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제조업체 배상면주가의 대리점주가 자살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배상면주가 측은 '밀어내기(제품강매)' 등의 잘못된 영업 관행 사실을 인정하며 공식 사과했다.
앞서 지난 14일 배상면주가 인천 부평·서구지역 대리점주 이아무개(44)씨는 '본사의 제품 강매와 빚 독촉을 더는 못 견디겠다' '남양유업은 빙산의 일각이다' '살아남기 위해 판촉 행사를 많이 했지만 밀어내기는 여전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대리점 창고에서 목숨을 끊었다. 배상면주가는 밀어내기 영업 관행을 부인해왔다.
대표 "신제품 막걸리 출시 과정에서 '밀어내기' 등 잘못된 영업관행 발생"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는 16일 오후 경기도 부천 복사골장례시작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조문한 뒤 "(자체) 조사해 보니, 2010년 신제품 출시 때 밀어내기를 포함한 잘못된 영업 관행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본사가 썩은 술까지 강매했다'는 일부 대리점주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배 대표는 "대리점이나 본사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잘못된 영업 관행을 고치기 위해 지난 5년 전부터 무수한 노력을 다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배상면주가는 2008년 먼저 돈을 입금한 대리점에 한해 물량을 보내주는 선결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밀어내기 등의 강매가 벌어졌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배상면주가는 지난 2010년 신제품 막걸리를 출시했지만 판매가 부진하자 1년 후 출시를 중단했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밀어내기 등의 과도한 제품 강매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동료들 역시 이씨가 본사 신제품 막걸리 판매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배 대표는 잘못된 영업 관행의 원인이 전통술 시장의 부진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통술 시장이 나빠져 저희 회사도 매출이 1/5 급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문제점이 야기됐다"고 말했다.
이어 배 대표는 "고인은 과거의 잘못된 영업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준엄한 꾸지람을 남겼다"며 "회사 대표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회사는 밀어내기 등의 영업 관행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배상면주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만나 "반품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해도 세법상 '유통기한이 정해진 주류의 반품'이 허락되지 않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배상면주가는 이날 유족과도 장례절차·보상 등에 합의했다. 회사는 유족과 구체적 일정을 의논한 후 고인의 장례를 회사장으로 치룰 계획이다. 또한 다른 대리점주들과도 보상·재발방지 대책을 두고 계속 협의해가겠다는 자세이다.
정치권·시민단체, 배상면주가 등 기업 불공정행위 진상규명 모임 꾸려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배상면주가와 더불어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조사해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전국 중소상인·자영업자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협의회는 배상면주가 대표가 방문하기 전인 이날 오전 이씨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기업의 고질적인 횡포를 정확히 조사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자 진상규명 대책모임(아래 대책모임)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책모임에는 민주통합당·진보정의당 등 야당과 중소상인·자영업자 등이 참여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공정위 등 관련 부처와도 긴밀히 협조하면서 대리점주들이 겪는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은 "대리점주와 같이 힘 약한 중소상인들이 스스로 살 길을 마련하지 못하면 다시 '갑'의 노예상태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대리점주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상인들이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본사의 불공정행위에 피해를 입은 남양유업 대리점주와 편의점주 등도 고인의 빈소를 조문했다. 오명섭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가맹점주협의회 대표는 "배상면주가 대리점주뿐만 아니라 올해 목숨을 끊은 편의점주도 3명이나 된다"며 "정부는 하루빨리 이런 문제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