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월 24일 교육부(장관 서남수)는 '2013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인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 실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폐지하고, 중학교는 국어, 수학, 영어 세 과목으로 축소, 고등학교는 종전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을 학업성취도 평가로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앞질러 말하자면 시험 점수로 줄 세우는 교육으로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 능력중심 사회 기반 구축, 교육비 부담 경감은 결코 이룰 수 없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2008년부터 '기초학력미달 제로 플랜'의 하나로, 초6, 중3, 고1(2010년부터 고2)을 대상으로 표집 방식에서 전수 평가로 바꿔 시행해 왔다. 이날 교육부는 전수 평가로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2008년 7.2%에서 지난해에는 2.3%로 낮아졌으며, 도·농간 격차도 2008년 3.3%p에서 지난해 0.2%p로 줄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업성취도 전수 평가는 부작용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학교간, 교육청간 성적 경쟁을 부추겨 수업 시간에 예상 문제를 풀게 하거나 초등학생까지 0교시 수업, 강제 야간학습으로 내몰았다. '임실의 기적'이나 '4년 연속 학업성취도 1위 충북도교육청'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장학사, 교감까지 나서 성적 조작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간식, 문화상품권 같은 미끼로 만든 낯 뜨거운 성과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노예'라고 외치게 하고 학교 폭력을 몰라라 눈 감은 덕분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사 37명이 징계를 겪었고 14명이 해임, 파면을 받아야만 했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화면 갈무리
▲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화면 갈무리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련사진보기


학업성취도평가의 다른 말 '일제고사'

'학업성취도 평가'를 다른 쪽에서는 '일제고사'라고 한다. '일제'는 '여럿이 한꺼번에 함'을 말한다. '고사'는 애초 서열과 선별의 도구로 기능한 시험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나온 말이었다. <학교사로 읽는 일본 근현대사>(책과함께, 2012)에 보면, 고사는 '태도나 행동 등 인격 면을 중시하는 평가'였지만, 이제는 '성적이나 능력 등을 자세히 검사하여 평가하는 시험'으로 굳어졌다.

일제고사는 한 날 한 시에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려는 반교육적 행위다. 더욱이 학업 성취도 수준을 학교 교육력만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학교 교육력 말고도 사회적·문화적 배경이 간섭하는데도 그 결과로 차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교원의 근평과 성과급에까지 반영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성적이 안 좋은 학교나 지역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예산을 깎거나 안 준다. 다 다른 교실에서 제각각 배우고도 같은 평가지로 시험을 치른다면 오로지 교과서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잘 기억하는가만  중요할 뿐이다.

일제고사로 공교육을 살린다는 거짓말

이런 일제고사로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살린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일제고사를 보면 누가 이득을 볼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학원에는 재빠르게 일제고사  대비 문제풀이반을 만들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일제고사 대비 예상문제집을  쏟아내고 서점에서는 문제집을 판매대에 쌓듯 늘어놓을 것이다.

교실에서는 정상적 교육과정 운영에서 벗어나 학교 성적을 높이기 위한 암기 중심의 획일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에서는 초등학교의 일제고사는 없애겠다고 밝혔지만 제주도교육청은 '제학력갖추기평가' 같은, 말만 바꾼 일제고사로 성적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중학교의 일제고사도 과목 수를 줄이긴 했지만 이들 세 과목이 교육과정 단위 수의 절반을 넘는다.

여기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12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왜 하는지 그 목적을 밝혀놓은 데를 한번 살펴보자.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 파악', '교육과정의 교육목표 도달정도',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자료 제공'은 전수 평가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될 일이다. 오직 한 가지 잣대로 평가를 하면서 어찌 일선학교의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고 평가 방법을 선도할 수 있겠는가.

평가는 무엇보다 가르치는 교사가 자신이 가르친 학생을 평가하는 게 원칙이다. <2009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평가 활동' (바)항(교과부고시 제2012-14호 2012. 7. 9. 고시)에도 "학교와 교사는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과 기능을 평가하도록 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고, 학교 밖의 교육 수단을 통해서 익힐 수밖에 없는 내용과 기능은 평가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밝혀 놓았다.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은 일제고사 폐지로

일제고사 시행은 자신들이 만든 고시를 교육부 스스로 부정하고 어기는 일이다. 평가는 누가 누가 잘하나를 가려 꼬리표를 붙이려는 게 아니다. 더욱이 학교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평가는 따로국밥이 되어선 안 된다. 배우는 때와 멀어진 평가로는 결코 학생의 배움에 기여할 수 없다. 상시평가제가 되어야 한다.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수업을 듣는 마음가짐, 배움에 대한 자세, 열정 들을 돌아보게 한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평가여야 한다.

평가는 말 그대로 우리 아이들의 꿈과 끼를 응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학교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 되어야 한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친 내용에 평가하게 해야 한다. 사교육은 교사가 가르친 것을 교사가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무엇보다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 실현을 위한 기반은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꿈과 끼'를 살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말난 김에 1000문제를 풀어야 참가할 수 있는 KBS 어린이독서왕 대회도 교육부는 분명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 단순히 KBS와 후원교육청의 문제라고 팔짱 끼고 볼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우리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꿈과 끼#행복교육#일제고사#KBS어린이독서왕#평가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