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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의 젠틀맨
싸이의 젠틀맨 ⓒ YG Entertainment
모든 언론의 사랑을 받는 공인은 드물다.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 평가가 갈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2012년 한국에는, 공인은 아니지만, 언론에서 공인처럼 여겨지는 인물이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 모두의 주목과 호평을 받았다. 그가 바로 싸이이다. 싸이의 곡 <강남 스타일>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고, 그는 세계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영웅이 되었다.

<강남 스타일>은 지금 들어봐도 음악과 뮤직 비디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곡이었다. 맛깔나는 랩핑, 캐치한 멜로디,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곡과 잘 어울리면서도 개성 있는 춤은 전 세계를 싸이 열풍에 빠지게 만들었고, 이 곡은 한국 음악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빌보드 차트에 무려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강남 스타일>의 활동이 끝난 후, 싸이는 후속곡 준비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바로 <젠틀맨>이다. <젠틀맨>은 발표되자마자 한국 언론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기의 정점에 올라섰다. <젠틀맨>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적이었다. 이는 <젠틀맨>의 유투브 조회수로 확인할 수 있고,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이를 몸소 느꼈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했던 <강남 스타일>과는 다르게, <젠틀맨>에 대한 평가는 '국위선양'을 한다는 싸이에 대한 응원과, <강남 스타일>에 비해 부족한 음악성과 선정적인 뮤직 비디오에 대한 비판, 두 양론이 나뉘고 있다.

인간의 미적 취향은 누구나 다르기에 음악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라는 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싸이의 <젠틀맨>을 옹호하는 자들은 <젠틀맨>을 음악적으로 옹호하기보다는, '싸이가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데 응원해줘야 한다'는 논리로 싸이를 옹호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과거 황우석 사건과 <디워> 논란 때 보였던 극우주의적이고 지나치게 애국주의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해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멀리 보면 스탈린 치하에 쇼스타코비치와, 나치가 배척했던 유대인과 무조 음악 작곡가 모두에 속하던 나치 치하의 쇤베르크 등, 작곡가들을 들 수 있고, 가까이서 찾으면 박정희 치하에서 김민기를 비롯한 가수 및 작곡가가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예를 들 수 있다.

<젠틀맨> 뮤직 비디오의 선정적인 표현 역시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과, 그 작품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다. 전작 <강남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예술적 가치보다는 웃음에 더 초점을 둔 영상이다. 실제로 <강남스타일>이 그토록 큰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뮤직 비디오의 코믹함 덕분이었기에, <젠틀맨> 역시 코믹한 컨셉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젠틀맨> 뮤직 비디오가 <강남스타일>의 뮤직 비디오에 비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인위적으로 웃음을 강제하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웃음을 강요하면 웃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유쾌해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쓴웃음에 불과하다. <젠틀맨>의 뮤직 비디오는 그 선정성을 통해 어떤 예술적 표현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선정성만 강조된 뮤직 비디오였다.

뮤직 비디오의 수준뿐만 아니라, <젠틀맨> 음악 자체도 <강남스타일>의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못 미친다. 랩핑은 나름 맛깔나지만 후렴의 부재가 아쉽다. 물론 후렴구의 부재는 싸이 역시 밝혔듯이, <젠틀맨>이 클럽 음악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클럽 음악의 생명은 사운드이기에, <젠틀맨>의 세련되지 못한 사운드는 이 곡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여론은 이런 필자의 생각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과는 다르게, 보수 진보를 막론한 언론은 싸이의 일거수일투족과 <젠틀맨>의 빌보드 차트 성적을 마치 국가적 이슈처럼 보도하고, 그 성과와 싸이의 위대함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보도한다. 이런 언론의 '싸이 영웅 만들기'를 보면서, 필자는 이가 황우석 사건과 <디워> 논란과 비슷한 양상임을 느꼈다.

황우석 사건과 <디워> 논란은 모두 대중의 맹목적 애국주의가 그들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없게 만든 사건이었다. 다른 사상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애국주의는 여타 사상에 비해 좀 더 특별히 선동적인 사상이다. 예부터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했던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기득권층의 권력 유지를 위해 치밀하게 국민의 마음 속에 심어진 애국주의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낳는다.

사람들의 이런 사고방식이 응용되어, '국가를 빛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싸이에게 맹목적 애국심이 투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싸이의 모든 것들이 '국위선양'이므로 용서가 되고, 싸이를 비판하는 자들은 매국노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싸이가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만일 싸이가 한국의 국가대표 자격으로 <강남 스타일>과 <젠틀맨>을 불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싸이는 국가적 자격으로 음악을 하는 공인이 아닌, 그저 수많은 가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또한, 싸이가 국위선양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은 극우적인 사고방식이다. 어떤 잘못을 해도 국위선양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사고방식은, 황우석과 심형래의 사례에서 봤듯이,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애국주의에 입각한 것이기에, 상당한 오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영웅을 긍정하는 극우주의적 사고방식과, 모든 것을 국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예술가에 대한 평가가 예술 그 자체에 대해 이루어져야 한다.

싸이는 한국의 가수로서 최초로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 가수이다. 필자는 싸이의 능력과 열정, 그리고 성실함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이 모든 성과는 전적으로 싸이의 능력과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싸이가 위대하더라도, 예술가가 선정적인 것을 표현할 자유도 인정되어야 하듯이, 비판의 자유도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 사회이다.

싸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자들의 의견을 그저 매도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또한, 싸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음악, 뮤직 비디오, 또는 싸이 개인의 열정 등이 될 수는 있지만, 그가 '국위선양'을 한다는 것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결국 인간의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blog.naver.com/junoyunsun)에도 실렸습니다



#싸이#젠틀맨#강남스타일#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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