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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안녕하세요, 오정인(가명·여·42)입니다. 저는 1년 전 Z와 이혼해서 지금은 아들(10)과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혼을 원한 건 결코 아니지만, 아들과 함께하는 지금도 행복합니다.

왜 이혼했냐구요? 결혼 7년 만에 Z에게 새 여자가 생겼더군요. 원래 서로 애정도 많지 않았던 터라 담담하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혼 조건은 재산을 반반으로 나누고, 아이는 제가 키우는 대신 Z는 양육비를 지급하고 월 2회 주말에 아이와 만나기로 하고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를 못 만나게 할 수는 없나요.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인데요.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 Z의 얼굴을 보는 게 싫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잘 생활하다가도 아빠를 만나고 온 다음에는 고집을 부리고 생활도 흐트러져서 키우기 힘드네요. 그리고 Z가 아이에게 엄마 때문에 이혼했다는 둥 제 험담을 자주 하나보더라고요. 양육비를 안 준 지도 몇 달 되었고요.

만나면 아이에게 나쁜 얘기하고, 양육비도 제때 주지 않는 아빠도 아들을 만날 자격이 있나요. 더 이상 아이와 못 만나게 하고 싶어요. 

면접교섭권, 부모의 권리이자 자녀의 권리

 아이가 아빠를 못 만나게 할 수는 없나요.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인데요.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 Z의 얼굴을 보는 게 싫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잘 생활하다가도 아빠를 만나고 온 다음에는 고집을 부리고 생활도 흐트러져서 키우기 힘드네요
아이가 아빠를 못 만나게 할 수는 없나요.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인데요.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 Z의 얼굴을 보는 게 싫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잘 생활하다가도 아빠를 만나고 온 다음에는 고집을 부리고 생활도 흐트러져서 키우기 힘드네요 ⓒ SCX

이혼과 자녀 문제 3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면접교섭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을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무척 많이 들은 얘기인데요, 여러분도 그런가요. 무조건 참고 사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만 이혼을 하건 안 하건 부모로서 할 일은 해야겠지요.   

이혼해서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는 부모(비양육친)도 여전히 아이의 엄마 또는 아빠입니다. 따라서 아이를 키우는 쪽(양육친)도 부모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권리가 면접교섭권입니다.

민법 837조의2(면접교섭권)
① 자를 직접 양육하지 아니하는 부모의 일방과 자는 상호 면접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면접교섭권이란 이혼 후 자녀를 키우지 않는 부모가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권리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좀 더 거창하게 설명하자면 비양육친이 자녀와 상호면접, 교통, 방문, 숙박, 서신 교환 등을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법원은 판결을 통해 면접교섭권은 권리뿐 아니라 의무의 성격도 갖는다고 봅니다. 또한 "자녀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비양육친은 정기적으로 교섭하고 양육친은 자녀들을 원활히 면접교섭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서로 협조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면접교섭은 통상 비양육친과 자녀가 매달 1~2회 정도 당일 또는 1박 2일간 만나고, 여름·겨울방학, 명절 등에도 며칠간 따로 만날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정합니다.

면접교섭권은 천부적인 권리... 쉽게 제한해선 안돼

만일 부부가 이혼하면서 '아이는 아빠가 키우고, 엄마는 앞으로 아이를 절대로 볼 수 없다'고 합의하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법적인 효력을 인정해주기 어렵습니다. 면접교섭권은 부모뿐 아니라 자녀의 권리도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만나는 일을 함부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돈을 받고 아이를 낳아주기로 합의한 대리모에게도 면접교섭권을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부부의 연은 끊길지라도 부모 자식 간 혈연의 정은 끊기지 않는 점을 볼 때 면접교섭권은 천부적인 권리입니다.

하지만 면접교섭권이 보장된다고 하여 양육친을 비난하거나 양육친의 교육방식을 무시 또는 방해해서는 곤란합니다. 법원도 면접교섭 사항을 결정하면서 "자녀들의 양육에 관한 협의를 위해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 자녀들이 없는 자리에서 대화하도록 한다"거나 "주양육자가 정한 양육방식을 존중하도록 한다"는 조건을 붙이기도 합니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면접교섭권을 제한할 수는 있습니다. 자녀의 복리를 위해서입니다.

[사례] A씨(40대·남성)는 B씨와 6년 전 이혼하면서 당시 5살이던 아들 C군을 키워왔다. C군과 엄마 B씨는 수시로 만났다. 그런데 아이가 9살 되던 해 B씨는 C군을 집으로 보내주지 않아 A씨가 법원에 유아인도명령을 낸 적도 있었다.

C군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엄마가 아빠 욕을 하고 아빠와 자기를 떼어놓으려 한다는 이유로 엄마를 만나고 싶지 않아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의 면접교섭권을 배제해달라"는 청구를 냈다.

재판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법원은 우선 "면접교섭권은 낳아 준 부모와 자식 간의 천부적인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면접교섭권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① 비양육친에게 친권상실의 사유가 있거나 ② 사건본인의 장래를 위하여 도저히 허용하여서는 아니 될 정도로 비양육친이 면접교섭권을 남용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엄마 B씨의 행동은 "면접교섭권을 도저히 허용해서는 안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A씨와 C군이 면접교섭을 원하지 않고 있긴 하나, 면접교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만 11세에 불과한 C군의 엄마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며 "B씨가 아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신 면접교섭권 횟수를 제한하여 매월 1차례 첫 주 일요일 오전부터 7시간 정도를 만나도록 결정했습니다.   

사례에서 보듯이 양육친에게 부정적인 말을 한 정도로는 면접교섭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면접교섭 자체를 못하게 될까요. 

자녀의 안정과 복리 침해한다면 면접교섭 제한

[사례] D씨(40대·여성)는 결혼 1년 뒤 아들 E군을 낳았다. 그런데 출산 이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D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부부간 감정이 악화되었고 결국 E군이 3살 때 남편 F씨와 이혼하게 되었다. 이후 모자는 가끔씩 만났으나 E군이 정신병원에 있는 엄마를 낯설어하고 불안해하는 바람에 만남은 중단되었다.

D씨는 병원에서 나온 뒤 E군이 다니는 학교에 수차례 찾아가서 "엄마랑 같이 살자"고 요구하며 데려가려 하였다. 그때마다 E군이 112에 신고하거나 D씨가 학교측과 마찰을 빚었다. D씨는 아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E군은 아빠에게 애착을 보이면서 엄마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F씨는 면접교섭을 못하게 해달라며 법원을 찾았다. 

법원은 "면접교섭을 실시하는 것이 오히려 자녀의 안정과 복리를 침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이를 적절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서 F씨의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법원은 "E군의 건전한 성장과 정서적 안정 및 학업을 위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면접교섭권을 배제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한 2012년 광주가정법원은 자기 자녀로 출생신고한 의붓딸을 상습 폭행하고 11살부터 5년간 성폭행한 비정한 의붓아빠에게 면접교섭을 배제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딸이 거부감과 함께 상당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건전한 성장과 정서적 안정을 위하여 면접교섭을 배제하는 것이 복리에 부합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자녀들이 비양육친에게 심한 적대감이나 불안감을 갖는다면 자녀를 위해서 예외적으로 면접교섭권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모가 이혼하더라도 아이와 부모는 자유롭게 만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만 자녀를 만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자녀의 교육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제해야 합니다. 양육친의 교육방식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존중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오정인씨, 잘 보셨는지요. 재판으로 가더라도 면접교섭권을 제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분은 면접교섭과 관계없이 별도의 재판으로 해결할 문제입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남편이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엄마를 못 보게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지요.

이혼 후에도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면접교섭의 방식이나 규칙도 부모가 합의해서 정하는 게 가장 아름답겠지요. 면접교섭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배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아이의 건강한 정서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연재 마무리 예고] 작년 8월부터 9개월간 계속해 온 <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 연재를 마무리할 때가 왔습니다. 다음 기사에서 이혼이야기를 총정리하면서 이도남 연재를 마칠까 합니다. 마지막 기사에서 찾아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책 <생활법률상식사전>과 <생활법률해법사전>을 썼습니다.



#이도남#이혼#면접교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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