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역시 <무한도전>

지난 27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이 화제다. <무한도전>은 8주년 특집을 맞아 프로그램 내 에피소드인 '무한상사'에서 정 과장이 정리해고 되는 내용을 뮤지컬과 접목시켜 방영했는데, 이에 대해 시청자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심지어 평소 기업들의 정리해고에 관대했던 보수신문들도 앞서 보도할 만큼.

<무한도전>은 역시 '무한도전'이었다.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여느 프로그램이라면 그 시간을 자축했을 절호의 기회였을 텐데 <무한도전>은 1년마다 돌아오는 특집의 주목성을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려주었다.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 시대의 직장인을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아무리 오래된 프로그램이라도 시청률이 삐끗하면 언제 어떻게 퇴출당할지 모르는 작금의 방송환경에서 그들의 처지가 현재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정 과장이 잘리기 전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One Day More'을 개사해서 부른 곡은 그날의 백미였다. 비록 같은 직장에서 매일 보며 근무하지만, 정리해고라는 끔찍한 현실 앞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과연 누가 그들을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이 시대 1%를 제외한 그 어느 누가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목소리
 우리 모두의 목소리
ⓒ MBC

관련사진보기


대출이 산더미인데 잘리면 어찌 살아갈까
내일로 일자리 없어진다면 애 엄마 얼굴 어찌 보나
……

둘 중 아무나 나가 나도 승진 좀 해보자 나는 쌍둥이 아빠
승진은 꿈 안 꿔요. 십년 넘게 일했어요. 우리 애들 어쩌나
……

방금 직원 됐는데 월급 한 번 못 받고
네가 하차 선언해
……

더럽고 치사해도 힘들고 눈물 나도 가족 위해 힘냅시다
서로 위해 일하자 우리 함께 버티자 여기 남아 함께 버틴다

정당한 정리해고, 존재하는가?

<무한도전>의 이번 에피소드가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그 현실성이다. 혹자는 정리해고는 그렇게 벌어지지 않는다며, 근로기준법 31조를 근거로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고,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노력도 하지 않았고, 회계감사도 받지 않았으므로 현실과 다르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회사가 결정하면 대부분의 개인은 힘 한 번 못쓰고 당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예로 보자.

A사의 김 부장은 경영혁신을 위해 회사가 컨설턴트를 스카우트한 경우였다. 그는 CEO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 다른 직원들의 원망까지 감수하면서 혁신을 제창했는데, 정작 경기가 나빠지자 해고의 첫 번째 대상이 되어버렸다. 보수적인 기업 안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원가절감의 대상은 이윤을 내는데 직접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부장은 회사의 권고사직에도 꿋꿋이 회사를 다녔다. 곧 있으면 대학에 들어가는 자식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회사는 이후 그를 서울에서 부산, 인천, 대전, 대구 등지로 발령을 냈고 책상만 빼지 않았을 뿐, 아무 일거리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야말로 조직의 유령이 되었고,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그것은 법적으로 어디까지나 자진 사직이었다.

B사의 이 과장 역시 회사로부터 사직을 권고 받은 경우였다. 그는 처음에는 회사의 방침이 불합리하다고 버티려 했으나 며칠 못 가서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그의 업무시간 내 개인적인 인터넷 서핑 시간과 업무 외적인 전화사용 등을 문제 삼으며 뒷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일 수밖에 없는 사항을 문제 삼는 회사.

결국, 그는 지루한 법적공방을 펴느니 깔끔하게 나오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혹여 다시 들어가더라도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질 것임을 우려했던 바, 오히려 회사에게 재취업에 있어서 치명적인 '해고'보다 '사직'의 형식을 갖춰달라고 요청했다. 회사는 그런 그에게 큰 인심을 써 주는냥 해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조치해 주었다.

 이 시대의 페르소나, 정 과장
 이 시대의 페르소나, 정 과장
ⓒ MBC

관련사진보기


이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있어서 직장인 개인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서 해고하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회사에 요구하며 해고의 부당함을 말하기 어렵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그런 건 없다. 그러나 동시에 있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원가절감을 외치는 회사의 입장에서 과거와 오늘, 내일은 모두 위기이기 때문이다. 소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야기하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샌드위치 위기론'은 지정학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위기 요소가 아니던가. 하물며 1997년 IMF 금융위기에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겪었으니 회사들은 긴박한 경영 수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국가는 언제나 이를 보증한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는 시장의 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혹자들은 '정리해고'하면 '한진 중공업'이나 '쌍용차' 등을 떠올리며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극소수의 사례일 뿐이다. '노조 가입률 한 자리 %'라는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업장에는 부당한 사측의 '해고'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노조가 드물다. 특히 육체노동자가 아닌 사무직의 경우 노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바 대부분의 사무직들은 언제나 잘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무한상사>의 정 과장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해고'와 '정리해고'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해고'는 노동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을 의미하는 반면 '정리해고'는 회사의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양수양도나 합병 등으로 인한 해고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에게 그것들은 똑같은 해고일 뿐이며, 죽음이다. '해고는 죽음'이라지 않는가.

이후 '무한상사'의 정 과장을 주목한다. 이제 그는 우리 사회 직장인의 페르소나이다. 부디 힘내시길. 다만 비현실적인 성공은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는 거.


#무한도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