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3편의 시에 100여 컷의 사진이 실린 '시집'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2013. 4·새로운사람들)이 나왔다. 시집에 인용부호를 두른 까닭은, 정확히는 '시화집'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아서이다.
시는 김선욱(이하 김)이 썼고, 사진은 마동욱(이하 마)이 찍었다. 김과 마는 장흥 안에서도 안양면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선후배 사이다. 둘은 또한 젊은 시절에 서울 생활을 하다가 청년기의 끝자락 즈음에 귀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은 신문 편집인으로, 마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현재 장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화집의 중심은 전남 장흥의 바다와 탐진강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와 사진이 장흥의 바다와 탐진강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상은, 장흥의 바다와 탐진강을 매개로 두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고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차별한 '그리움의 시'
김선욱의 시는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딱히 누구이거나 무엇이라고 규정짓는 일은 부질없다. 누구에게나 그리움은 있는 법이니, 눈여겨볼 대목은 오직 김에게서만 고유하게 드러나는 그리움의 질감이나 깊이 같은 것일 터이다.
김의 그리움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차별적이다. 김은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그리움이라는 틀로 해석하며, 이 때 그리움은 삶과 죽음, 근원, 본질 같은 것에 닿아 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93편의 시 모두가 그리움의 변주라 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지독한. 하나만 살펴보자.
그리움 껴안은 달빛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 나는 몰랑몰랑해진 익은 달까지를 삼킨다 / 달을 토해내자 그리움도 통통 튀어 나온다 / 달도, 그리움도 끝도 없이 토해지니 / 그리움은 기어코 내 몸을 칭칭 휘감고 // 나는 그리움에 묻혀 꼬르륵꼬르륵 사라져간다. - <해변의 달밤-정남진 바다4> 후반부.<그리움은 강으로 흐른다>가 보려주고 있는 김의 그리움은 구세주이자 사형집행자이며, 병이자 약이고, 살아 있는 까닭이자 죽어야 할 이유이다. 다시 말해 그 모든 것이다. 너무 처절해서 예술생산을 위한 전략이로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분명 그리움으로 고통 받고 있다.
시인이 고통스러울수록 속세 사람들은 좋다. 고통의 깊이만큼 아름다운 언어를 얻을 수 있으니까. 시화집이 그 증거다. 다만, 어쩌다 이렇게 깊은 고통에 빠져버렸는지 직접 만나 묻고 싶을 정도이다.
흐드러진 들꽃조차도 화사하기보다는 애처롭고 쓸쓸한 사진
사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시화집을 받고 나서 마에게 전화를 했다. "사진이 왜 이렇게 쓸쓸하냐. 인쇄가 잘못된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사진을 찍었냐." 따지듯 물었다. 답은 아리송했다. "그렇게 보이냐, 그럼 그런갑다."
마는 3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카메라로 장흥과 탐진강을 기록해 왔다. 시기나 목적에 따라 앵글과 노출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시화집의 사진처럼 쓸쓸한 경우는 처음이다.
시의 숨결에 사진을 맞추느라 그렇게 했을까, 짐작해보았지만, 아닐 것이다. 본인의 정서가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으면 작업을 하지 않는 마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동향의 선배라 해서 선뜻 셔터를 누를 위인이 아니다.
마 또한 어떤 병에 걸려 있는 게 분명하다. 그 병의 실체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계절로 치면 봄이나 여름의 활기와는 거리가 멀다. 강이나 바다도 그렇지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들꽃조차도 화사하기 보다는 애처롭게 보인다. 이런 징후는 수 년 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풍경 속 인물을 좋아했던 마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마의 사진에서 인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번 시화집에 이르러서 인물들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갯일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기는 한데 여기서 아낙네들은 풍경의 한 조각으로 기능할 뿐이다.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그리움이 가득한 시에 한없이 쓸쓸한 사진이 어울리고 있는 시화집이다. 국토의 끝자락 장흥의 두 예인이 고향의 강과 바다를 핑계 삼아 자신들의 내면을 고백하고 있는 책이다. 둘은 자신들의 그리움과 쓸쓸함으로 강을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사진·지역·보편정서 같은 내용이 일정한 성취를 보여주면서 한꺼번에 어울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동향의 후배로서 고마운 마음뿐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고통 끝에 나온 결과물인 것 같아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옳은 길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김과 마가 다음에는 좀 더 화사한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 5월14일(화) 오후 2시 장흥군민회관에서 <강은 그리움으로 흐른다> 출판기념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