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속사정>(원고지와 만년필 펴냄)을 읽으며 우선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과연 조선시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와 '우리 역사의 어느 만큼이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졌을까?'이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 여자들의 재산은 고스란히 여자들의 것인 경우가 많았다?'든가, '조선시대에 임신한 여성은 물론 그 남편에게까지 출산휴가를 줬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흡연찬가까지 쓸 정도로 골초였던 정조나 정약용 등과 같은 애연가들과 이덕무, 성호 이익과 같은 혐연자들의 담배 논쟁', '여성이 탄 가마를 검문해 미인이면 무사통과시키고, 추녀라고 생각되면 벌금형을 물렸다?'는 이야기 등 이제까지 여타의 책에서 그리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친목모임 같은 자리에서 화제로 삼고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정도의 이야기들과 흥밋거리로 알고 있어도 될 정도의 이야깃거리가 좀 많은 편이다. 이처럼 많은 이야기들 중 특별한 생각이 좀 더 머무는 것은 '조선시대의 고유한 물고기 잡는 방법' 정도로 알고 있던 '어살'을 둘러싼 싸움이다.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 <고기잡이(어살)>란 것이 있다. 갯벌이 훤히 드러났을 때 나무로 밀장을 빽빽하게 쳐두었다가 물과 휩쓸려 왔으나 물이 빠져나갈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힌 고기를 잡는 것을 그린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그마한 배에 고기를 담을 커다란 통과 함께 솥까지 걸려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고기를 잡는 것을 '어살' 혹은 '어전'이라 했다. 김홍도가 풍속화로 남길 정도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고기잡이 중 하나다.
가난한 백성 위해 만든 어살은 왜 권세가 차지가 되었나
여하간 이런 방법으로 고기를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 궁금해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책에 의하면 잘 잡히는 곳에선 한 번에 무명 500필에 해당할 정도의 물고기가 잡혔다는 공식적인 기록(세종실록 22년)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눌 이익이겠지만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무명 500필은 대단한 수입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돈벌이가 괜찮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게 된다. 사실 아무나 말뚝을 북북 박아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설치하지 못했다. 땅 한 평 없어도 얼마든지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노력만으로는 쉽게 돈을 벌 수 없었던 조선시대 백성들의 생계를 위한 호구지책으로 정해놨기 때문이었다.
'여러 도의 어살과 염분(鹽盆, 소금 굽는 가마)은 등급을 나누어 장부를 만들어서 호조와 각 도, 각 고을에 보관한다. 장부에 누락시킨 자는 장(杖) 80대에 처하고 그 이득은 관에서 몰수한다(어전을 사사로이 점유한 자도 같다). 어전은 가난한 백성에게 주되 3년이 되면 교체한다(<경국대전> 호전 어염조)'라고 말이다.
그러나 법은 있으나마나, 땅 한뙈기조차 가지지 못해 굶기 일쑤인 백성들을 위해 나라가 베푼 이 어살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그것도 가질 만큼 가져 밥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자나 권세가들이. 제멋대로 어살을 설치해 이익을 챙기거나, 평민이라 속여 이익을 취하는 무리들까지 생겨나게 된다.
그리하여 성종 1년에 호조판서 구치관이 "어살은 본래 관청과 백성에게 주어서 진상에 대비하게 하고, 또 먹고 사는 방도로 삼게 했는데, 지금 종친과 권세가에서 제멋대로 만들어 관청과 백성의 이익을 빼앗고 있습니다. 법에도 어긋나니 청컨대 금지하소서"라는 보고까지 하게 된다.
이런 보고가 있을 때마다 국왕은 흔쾌히 받아들여 혁파를 시도하지만 백성은 무지하고 법은 멀리 있으니 근처 사는 부자나 권세가들은 끊임없이 이 '황금어장'을 노렸습니다. 이것은 관리들도 마찬가지라서 위에 나온 것처럼 부당한 폐단을 고치라는 소리도 하지만 성종 13년 훈부 당상 노사신과 윤계점은 "묵은 병이 있는 공신이 많은데 약재의 수량이 적어, 모두에게 두루 주기 힘듭니다. 그러니 제도의 어살을 하사하여 부족한 수량을 보태게 하소서"라고 합니다.공신의 병을 치료하는 비용을 여기서 뽑게 해달라는 말인데 뻔뻔하기 그지없죠. 그러나 성종은 "어살은 마땅히 가난한 백성에게 주는 것인데 재상이 어찌 구해서 얻으려 하는가!"라며 거절합니다. 요즘에도 '퇴직 국회의원'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종신 연금'을 주자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요즘에는 성종 같은 임금은 없어서인지 무사통과되더군요. 그래도 양심 있는 관리도 많아서 실록의 기사에 사신의 논평이 달립니다. - <조선의 속사정>에서수입이 꽤 괜찮았나보다. 이 어살을 두고 밀고 당기는 싸움(?)이 계속된 것을 보면. 이 오랜 싸움을 한방에 박살낸 것은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수입이 좋은 어살을 총애하는 후궁이나 마음에 드는 신하에게 마구 나눠줬다. 그런데 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마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변명까지 하면서 종친들과 왕자들에게 어살을 나눠준다.
그리하여 어살은 이때부터 '법으로는 가난한 백성들의 몫으로 되어 있지만 특별한 계층에게 하사하는 주요 소득원'이 되고 만다. 영조가 재위 26년에 궁가에 퍼져있던 어살을 모두 거둬 균역청으로 소속시킨 후 일부는 세원으로 쓰고 일부는 백성들에게 돌려줄 때까지 몇 백 년 동안 말이다.
참고로 효종실록 6년 11월에 '부안현(지금의 전북 부안) 소재 20개의 어살 중 왕자 소유가 11곳, 성균관 소유가 8곳, 부안군 소유가 1곳인데, 백성들의 유일한 몫인 부안현 소유마저 숙경공주(1648(인조 26)~1671(현종 12)) 집안에 빼앗겼다'고 전라감사 정지화가 보고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나머지 지역의 어살들이라고 별 수 있을까 싶다.
'어살'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날 대기업을 떠올리다
이 책의 부제는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이다. 얼핏 조선시대의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사사로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엮은 책 같지만, 취지 중 하나는 '시대는 변했지만 오늘날과 비슷한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자. 잘못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어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돈벌이가 좀 괜찮다 싶으면 파리떼처럼 달려들어 서민들의 밥줄을 옥죄는 일부 재벌 기업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1980년대 말, 돈이 된다고 하니 대기업들이 새우젓이나 된장까지 수입한다는 뉴스들부터 최근 대기업들이 갖은 술수로 영세상인들을 옥죄고 있다는 뉴스들까지.
평민으로 가장해 어살을 차지한 당시 부자들처럼 가짜 서민이 되어 보금자리주택이나 장기 임대주택을 차지한다거나 서민들을 위한 공공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들도 떠올랐다. 문득 '서민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에 외제차가 수두룩하다'는 얼마 전의 뉴스가 떠오른다.
보통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인삼은 우리만 생산하는 줄 압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최대수출국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지금 세계 최대 인삼 대국은 우리가 아니라 스위스입니다. 스위스에서는 인삼이 나질 않지만 스위스는 70년대부터 인삼을 연구해 인삼의 주요성분들을 이용한 인삼 가공 건강식품들을 출시했고 사포닌을 최초로 표준화시키기도 했죠. 약을 달여 먹는 것을 인삼의 주요 섭취 방법으로 알고 다른 연구는 안하는 사이, 스위스는 이렇게 현대화해 세계 시장에서 스위스 인삼 제품의 점유율을 40%까지 올렸고, 놀란 우리도 다양한 인삼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연간 수출액은 스위스는 30억 달러, 우리는 1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우리조차 스위스 인삼제품을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가공된 것 말고, 뿌리삼 그 자체는 우리가 최고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최대 수출국은 캐나다로 84.3(단위 백만 달러)이고, 한국은 64.1, 중국은 44.2, 홍콩이 20.9, 대만이 9.2 정도입니다. 중국, 홍콩, 대만이 비슷한 권역인지라 묶어버리면 한국은 3위로 밀려나는 것입니다. - <조선의 속사정>에서지난날 명성이 자자했던 우리의 인삼이 처한 현실도 다소 아쉽고 씁쓸하게 읽었다. 이외에도 이 책은 조선의 사회와 경제, 국방과 정치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4부로 나눠 들려준다.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이란 부제에 걸맞게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어살'이나 '인삼'처럼 오늘의 아쉽고 씁쓸한 현실들과 잇닿아 있다. 그래서 더 깊이 와 닿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속사정> |권우현 (지은이) | 원고지와만년필 | 2013-04-18 | 정가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