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와 둘이서 영원사 계곡을 찾았습니다. 3월부터 직장을 옮겨 주말 부부가 되고 나선, 주말이면 함께 나들이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원주 치악산 골짜기에 있는 영원사는 원주에서 근무할 때 학교 아이들과 함께 답사 온 적고 있고, 동료 교사들과 함께 오른 적도 몇 번 있었는데 아내와 함께 온 건 처음이니 그동안 참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차장에 차 세우고 계곡 입구에 들어서니 연녹색 새순과 연분홍 꽃잎이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 만듭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건 아내나 나나 마찬가지지만 봄날 숲을 보며 느끼는 것들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건 다래 순이고 저건 미역취라며 산나물 이름을 잘 아는 아내와는 달리, 나는 다람쥐가 돌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산길에서 뱀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자신 있게 얘기합니다. 비슷한 시기 농촌이란 환경 속에서 자란 건 같지만 그 공간에서 주로 경험했던 일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계곡의 즐거움은 꽃 피고 새순 돋는 숲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끼 낀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 돌무더기 흙더미 사이에서 피어난 노란 민들레며 양지꽃, 여기 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보랏빛 제비꽃, 깨알 같이 작은 이름 모를 들꽃들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 다람쥐다."아내 말대로 어디선가 튀어나온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가더니 바위 위에 앉았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람쥐는 바위 위에서 한참 머물러 있었습니다. 덕분에 카메라 들고 온전한 다람쥐 모습을 찍었습니다.
다람쥐에 얽힌 추억"다람쥐 보면 어떤 생각이 나?""어, 작다. 귀엽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거…."
평소에 겁이 많아 움직이는 동물이면 다 징그럽고 싫다는 아내지만 다람쥐만은 귀엽다고 얘기합니다. 아내처럼 다람쥐가 작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곳간 벽에 구멍 뚫고 사람들 먹을 곡식 축내고, 시궁창 드나들며 전염병 옮기는 일반 쥐와는 달리 산골짝에서 도토리며 밤 주워 먹고 사는 다람쥐는 사람들에게 미움 살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초등학교 다닐 때였어."영원사 계곡을 걸으며 아내에게 다람쥐와 관련된 어릴 적 추억을 얘기했습니다.
고개를 넘어 학교에 다녀야 했던 그 시절 고갯길에서 다람쥐를 만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꼬맹이들은 다람쥐를 발견하면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꼭 한 번 잡고야 말겠다는 듯 기를 쓰고 던졌습니다. 하지만 다람쥐가 꼬맹이들의 돌팔매질에 맞을 만큼 둔하지 않아 매번 돌팔매질은 엉뚱한 곳에 떨어지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딱 한 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의 돌팔매에 정말로 다람쥐가 맞았습니다. 돌에 맞은 다람쥐는 또르르 굴러 산비탈 돌 사이에 끼었습니다. 다람쥐는 죽어서 돌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야, 잡았다.""내가 던진 돌에 맞은 거야.""아니야. 내가 던진 돌이야."꼬맹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산비탈로 내달았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친구는 의기양양 손으로 다람쥐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친구는 손에 쥐었던 다람쥐를 뿌리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죽은 듯 있던 다람쥐가 친구의 손을 할퀴고 물어뜯었습니다. 친구의 손에 매달렸던 다람쥐는 순식간에 비탈로 떨어져 잽싸가 산비탈을 타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다람쥐에게 할퀴고 물린 친구는 피가 난 손을 움켜쥐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람쥐 잡았다고 환호하며 함께 뛰어갔던 친구들은 우는 친구를 둘러싸고 울지 말라며 달래지만 친구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습니다.
작고 힘없는 다람쥐라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상에게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는 걸, 다람쥐가 꼬맹이들에게 보여준 것이지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조차 들어본 적 없는 작은 꼬맹이들은 제 아무리 힘 없는 생명체라도 자신을 해칠수도 있다는 위협에 직면해서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알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