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이번 방미를 통해 이른바 '코리아 세일즈'에 성공했다며 자화자찬 중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경제5단체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구본무 LG 회장 등을 비롯한 52명의 주요 경제계 인사들을 대동하여 간 것이 성공요인이라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방미 성과 리스트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재벌 총수들까지 총 출동하여 미국까지 날아간 만큼 '엔저'로 인한 수출 위기 등 굵직한 국내 경제 현안을 풀어낼 만한 논의들도 제기되었을 법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4박 6일간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 그 진실은 무엇일까.
민생경제 현안은 철저히 외면한 박근혜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수 있었던 의제 중 시급한 현안은 '엔저' 문제다. 일본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인해 일본산 제품의 가격이 크게 떨어져 국내 수출 기업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5월 13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발표한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속화하는 일본 엔저 현상으로 인해 수출 중소기업 53%가 매출이 감소했으며 수출을 포기하는 중소기업들까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대변자 역할에 충실하여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 수출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처지에 대해 동의를 구하고 일본의 '양적완화' 조치에 동조하는 미국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인위적인 환율 하락 정책에 대응한 박근혜 대통령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에 한미FTA와 관련한 현안들도 철저히 외면했다. 한미정상회담 전부터 국민들은 ISD 등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한미 FTA 독소조항에 대해 재협상하라고 요구해왔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서 한미FTA에 대해 "한·미 FTA의 긍정적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면서, 한미FTA로 인한 국내 산업 피해 등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는 미국과 협의할 수 있었던 굵직굵직한 현안에서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코리아 세일즈'하려다 내정간섭 받은 대통령
그렇다면 청와대가 자화자찬중인 '코리아 세일즈'의 실상은 어떠할까. 청와대는 이른바 '경제사절단'이 총동원되어 GM의 80억 달러 투자를 재확인 하는 등 '바이 코리아'에 성공했다며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GM이 제시한 80억 달러 투자는 조건부 투자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댄 애커슨 GM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80억 달러 투자에 내정간섭에 가까운 전제 조건을 달아 취재진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댄 애커슨 GM회장은 5월 8일(현지시각) 진행된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abandon Korea)"라고 하면서 '엔저'와 '통상임금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달았다.
GM 회장이 제기한 '엔저' 문제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본 아베 내각이 일본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양적완화'에 나선 것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GM 회장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엔저'에 대한 GM 회장의 문제제기는 '애로사항'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통상임금' 문제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통상임금' 문제는 고정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느냐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국내 자동차 대기업과 노조가 소송을 진행 중에 있는 국내 현안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늘어나면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휴일 근로 수당과 퇴직금이 늘어나게 된다. GM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가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게 판결되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국내 법원의 판단까지 뒤집어 달라고 요구한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더 큰 문제는 GM 회장의 요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답이다. 조원동 경제수석의 전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갖는 문제이니까 이 문제를 확실히 풀어가겠다"는 취지의 대답을 남김으로써, 현 재판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통상임금' 문제를 기업 입장에 유리하도록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의 판례까지 뒤집어야 한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자화자찬 한 '코리아 세일즈'는 외국자본에 투자를 구걸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위해 국민들의 임금 결정을 위한 법원 판결까지 외국자본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굴종 외교에 다름 아니다.
재탕삼탕 우려먹기 바쁜 청와대한미정상회담의 실상이 이와 같다보니, 정부는 기존에 논의되던 제안들을 재탕삼탕하거나, 정상급 외교의 격에 맞지도 않은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데 바빴다.
먼저 청와대는 이번 방미의 성과로 '포괄적 에너지 협력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셰일가스와 가스하이드레이트 등 에너지 개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성명' 전문 중 셰일가스 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과 셰일가스에 대해 "양국의 정부와 민간분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로 했다"는 것이 전부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란 결국 민간 학술 토론회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사실상 독점 생산 중인 셰일가스 개발 관련 기술을 한국 기업과 전면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셰일가스 기술선도국가인 미국과 최초로 셰일가스 협력을 추진키로 함으로써 국내 자원개발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산업부 관계자의 평가(에너지타임즈 5월 8일 보도)는 근거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가스하이드레이트 개발에 관련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4월 18일에 체결한 가스하이드레이트 연구 개발 정보 공유를 위한 협력 의향서 기한을 연장"했다는 것이 합의 내용의 전부다. 결국 한미 양국이 합의한 에너지 관련 협력이란, 관련 기술 이전이나 공동 개발 등 구체적 계획은 하나도 없는 '허울뿐인 협력'인 것이다.
청와대는 장기간 논의 중인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방안도 성과라 치장하고 나섰다. 1만5000개의 전문직 비자 쿼터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당시부터 논의되어 협상 체결 당시 확보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미국의 무성의로 유야무야된 오래된 이슈다. 서울경제는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5월 8일 보도에서 "이번 방미 기간에 어떤 새로운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설명이 없다"고 보도하였다.
그나마 확정된 것은 300여 명 규모의 대학생 연수 취업 프로그램 기한을 5년 연장한 것이다. '한·미 대학생 연수취업(WEST, Work, English Study, Travel) 프로그램'은 연간 300명 규모의 한국 대학생들에게 '어학연수 5개월+인턴 12개월+관광 1개월'의 미국 체류 일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올해 10월 말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사실 이런 합의는 정상급 회담이 아니더라도 실무진 수준에서 얼마든지 논의하고 합의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정상급 회담의 성과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미국이 과거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실천에 동참하지 않았음 돌아본다면, 한미정상이 발표한 '기후변화 공동성명' 발표도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청와대의 정상회담 합의내용을 일일이 뜯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얼마나 실속 없는 일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정상회담인가이번 방미 결과를 되짚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이익보다는 외국자본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였고, 주권 회복을 외치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들은 철저히 외면하였다. 정상회담의 진실이 이러하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은 있지도 않은 성과를 과대 포장하여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 한미정상회담이 사상 최악의 정상회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 중 발생한 초유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때문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성추행 사건으로 얼룩지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눈치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덧붙이는 글 | 김성훈 기자는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