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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가 양심수 석방을 통해 국민 대통합 의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양심수 석방과 사면복권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가 양심수 석방을 통해 국민 대통합 의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1년 2월 26일이 출소일이었다. 남편 윤기진은 1998년 명지대 총학생회장이 된 때로부터 10년째 수배 중이던 2008년 2월 27일 잠시 의탁해 있던 지인의 아파트에서 체포, 꼬박 3년 형을 살고 출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만기출소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던 그에게 구속영장이 다시 떨어졌다. 그간 감옥에서 쓴 편지들이 이적표현물이라 했다. 독방에서 짐까지 다 싸놓고 있던 그는 눈앞이 깜깜했다 한다. 출소를 이틀 남겨두고 그는 다시 영장실질심사 판사 앞에 섰다. 당시 대학 새내기 강연 차 거제도에 있던 나는 남편의 갑작스런 영장청구 소식에도 재판장에 갈 수 없었는데 듣자 하니 그날 영장실질심사 도중 많이 울었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3년 징역이 끝나고 귀가한다는 것은 그에게, 1996년 연세대에서 있었던 8·15 행사에서 구속된 이후 15년 만의 귀가였다. 또 결혼 이후 한 번도 한 지붕 아래 살아보지 못한 가족들과의 첫 생활이었고 한 번도 아버지 노릇을 해준 적 없는 딸에게 초등학교 입학식이나마 함께 가주는 것으로 아비 노릇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태어난 후 한 번도 함께 살아본 적 없는 딸이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는데 그 입학식은 같이 가주고 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숱한 기대에 배반당하며 이제 그만 자수하라는 충고와 유혹 속에서도 정치수배의 생활을 고집스럽게 견뎌냈던 그가 딸 입학식 이야기를 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운 것이다.

다행히 그때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감옥에서 이미 검열받은 편지를 두고 벌어진 초유의 법정공방이 출소와 동시에 시작된 터라 15년 만의 사회생활은 여전히 살얼음판 위였다. 1년이 넘는 불구속 재판 끝에 그는 작년 10월 말 1심 재판부에서 다시 1년6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유죄판결이 있은 후 3년 안에 같은 죄를 범하게 되면 집행유예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교묘히 계산하여 공안검찰은 판결 후 3년 내, 즉 3년 징역살이 안에서 그의 범죄를 만들어내고 기어코 그를 구속하려 든 것이다. 그러자니 법무공무원의 2중 3중의 검열을 거친 편지를 무리하게 형사처벌의 도마 위로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3년 동안 감옥의 독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읽고 쓰는 것이다.

15년 만 윤기진의 귀가... 하지만 다시 시작된 옥살이

남편이 다시 구속되고 5개월이 지난 4월 2일 오전 서울시경의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관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이번에는 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왔다. 5년 전 출판한 시집에 실은 시 한 편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내용과 이제는 사라진 단체며 사라진 인터넷 카페 활동 등이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5월 16일) 신촌에 있는 서울시경 보안수사대 조사실에서 첫 번째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들의 질문이란 것은 사실 자체보다 한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가늠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말하자면 이 사람이 얼마나 빨갱이인지 보라는 것이다. 스무 살 문학도가 문학을 배운 현대문학부도 여전히 이념서클이고, 비리재단 몰아내자는 주장도 공산화 주장의 다른 말이라는 것이다.

가장 한심한 것은 압수수색 영장에는 잘 나와 있지 않던 남편의 옥중 편지 수발 여부에 대한 조사 부분이다. 수사관은 '배우자 윤기진의 편지를 받아 수정 편집 반포한 사실이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편집 게시하였는가?',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하였는가?' 반복해 물었다.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인 윤기진의 옥중서신 작성이 유죄로 확정되면 그것을 받아 인터넷에 올린 사람들 모두 이적표현물 배포의 공범으로 만들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질문이다. 그의 주장 글은 대부분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논거를 충분히 제출하면서 쓴 기획 글들은 한반도 정세 전망과 관련하여 북의 정치체제나 사상, 북미정치협상의 과정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읽혔는지는 모르나 지난 재판 때 검사 측 주장을 듣자니 그의 글 <북미열전> 같은 경우는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2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몹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건데, 나는 바로 그 지점, 그런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의 글이 나름 호평을 받고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했다면 그것이 바로 그 글의 논리성과 객관성의 중요한 증거가 아니겠나 싶었다.

그 글을 읽고 누군가 좌절해서 급사라도 했다면 도의적 책임이라도 물을 수 있겠으나 감옥의 검열까지 거친 서신 한 장을 들고 떠는 호들갑치곤 망신스러울 정도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감옥의 검열을 부당하다고 느꼈음에도 검열자를 존중해 그의 글 중 몇 개는 검열자 요구대로 수정했고, 글 몇 편은 아예 통째로 밖으로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철저한 감시와 국가기관의 검열 속에서 통과된 글을 다시 처벌대상을 삼다니 검열과 허불허는 그를 재구속하기 위한 함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시부모님께 남편 글 보여준 게 죄? '패륜'을 바라는 경찰

양심수의 글은 그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사유의 보고이고 극히 제한된 세상과의 소통인데, 이를 받아 출판하거나 대중적 공간에 공개했다는 것이 어떻게 범죄가 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정치범이나 사상범이 옥중집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성서시대 사도바울도, 일제강점기 신채호나 안중근, 군부독재 치하 김대중, 문익환, 신영복 모두가 감옥의 사색을 세상에 더했다.

당시 그의 글 몇 가지를 묶어 교양자료처럼 활용하기도 한 모양인데, 이번 소환조사에서 그 혐의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 평소 남편의 편지가 오면 시부모님께도 큰 활자로 뽑아 보여드리곤 하는데 남편 글들을 사무실에서 주로 기거하시는 시아버님께 이메일로 드린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윤기진이라는 사람의 삶이 가장 이해되지 않을 사람들은 어쩌면 그의 부모님이실 수도 있다. 그의 양심과 신념을 시부모님께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시부모님들의 인생은 당신들이 생각하시기에 얼마나 허탈하고 불행할 것인가.

나는 그런 이유로 그분들이 당신 외아들의 신념을 깊이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생각하면 술을 드시는 아버님, 장손 없는 제사상 앞에서 홀로 엎드려 있는 아버님, 아들에게 편지 한 장 쓸 글재주가 없어서 답답해하시는 어머님께 아들의 편지를 공유하는 것은 며느리로 당연한 일이었다.

헌데 한국의 경찰은 그것까지도 조사 목록에 담아놓은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고 삼강오륜이고는 거듭되는 고위급들의 패륜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나라가 이미 됐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의 트집잡기가 나를 급거 봉건적 인사로 모는 지경까지 된 것이다. 양심수 윤기진의 아내, 나는 오랜 수배를 견디고 투옥 중인 남편이 쓴 글을 혼자 읽고 활활 태워버렸어야 옳았는가, 아니면 경찰서에 들고 뛰어가 신고라도 했어야 옳았나.

제아무리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었어도 어미와 배우자는 아들과 배우자를 믿고 품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물며 일제강점기 독립을 외쳤던 사람들을 향해 언론이 공산비적이니 불령선인이니 했다 해도 역사는 그들의 행동을 그 시대 최고의 애국이라 하는데, 이 분단시대에 보수세력이 아무리 빨갱이니 종북이니 비이성적 나팔소리를 왕왕 울려도 통일을 하겠다는 그를 가족인 우리가 지지하지 않으면 그 무슨 콩가루 집안인가 말이다.

그 오랜 수배바라지와 옥바라지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는 못할망정 남편 편지 공개했다고 범죄공모자를 만드는 이 나라의 파렴치한 수준이 실로 걱정이다. 국가보안법, 역설적이게도 이 법이 있는 한 이 나라의 정통성은 의심받을 것이고, 친일매국 정권의 태생적 공포심은 끊임없이 조롱당할 것이다.


#윤기진#황선#국가보안법#한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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