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부드러운 교란_백남준을 말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2013년 상설전이 6월 30일까지 열린다. 백남준이 유쾌한 미적 교란을 통해 그의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어떻게 풀어내고, '68혁명' 등 60-70년대 서구에서 보인 기존질서에 대한 저항과 극심한 세대갈등 등을 비디오아트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제목인 '부드러운 교란'은 백남준과 절친했던 대지미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부부'가 자주 썼던 표현이다. 크리스토는 이 세상이 돈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무용의 예술'로 '유용의 사회'를 희화시켜왔다. 그래서 소유의 집착보다는 자유의 향유가 더 중요함을 미학적으로 일깨워준다.
크리스토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을 '비영리사업'으로 비유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돈을 주고 절대 살 수 없다. 다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맛볼 뿐이다. '베를린 국회의사당'이나 '뉴욕 센트럴파크'를 천으로 싸거나 깃발을 세우는 방법 등 수십 년간 준비해 설치하곤 몇 주 만에 다 철거해버린다. 정말 기막힌 예술적 교란이다.
이와 맥을 같이한 작가가 바로 백남준이다. 넥타이 자르기, 피아노 부수기 등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든 '임의접속(random access)' 방식으로 서구의 이분법적 위계를 깨고 근대성이라는 허위의식을 들통 낸다. 결국 당대 가장 대중적 매체인 TV와 비디오로 역습을 가해 답답한 세상에 숨통을 텄다.
청년 백남준의 큰 스승 '쇤베르크'와 '맑스'
10대 백남준은 예술적으론 '쇤베르크'에게서 철학적으론 '맑스(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다. 쇤베르크는 음의 주종관계를 해체하고 12음계 동일하게 보는 '화음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작곡가이고, 맑스는 '소외와 착취'라는 말을 발명한 사회 혁명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사상이 백남준 예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조명한다.
1996년 <객석> 1월호 황필호 박사와 백남준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종교가 있느냐"라고 물으니 "난 종교는 없다. 맑시스트다"라고 백남준은 답했다. "당신의 말하는 맑시스트는 어떤 의미냐"고 하니 "장사를 하지 않고 예술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건 이번에 영상으로 소개된 '크리스토 부부'의 '무목적적 예술'과 통한다.
또한 이런 점은 1984년 윤석재씨와 백남준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속한 플럭서스는 사소한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예술운동이었다. 우리는 반부르주아 정신으로 출세보다는 길가의 잡초처럼 가난하게 살길 바랐다"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지식인, 예술가에게 번진 맑시즘
그러면서 백남준은 1990년 파리대 교수 '장 폴 파르지에'가 편집한 위 영상다큐에서 보듯 "당시 한국에서는 맑시스트가 된다는 위험한 일이었다"라고 털어놓는다. 사실 백남준 부친은 아들이 이런 사상에 몰입하자 이를 보다 못해 홍콩으로 전학시켰다. 백남준은 이걸 스스로 '화려한 정치망명'이라고 불렀다.
영국 랑카스터 대학에서 미디어이론으로 박사를 받은 미술비평가 임산은 그의 저서 <청년 백남준>에서 그 당시 10대의 백남준 모습을 이렇게 소개한다.
"혼란한 소년기에 백남준은 1945년 경기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작품과 와세다대 철학과 출신인 담임 안병욱 선생을 통해 맑시즘과 접한다. 이 사상이 당시에는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양심적 지식인과 예술가의 사회참여에 과학적 근거가 되었다. 백남준은 정치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대표로 활동했고 그의 친구 중 2명은 월북했다."백남준, 최고의 파트너 샬럿 만나다
이번에는 백남준의 예술과 '성(sexuality)'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백남준의 행위음악에 '성'을 도입한 건 기존의 미학을 뒤집고 성적 억압사회를 뒤엎는 교란이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은 이를 구현하는데 외모도 훌륭하면서 최고 지성을 갖춘 여성으로 완전누드로 연주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처음 독일에서 플럭서스 멤버인 '엘리슨 놀즈'에게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하지만 1964년 뉴욕에서 구원의 여신처럼 환상적인 예술파트너 '샬럿 무어먼'을 운 좋게 만났다. 그녀는 빼어난 외모에 줄리아드출신의 재원이었다. 백남준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그의 예술을 옹호했고 편견 없이 옷을 벗을 수 있는 통 큰 여자였다. 그녀는 단순히 백남준의 뮤즈가 아니라 진정한 전방위 예술가였다.
백남준은 "문학이나 시각예술에서는 다 허용되는데 왜 음악에만 성이 주제가 못 되느냐"며 1967년 성을 도입해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공연한다. 하지만 결국 대형사건이 터지고 만다. 이 연주는 원래 '전자비키니입기-상의 벗기-하의 벗기-완전노출' 등 4막 구성인데 2막에서 상의를 벗다 과다노출 죄로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백남준은 이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고 뉴욕작가뿐만 아니라 유럽의 유명작가까지 도움을 호소했다. 우여곡절 끝에 승소하여 백남준은 엄격한 미국의 청교도주의를 교란시키면서 샬럿과 함께 미국의 스타작가로 떠오른다. 이를 계기로 뉴욕 주지사가 법을 바꿔 미국의 촌스러움까지도 걷어낸다.
'TV침대'와 백남준의 에로티시즘
이 작품은 1960년 초 백남준이 암 수술로 건강이 안 좋은 샬럿 무어먼이 누워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침대를 TV로 만든 건 기계도 악기처럼 사람의 연장으로 본 것이다. 이런 발상이 그의 사전엔 어떤 금기도 용납될 수 없었나보다.
이번 전시에 대해 박만우 관장에게도 견해를 물으니 "백남준은 보다 더 근원적이고 내재적 인간의 욕망을 분출시키면서 삶의 도구인 법과 제도, 정치이념과 자본의 힘 때문에 인간이 지배당하는 것에 대한 전복을 꿈꾼 것이다"라는 해석한다.
그러면서 "어머니 품 같은 자연이 인간의 모태인데 그런 본연의 것을 망각하고,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이 언급한 '생활세계(Lebens Welt)'가 황폐화되는 걸 막고, 60년대 히피문화나 좌절한 유토피아를 되찾으려고 한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정치적 메시지 강한 '과달카날 레퀴엠'
이번 전시에 백남준의 작품 중 정치성이 농후한 것으로 평가 받는 '과달카날 레퀴엠'도 선보인다.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였던 태평양 솔로몬제도에 있는 과달카날 섬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서 당시 전쟁의 악몽을 되새기고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파괴성을 고발하면서 평화의 퍼포먼스를 벌인다.
이 작품은 1967년 스캔들을 일으킨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10주년을 기념하여 1977년에 유명한 카네기 홀에서 '감옥에서 정글로'라는 제목으로 재상영된다. 그 속에서 '과연 현재라는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역사적인 다큐라기보다는 매우 철학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회 금기 깨기, 숨 막히는 세상 구멍 내기
끝으로 이번 상설전을 기획한 이유진 큐레이터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대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데 역점을 두었고, 백남준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예술을 '사회경보'로 봤다는 관점에 초점을 맞췄다"며 그러기에 "그가 사회변화와 발전에 관심을 두는 건 자연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실제 쇤베르크보다는 존 케이지의 영향을 더 받았고, 맑시즘보다는 그의 비물질성에 더 매려된 것 같다"고 설명한다. "쇤베르크도 맑스도 그렇지만 행위음악에 '성'을 도입한 건 사회금기를 깨기 위한 것이다"라는 입장이다.
"백남준의 어린 시절 경험이나 독서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줬는데 그의 일기장 등이 없어 단편적 자료나 인터뷰로 추리할 수밖에 없으나 19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맑시즘에 심취했고 일본어판인지 한국어판인지 몰라도 본인이 <자본론>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하지만 "백남준은 그런 데 갇힐 사람이 아니다"라는 관점이다.
백남준은 "성을 도입한 행위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충격을 주고 지루한 인상에 엑스터시를 선물로 주었고, 숨 막히는 세상에 큰 구멍을 냈다"고 설명하며 "기계를 인간화한 'TV침대'나 'TV브라'는 일종의 환경미술로 어려서 엄마가슴과 근거리 감각을 맛봤을 때 느끼는 황홀경을 전자예술로 대체한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제목: <1963 음악의 전시, 다시 울림(Musically Yours, 1963-2013)> 2013년 4월 26일(금) 10시부터 경기도박물관대강당(백남준아트센터 근처)에서 무료버스예약문의
www.njpartcenter.kr[오전] I부 "1963년의 백남준을 기억하다" 페터 브뢰츠만(재즈 뮤지션, 백남준의 63전시 어시스턴트 II부 "백남준, 명예 스코틀랜드인: 에든버러, 그의 지적 고향" 팻 피셔(에든버러대학교 탤봇라이스갤러리 관장)
[오후1부] I부 "포스터로 읽어 보는 백남준의 부퍼탈 전시" 신원정(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미술사학 박사과정) II부 "큐레이터 백남준" 임산(동덕여대 큐레이터학 교수) III부 "실험 텔레비전 @50: 백남준과 오늘날의 스크린 설치예술" 루츠 쾨프닉(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 독일/영화/미디어학 교수)
[오후2부] I부 "백남준: 음악의 존재론_오디오비디오, 음악성, 그리고 마르셀 뒤샹" 사이먼 쇼-밀러(영국 브리스톨대학교 미술사학 교수) II부 "비디오 되기: 회화의 파악" 이나 블롬(오슬로대학교 미술사학 교수) 연락처 김성은(031-201-8545), 박현주(031-201-8559)
덧붙이는 글 | <부드러운 교란_백남준을 말하다>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관람시간 : 평일, 주말 오전 10시-오후 8시(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 휴관) 관람료 : 성인 4,000원(1일, 1인 입장료) 경기도민, 일반단체 50%할인학생 2,000원, 학생단체 1,000원(20인 이상). 상설전 '부드러운 교란전(1층)'과 기획전으로 6월 16일까지 '끈질긴 후렴(2층)'라는 제목으로 백남준의 후예들이 펼치는 현실 비판적 관점의 전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