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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서울숲에서 거문도까지 길고양이와 함께 한 10년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서울숲에서 거문도까지 길고양이와 함께 한 10년 ⓒ 앨리스
나는 이런 책이 무척 반갑다. 무관심했거나 외면했던 대상에 대해 다시 고개를 돌려 눈길을 머무르게 하는 책, 작고 하찮은 것에 소박한 애정을 가지게 하는 책, 그리고 많은 세월을 붙잡아 누적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책 말이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도 그런 책이다. 2002년이면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기 시작한 지가. 물론 그 전에 '고양이 책'을 여러 권 내었어도 <길고양이 통신>은 10년 몰입의 산물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길고양이가 있는 따뜻한 골목'을 꿈꾼다고 했다. 그 말은 길고양이가 있어야 따뜻한 골목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따뜻한 골목이라야 길고양이를 품을 수 있다는 말이겠다. 저자가 길고양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애정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길고양이'라는 이름은 또한 얼마나 정겨운가. 그전까지 나에게는 집고양이, 도둑고양이, 들고양이만 있었다. 집고양이는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그 자태가 깨끗하기는 하나, 어딘지 모르게 도도하게 건방져 보였고, 도둑고양이는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썩은 먹이를 찾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비열한 녀석들이란 게 고양이를 대하는 내 인식이었다. 내 인식은 주변의 인식이기도 했다.

분리수거 되지 못한 음식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를 대하며 사람들은 그 고양이들을 귀찮게 여겼다. 그 울음소리를 혐오하며, 그 눈빛을 싫어하고, 요물이라며 해코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전파하고 증폭시켰다. 그러므로 그동안 만난 고양이는 진정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오직 나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바라본 고양이라는 것이 <길고양이 통신>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하나였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명언은 바로 우리가 길고양이를 인식하는 안내문 같은 것이다. 저자도  말한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대상을 향해 관심과 애정을 쏟을 사람은 없다. 변화는 어떤 대상이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10년간 사진과 글로 담은 글고양이의 삶

<길고양이 통신>은 고양이를 만난 길 위에서, 고양이를 찾아 떠나는 길 위에서, 그들이 지닌 '묵직한 생명력'을 타전한다. 저자는 서울 도심 빌딩 사이에 조성된 화단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 가족들을 만나고, 재개발 예정지인 홍제동 개미마을을 누비는 길고양이를 담고, 전국 각지의 '오래된' 마을과 골목을 다니며 길고양이를 전했다. 다채로운 사진과 짧은 글로 고양이의 생활과 관계와 표정을 펼쳐 보인다. 그 '길'은 무겁지 않고 경쾌하며 재치가 있지만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길고양이 통신>은 먼저 '내 마음의 눈부처'로 연다. '눈부처'는 눈동자에 비친 사람의 형상을 말하는데, 이 형상은 눈높이를 맞추어 서로 지긋이 바라볼 때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몸을 '낮추어' 길고양이와 눈을 '맞추고' 사람과 고양이가 눈에 서로를 '비추어' 길고양이와 만나는 의미를 진정성 있게 표현했다. 이 책은 결국 수많은 눈부처들을 사진으로 담은 책일 것이다.

저자가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는 시작은 이름 지어 부르기다. 그것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관계 맺기와 의미 만들기이고,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길고양이를 '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삼색 무늬가 있으면 '삼색이', 까만 삼색에다 이마에 노란 번개무늬가 있는 '카오스', 홍차에 우유를 탄 듯한 털옷을 입고 있는 '밀크티', 몸 전체가 주로 노란색이며 새끼를 잘 돌봐준다고 '노랑아줌마', 코가 분홍색이라 '분홍코', 눈두덩 위의 짧은 털이 아래로 처져 늘 억울한 인상이라 '억울냥', 고동색 망토를 두른 듯하여 '망토', 이마에 은행잎 무늬가 있어 '은행이'.

하는 행동이나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다정하게 다가와 비빈다고 '부비', 무리 중에 어울리지 못한다고 '깍두기', 약해서 오래 살라고 개똥이처럼 '고똥이', 반갑고 귀한 인연이라고 '귀연이' 등이다.

저자는 또한 길고양이의 여러 가지 습성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고양이들은 하루 평균 16시간을 잔다고 한다. 왠지 게을러 보이는 고양이의 그런 모습은 바로 잠이 많기 때문인가 보다. 그리고 고양이가 앞발을 모아 가슴팍 아래에 집어넣고 동그랗게 몸을 움츠린 자세를 '식빵자세'라고 하고, 나무 둥치를 긁어서 발톱을 다듬는 것이며, 꼬리를 바짝 세워 걷는 건 기분이 좋을 때라는 것. 이런 안내는 고양이를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책 중간 중간에 '길고양이 수첩'을 넣어서 고양이의 생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한 것도 이 책의 배려다.

고개를 숙이고 바라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그러나 저자의 시선과 발길은 화단 고양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저자가 길고양이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마을에 주목했다. 그곳은 홍제동 개미마을을 비롯한 수많은 마을과 섬들인데, 대개가 아직도 수십 년 전 골목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개미마을도 한국전쟁이 끝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하나둘 인왕산 자락에 천막집을 지으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사진에 담긴 개미마을은 가난한 산동네이지만 길고양이 같은 생명이 깃들기 좋은 곳이다. 저자는 마을과 길고양이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오래된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숨어들 빈틈이 많다. 길고 고단한 시간을 견뎌낸 것들의 힘이 골목의 주름 사이에 스며 있다. 수없이 여닫아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 드문드문 이 빠진 기와지붕, 모서리가 닳아 둥글게 변한 낡은 계단은 그 동네의 나이를 말해준다. 언제든 찾아가면 고양이를 만날 수 있고, 녀석들 얼굴에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곳은 '고양이 동네'로 점찍어 두고 종종 들렀다.(본문 185쪽)

시간이 남아 있는 동네, 사람의 온기가 스며 있는 마을, 생명이 여유로운 골목. 이런 곳에 길고양이가 깃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오래되면 안 된다는 듯이 시간들을 그저 지워버리고 새것을 채워 넣으려 할 때, 사회적 약자들은 밀려나고, 길고양이도 밀려나고, 우리의 정서 속에 담긴 인간적인 유대도 밀려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개미마을뿐 아니라, 북촌 별궁길과 서촌 골목길, 낙산 성곽길을 더듬고, 서울을 벗어나, 인천이며, 태백 탄광마을, 개미마을처럼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만든 군산 해망동과 부산의 마추픽추 태극마을과 같은, 개발과 거리가 먼 동네에서 바람같이 쏘다니는 길고양이를 만나는데, 그 오래된 동네와 길고양이는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길고양이 통신>을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저자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만히 우리에게 들려준다. 길고양이와 친구가 되려는 마음은 결국 작고 약한 것들의 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고, 말이 아닌 울음으로 아픔을 표현하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라고.

한편으로 생각해본다. 언제부턴가 인간은 너무 높아졌음을. 그래서 다른 생명들 위에서 군림한다. 이미 스스로 높아져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고, 보인다 한들 그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가 닿을 수 없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깊이 낮추고 다른 생명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서로의 눈에 '눈부처'를 만들 때, 인간도 진정 구제받을 수 있음을 느낀다.

고개를 숙이고 시간을 들여 바라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지표면을 따라 자라는 들꽃처럼 세상의 낮은 곳을 걷는 길고양이들도 그렇다. 언젠가 인간의 말을 고양이 말로 통역해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 시를 꼭 읽어주고 싶다. 나태주의 짧은 시 <풀꽃>이다. '풀꽃'이라는 원제 대신 '길고양이'를 슬며시 대입해도 어색함이 없으리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본문 95쪽)

덧붙이는 글 |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고경원 씀, 앨리스 펴냄, 2013년 4월, 416쪽, 1만5000원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 서울 숲에서 거문도까지 길고양이와 함께한 10년

고경원 글.사진, 앨리스(2013)


#길고양이#개미마을#눈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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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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