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 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40년 넘는 세월 제주도는 저에게 머나먼 섬이었습니다. 내 의식의 안쪽에 전혀 들어올 수 없는 교과서와 지도 속의 섬. 나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제주도에 갔습니다. 1996년이었나 봅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서 나는 처음으로 열대의 나무들이 거기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육지에서는 본 적 없던 커다란 야자수 잎사귀. 펄럭이는 그 잎사귀의 크기만큼이나 신선한 모습으로 제주도는 나를 받아 주었습니다.
제주의 풍광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뭐 그리 대수가 될 순 없었습니다. 다만 나는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자연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지요. 열대 식물과 현무암의 검고 성근 바위들, 오름, 한라산,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에 내 눈은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녔던 나는 4·3의 이야기를 들었고 저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은 핏빛 그림자가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함께 가지고 수학여행을 다녀야 했습니다. 제주 인구의 몇 분의 일이 죽었다느니 뭐니 하는 그 기록들을 읽으며 현대사의 뒷면을 감추어 왔던 폭력의 시대와 그 힘들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했던 교사의 입장에서 나는 차라리 아이들의 눈과 몸짓을 따라다니며 즐겁게 제주를 받아들였습니다. 파도와 바람과 돌과 야자수 나무, 어쨌든 제주의 첫 얼굴은 풋풋한 열대의 이미지로 싱그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충북과 제주가 문화예술 교류를 하게 되어 두 번째 제주도를 찾게 되었습니다. 제주의 두 번째 얼굴이 참혹하게 다가왔습니다. 4·3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었고, 아직도 50년 전 기억을 쉽게 드러내지 않거나 상처의 흔적을 몸에 지닌 채 두려운 눈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김수열 시인과 함께 걸었던 길가의 현무암에 난 많은 구멍들은 마치 총탄의 흔적이라도 되는양 깊고 어두웠습니다. 교사이자 함께 문단에 적을 둔 시인이라는 동질감에 김수열 시인께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던 시간, 제주의 바람이 다르게 나를 감싸 안았습니다.
4·3의 상처 딛고 건강하게 살아가던 모습은 어디로...제주 사투리를 그대로 쓰면 육지 사람들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언어적 차이가 존재했던 섬. 어쩌면 제주는 육지로부터 받은 혜택보다는 육지가 앗아간 흔적만 가득한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지의 권력이 필요할 때만 써먹는 땅. 광해군, 송시열, 김정희 등 200명이 넘은 유배자들이 머물거나 죽은 땅.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이 죄목을 뒤집어쓰고 버려지던 땅. 상처의 극점에 4·3이 있었던 듯했습니다.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과거는 과거인 채로 거기 지금 그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가왔습니다.
세 번째 얼굴은 다시 싸움이었습니다. 2011년 여름이었습니다. 제주의 평화가 너무 길었던 걸까요. 이번에는 작가회의 사람들과 강정을 찾았습니다. 관광 자원이 그나마 힘이 되어 육지 사람들의 휴식처로 즐거움을 제공하고 그냥 제주가 제주 자신이었던 날은 얼마인가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지난한 과정을 거처 4·3의 현장에 국가의 대통령이 찾아와 공식 사과를 하고 4·3기념공원까지 세운 이후, 제주가 제주 스스로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안온했던 기간은 그리 오래갈 수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강정 마을은 외부와 싸우고 또 내부 사람들끼리도 싸우고 있더군요. 오히려 4·3 때는 모두가 하나였는데 이젠 동네 사람들까지 나뉘었다며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진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외부와의 싸움도 있었지만 내부의 싸움 한편에는 자본의 욕망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 어떤 외부의 힘보다 강력한 독재자가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군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강정의 구럼비가 폭파되는 현장 사진을 보며 앞으로 내가 찾아가야 할 제주는 어쩌면 이미 제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네 번째 제주 여행을 가야 하는 걸까요.
덧붙이는 글 | 김성장 시인 : 1988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창작 활동 시작. 시집 <서로 다른 두 자리>, 해설서 <선생님과 함께 읽는 정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