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8일 오전 10시 47분]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통해 자신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전의 한·미 공조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 만한 구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이번 공동선언에서는 '신뢰동맹'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가치동맹'이란 말이 '신뢰동맹'으로 대체된 셈인데, 한·미동맹을 안보와 경제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대처, 저개발국을 돕는 과제, 중동문제 개입 등으로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MB정부 때 '가치동맹'이 '신뢰동맹'으로 대체"한·미 동맹 공통의 가치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써, 안보·군사동맹에 한·미FTA 체결을 통해 경제동맹을 추가했고, 사회문화와 인적교류 등 제반 분야의 협력도 심화시켜 나가기로 했다"며 "한·미동맹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지역과 범세계적인 문제 및 지구촌 행복 증진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게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파탄상태인 남북관계를 풀 실마리가 될만한 구상은 이번 공동선언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지지와 방위공약을 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에는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이 먼저 도발적인 태도를 버리면 적극 대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의 절정을 달린 지난 5년 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하면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이 전향적인 대화제의로 받아들일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것이다.
북한 태도 변화 압박... "수동적 대북 자세 그대로"게다가 박 대통령은 하루 전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일이 있으면 만나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북한은 변해야 된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길이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지금 상태론 안 된다'는 얘기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대화의 조건으로 '태도 변화'를 압박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그에 대한 UN안보리 제재 결의안 통과 이후 이어진 남북 갈등 고조 상황이 개성공단의 잠정 중단 사태로 귀결된 상황에서 열린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어떤 대북 메시지가 나올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결국 박 대통령이 여전히 북한에 대화를 압박하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를 밀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현재의 한반도 위기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졌지만 그런 기대감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듯하다"며 "안보 부분에서는 이전의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은 것 같고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서로 상충되는 억지와 대화를 동시에 하겠다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대북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렇다면 남·북·미 삼각관계는 이명박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지지했다고 해서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이를 그대로 따르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중국·북한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더 북한이 실천 가능한 조건이 제시된 점에 대한 긍정 평가도 나온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실천 가능성이 좀 더 있는 조건이 제시된 것 같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한국의 이익이 많이 반영된 대북정책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