글을 올리긴 쉽지 않다. 실제로 라이브리를 도입한 기업, 공공기관, 언론사 등은 사이트 방문자 수와 페이지뷰 증가, 스팸·악성댓글 감소 등의 효과를 얻었다.
현재 라이브리는 서울시, 삼성, KBS, IBK 기업은행, 유니세프 등 고객사 450여 곳의 홈페이지에 깔려있다. 라이브리는 개인도 사용할 수 있다. 개인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며, 블로그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2012년 12월 기준 누적 사용자 800만 명, 월 평균 페이지뷰(PV) 20억 건을 기록했다.
연예인 자살 계기로 시작.. 지금은 어엿한 '기업' "사회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 기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사를 시작했다."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 시지온은 악성댓글이라는 사회적 이슈 때문에 시작됐다. 2007년 연예인들이 악성댓글로 인해 자살을 하자, 악성댓글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악성댓글은 쉽게 줄지 않았다.
김 대표와 그의 친구들은 악성댓글이 방치해서는 안 될 사회적 문제이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우리라도 해야겠다' 생각해 악성댓글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시지온이 현재는 어엿한 기업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대학생들이었다. 시작할 때는 학교의 도움을 받았다. 학교의 창업 지원단 내에서 서비스 개발을 시작했다. 그들은 라이브리를 개발했지만 난관은 끝나지 않았다. 자본금도 없는데다가 서비스 사용처를 쉽게 찾지 못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사용처를 직접 찾아다녔다. 악성댓글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가 "서비스를 사용해 달라"고 말했다. 주 고객은 언론사나 정치인들이었다. 직접 찾아다닌 결과 서비스를 사용하겠다고 하는 곳들이 일부 생겼다.
학자금 대출로 직원들 월급 줬지만 이제는...조금씩 고객을 늘려갔다. 회사 창립 초기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사업 경험이 없어서 기업의 모습을 갖추기까지가 어려웠다, 수익 모델을 갖추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어려움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직원 월급 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초반에는 자본금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는 사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창립멤버들은 알바하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직원들 월급을 해결했다. 자신들은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녔다. 마땅한 수익이 있기 1~2년 전까지는 이런 생활이 반복됐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이윤은 라이브리 설치 운영비용을 받으며 발생시키고 있다. 3명의 창립멤버로 시작했던 시지온은 현재 총 직원 26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6개의 부서에서 서비스 개발·기획, 사업전략, 재무·회계, 모니터링 등을 각각 맡고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미션 수행에도 쉬지 않고 있다. 2011년 5월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쾌적한 인터넷 환경을 만들기 위한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아인세)' 댓글 캠페인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선플달기운동본부와 MOU(양해각서, 서로에게 일정기간동안 우선협상권을 부여, 배타적인 협상을 한다는 약속)를 체결하고 미국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를 위한 추모댓글 달기 '글로벌 선플 캠페인'도 진행했다. 이 캠페인에서는 총 5000여 개의 댓글이 모였다. 댓글들은 추모 선플집으로 발간되어 지난 3월 성김 주한미국대사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현재 시지온은 일본, 미국, 중국 등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 김 대표는 "시지온이 '소셜 댓글'을 넘어선 '소셜 인프라'가 되고자 한다"며 "악성댓글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업이 탄생된 만큼 댓글 캠페인이나 글로벌 선플 캠페인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시지온. 그들의 목표는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잘 만들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좋은 제품은 '더 많은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IT계의 1호 사회적 기업 시지온, 앞으로 사회에 뿌려질 그들의 '긍정 에너지'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