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7일자 <조선일보>에 "전교조 등쌀에… 혁신학교 교장들 '혁신 반납하고 싶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조선일보> 기사는 혁신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기사는 2월 중순 서울시교육청 회의실에서 있었던 혁신학교 초·중·고 교장·교감 10여 명과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의 간담회 회의자료를 인용해 "혁신학교 반납하면 안 될까요? 우리 학교에 있는 전교조 교사들도 원래 학교로 돌려보낼 방법이 없겠습니까?" "도저히 학교를 운영할 수가 없다"는 발언을 근거로 혁신학교가 교육은 뒷전이고 전교조 등 특정 세력의 학교장악 의도 때문에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들도 채워져 있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이런 기사를 실은 것은 30일 혁신학교 관련 조례의 서울시의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교육청의 대법원 제소까지 염두에 둔 명분쌓기로 보인다.
현재 혁신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로서 일단 이 기사가 취하고 있는 서술방식부터 지적하고 싶다.
첫째, 이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근거가 되는 간담회 회의록에 등장한 교장, 교감들은 서울시 전체 67개 혁신학교 중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공정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언론이라면 간담회에 참석한 10여 명의 교장 교감들 이야기만이 아니라 거기에 참석하지 않은 57여 개의 110명이 넘는 교장 교감들의 의견도 들어 균형 잡힌 기사를 써야 마땅한 것 아닌가? 그리고 간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발언이 일방적으로 혁신학교 무력화를 위한 교육청과 <조선일보>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악의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토록 갈등이 있고 어려움이 발생한 학교들이 있다면 실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교육청의 소임이고, 이를 기사화할 때 갈등의 양당사자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태도다. 따라서 교육청도 <조선일보>도 갈등의 한쪽인 소수의 교장, 교감들의 이야기만 들을 것이 아니라 교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것이 상식과 이치에 맞다. 게다가 학교에 갈등이 생기면 이를 수습하고 해결해야 할 교육청이 오히려 언론을 이용해 학교 내 교장, 교감과 교사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둘째, 기사는 67개 서울형 혁신학교 중 "전교조 교사 비율이 50% 넘는 학교는 8개, 30~50% 이상인 학교는 14개가 있다"고 쓰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서울 전체 혁신학교 중 전교조 교사가 30%를 넘는 학교가 32.8%인데도 마치 전체 혁신학교가 전교조에 의해 장악되고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처럼 쓰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기사에서 주장한 내용이 사실이라 해도 32.8%에 근거해 전체 혁신학교에서 벌어진 일인 양 침소봉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 기사의 문제는 또 있다.
서울에는 1300여 개의 학교가 있고 전국에는 1만여 개의 학교가 있다. 학교도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기 때문에 이 많은 학교들에서는 당연히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사는 학교 안 갈등을 부각시키고 이것이 마치 혁신학교가 '반납' 혹은 '없어져야 할' 이유라도 되는 듯이 쓰고 있다. 그러나 갈등이 존재하지 않고 교장이든 누구든 한 사람의 의견이 일사천리로 관철되는 획일화된 학교야말로 죽은 조직이고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가장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학교 안에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는데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닌가? 문제는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해결되는가에 있다.
실제 혁신학교들을 보면 <조선일보> 기사와는 달리 기존의 관료적 리더십에 익숙해 있던 교장, 교감들이 초기에는 혁신학교의 민주적 의사소통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지금은 새로운 민주적 리더십의 장점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학교현장과 떨어져 있는 상급기관인 교육청의 지침이나 교장 개인의 의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교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그 속에서 결정되는 것들이 훨씬 더 학교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 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적인 교육주체인 교사들이 학교 관리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하여 결정된 일들이 훨씬 추진력과 책임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학교가 죽었다며 수업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많아지고, 학교폭력에 무기력한 학교를 비판하고 진정한 해결책을 찾고 싶은 이들이야말로 학교의 관료주의를 없애고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해야 한다. 스스로 존중받고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민주적인 소통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소통과 존중받는 교육 환경에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수업 소외와 학교폭력이 자리잡을 여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의 혁신학교들이 이런 학교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사의 내용도 문제지만 이런 기사가 나오게 된 과정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 의회 교육상임위 소속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에 혁신학교 관련 회의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서울시의회 교육상임위에는 제출하지 않은 자료가 <조선일보>에만 제공됐을까? 서울시교육청이 혁신학교의 문제를 염려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서울시의회에 실상을 알려 함께 대책을 강구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울시 교육청은 혁신학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혁신학교를 없애겠다는 의지만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교육청과 <조선일보>의 행태야말로 서울시의회에서 다루어질 예정인 '혁신학교 조례'의 필요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논의될 '혁신학교 조례'는 혁신학교 정책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만드는 데 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정책이었던 혁신학교를 무력화시키고 싶은 문용린 교육감의 현 서울교육청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뜻과는 달리 교육감이 바뀌어도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이사도 불사하고 심지어는 가거주(소위 위장전입)까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1년 경기도와 전북 교육청에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의 교육만족도와 성과를 비교평가한 연구에 따르면 혁신학교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높은 만족도와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문용린 교육감이 교육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정책이라는 이유로 혁신학교를 무력화시키려는 데 앞장 설 것이 아니라 혁신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들에 주목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정책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진정으로 교육적으로 의미 있고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적어도 수십 년 간 '행복교육'을 주창해 온 문용린 교육감이 서울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태도이다. 서울 학생들의 교육감이고, 서울 교사들의 교육감이며, 서울시민의 교육감이어야 할 문용린 교육감이 불과 10여 명 교장, 교감의 의견에 의해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