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독재' 전력이 뚜렷한 이은상(1903~1982)이 쓴 시 '가고파'가 새겨진 시비가 마산역광장에 세워져 논란을 빚고 있는 속에, 종교계․학계 인사와 변호사들이 '중재안'을 내놓았다.
허성학 신부(천주교)와 이암 스님(문수암), 김용환 목사, 안승욱 경남대 교수는 7일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재안 작성에는 자운 스님(관해사)과 김민오 변호사, 강인순․김남석․김학수․배대화․이승현․유장근․최유진(이상 경남대)․남재우(창원대) 교수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철거를 전제로 한다"면서 "중재안은 이 시비를 기증한 측에 설치비 3000만 원을 보상하고 시비의 소유권을 넘겨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비는 국제로타리클럽(3720지구)이 세워 마산역에 기증했다. 시비 앞면에는 시 '가고파'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김복근씨가 쓴 이은상 약력이 새겨져 있다. 2월 6일 제막식이 열렸다.
이은상은 3․15의거를 폄훼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등 단체들은 '마산역광장이은상시비철거대책위원회'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가 시비에 페인트로 훼손해 놓았고, 철거대책위는 계란 투척을 하기도 했다.
또 철거대책위는 지난 4월 19일 중장비를 동원해 시비를 강제 철거하려 했지만, 마산역 측이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해 무산되었다. 당시 현장에 경찰이 배치됐다.
허성학 신부 등 인사들은 "마산역광장에 이은상 시비가 느닷없이 세워진 뒤 계속되는 시비 철거 논란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다"며 "마산역광장은 이 도시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시민이 철도이용 등으로 자주 들르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진행되는 상황으로 볼 때 이 시비가 역광장에 존재하는 한 관련 단체나 시민들의 갈등과 대립은 점점 더 확대되고 격화되는 양상을 띠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며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 시비 철거 논쟁에 일부 문인들이 개입하여 과거에 이미 끝난 노산이은상 문학관 논쟁으로 치환시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중재안을 제시한 것은 시비를 세운 남마산로타리클럽 김봉호 회장의 발언이 단초가 되었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29일 마산역장실에서 열린 창원시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차라리 시비 설치비 3000만원을 주는 곳이 있으면 철거를 하든 뭘 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 돈으로 다른 봉사활동을 추진하면 된다"고 했다.
허성학 신부 등 인사들은 "당시 참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 방법만이 시비를 기증한 쪽이나 먼저 시비의 기증을 요구하여 기증을 받은 쪽이나, 이를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쪽 모두 앞으로 계속해서 입어야 하는 정신적, 물질적 상처나 손실을 최소화 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3000만 원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시비 철거 논란이 날로 악화되니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라며 "3000만 원은 시민모금 형식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 사건의 근본 책임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마산역 즉, 한국철도공사에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 지금이라도 공기업답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인사들은 "저희들의 제안이 관련 당사자 모두 만족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모두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시비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