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대체 '강성'이란 게 무슨 말이냐. 이번 노조 집행부 뽑을 때, 지원자가 없어서 선관위였던 사람들이 (후보로) 나왔다. 근데 무슨 강성노조냐."

9일 오후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의료원. 1층 로비 농성장 한쪽에 앉아 있던 박아무개(41·보건직·15년 근무)씨가 말했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하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노조 때문에 병원이 문을 닫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폐업 불가피합니다>란 소책자에서도 "진주의료원은 강성노조의 해방구"라며 "폐업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1999년 파업기간 중 노조가 원장을 약 6시간 동안 감금·폭행했다'며 '강성노조'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노조가 원장 때렸다?... "볼펜으로 찌른 게 폭행·감금이냐"

 1999년 8월 10일자 <경남도민일보>. 노조가 진주의료원장을 때린 게 아니라 원장이 노조 조합원들을 폭행했다고 보도했다.
 1999년 8월 10일자 <경남도민일보>. 노조가 진주의료원장을 때린 게 아니라 원장이 노조 조합원들을 폭행했다고 보도했다.
ⓒ 진주의료원 노조

관련사진보기


당시엔 계약직이던 박씨는 노조 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는 "계약직 신분이라 오히려 병원 쪽에 가까웠다"며 그때 상황을 전해줬다.

"노조가 원장실 앞에서 농성 중이었지만, 출입을 막고 있지 않았다. 원장이 그냥 안에 계속 있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와서 노조와 언쟁을 벌였다. 흥분한 상황에서 원장이 조합원 한 명을 발로 찼나, 밀쳤나. 아무튼 충돌이 있어서 화가 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따졌다. 간호사들이 많았는데, 몇몇이 볼펜으로 그를 쿡쿡 찌르긴 했다. 그게 무슨 감금이고 폭행이냐. 그리고 노조가 어떻게 원장을 때릴까, 나중에 무슨 말을 들으려고."

실제로 1999년 8월 10일자 <경남도민일보>에는 '진주의료원장, 노조원 폭행'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전날 진주의료원은 수간호사 7명 전원 등 42명의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노조는 '전례 없는 대규모인데다 편파적'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강대영 원장과 조합원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강 원장이 간호사 10여 명을 주먹과 발로 폭행했다. 당시 현장을 직접 취재한 정성인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4월 11일자 '14년 전, 폭력 휘두른 이는 의료원 원장이었다'란 기사에서 "'노조원이 원장을 감금·폭행'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규모 지방의료원들, 적자·인건비율 얼마나 다를까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상황의 모든 주범은 노조'라며 내세우는 또 다른 근거는 '인건비'다. 경남도는 줄곧 "과도한 인건비가 적자의 주요인이며 폐업 이유"라고 말해왔다. 2012년 단기순손실만 69억원 발생했는데도 그해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율이 82.8%에 달했다는 것이다. 홍준표 지사는 지난달 18일 "이대로 방치한다면 노조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병원을 저당잡혀야 한다"고도 말했다.

전국에는 34개의 지방의료원이 있다. 보건복지부 지역거점병원종합정보시스템에서 2011년 통계를 확인한 결과, 이 가운데 300병상이 넘는 곳은 진주의료원(320병상)과 서울의료원(500), 부산의료원(497), 대구의료원(494), 청주의료원(495), 홍성의료원(432), 군산의료원(430), 남원의료원(350) 등 8개다. 

이곳들을 2011년 한 해 손실액이 큰 순서대로 줄을 세우면 1위는 149억 1100만 원 적자였던 서울의료원이고, 진주의료원(62억 7700만 원)은 2위였다. 나머지 6곳 가운데 청주의료원과 홍성의료원이 흑자를 내긴 했지만 평균은 마이너스 38억 9700만 원이었다. 지방의료원 전체 평균을 따져봐도 적자(19억 400만 원)로, 상당수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인건비 문제 역시 유독 '진주의료원만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제주의료원의 경우 2011년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율이 101.6%였다. 그 다음으로는 강릉의료원 95.1%, 속초의료원 86%순이었다. 진주의료원은 77.6%로 8위였지만, 지방의료원 2곳 중 1곳은 의료수익의 70% 이상을 인건비로 쓰는 상태였다.

2008년 신축 후 환자 줄어... "주변 병원보다 월급도 적다"

진주의료원 노조 조합원들은 또 "병원 수입이 적은데 당연히 인건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103년 전, 진주시 중안동에 들어선 진주의료원은 2008년 초전동으로 이사했다. 지하 1층, 지상 8층짜리 새 건물을 짓고 최신 장비도 들였다. 그런데 시내 한 가운데였던 중안동에서 15분쯤 떨어진 초전동은 시 외곽에 속하는 지역이다. 병원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노선도 없었다.

자연스레 외래 환자가 줄었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만난 한 70대 여성은 "지난해에야 (진주의료원으로 가는) 버스가 새로 생겼는데, 나만 해도 이전에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한동안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진주점에서 만난 30대 여성 역시 "시내에 있을 땐 자주 갔는데, (옮긴 후엔) 아무래도 멀어서 가까운 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럼 진주의료원 직원들은 병원 사정이 나빠졌는데도, 경남도 주장처럼 "동급 민간병원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일까? 6년차 보건직 직원 김아무개씨는 자신의 3월 급여명세서를 직접 보여주며 "다른 병원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 세금과 국민연금 등을 제하고 난 실수령액은 151만 4770원. 김씨는 그마저도 지난해 7월부터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진주 ㄱ민간병원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씨의 지인은 매달 기본 180만 원에, 격월로 보너스도 받고 있다. 명절 상여금도 월급의 절반 가량 나온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2009년부터 계약직으로 일하며 월 210만 원 정도 받던 김씨의 선배는 4월부터 정규직이 됐다. 급여도 40만 원 정도 올랐다.

"적자·부채 핵심적 이유는 신축 이전... '노조탓' 논리 궁색"

정백근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진주의료원의 적자와 부채가 늘어난 핵심적 이유는 신축 이전 때문"이라며 "차입 형식으로 신축 비용을 조달한데다 진주 동쪽 변두리로 병원을 옮기면서 경영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또 "임금이 하나도 안 늘어도 수익이 떨어지면 인건비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경남도가) '노조에 다 책임이 있다"고 하는 말은 어처구니 없다"고 했다. '평균 임금'을 바탕으로 '진주의료원은 고임금 구조'라는 경남도의 주장 또한 "진주의료원은 근무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고 반박했다. 민간병원보다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는 만큼 경력 많은 직원 비중이 높고, 그들로 인해 평균 임금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처음에는 적자와 부채가 폐업 근거라고 했다가 지금은 노조 탓만 하는데, 신축 이전 결정은 경남도가 했고 도 공무원들이 관리감독을 이유로 병원에 상주했다"며 "(경남도의 주장은)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논리가 매우 궁색하다"고 비판했다.


#진주의료원#홍준표#공공의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