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 4대 정론지에 속했던 <한국일보>의 위상은 지난 20년 동안 장재국·장재구 두 형제가 경영하면서 끊임없이 추락했습니다. 검찰은 당장 구속 수사해 이들의 배임 혐의를 명백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전국언론노동조합 강성남 위원장) 오는 6월 창간 59주년을 맞는 <한국일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사 지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진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주인 장재구 회장의 구속수사 및 사측의 징계 철회를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강성남 위원장과 이필립 언론지키기천주교모임 고문, <한국일보> 기자와 노조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부당징계 철회하라", "장 회장을 구속 수사하라" 등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비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장재구 회장의 불법·부당 인사를 당장 철회하고, 경영파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 ▲해외 도피와 증거인멸을 일삼는 장 회장을 조속히 구속 수사할 것 등을 요구했다.
기습적인 인사조치, 기사 바꿔치기... 갈등의 골 어디서부터 지난달 29일 <한국일보> 비대위는 검찰에 장재구 회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장 회장이 2006년 종로구 중학동 사옥 매각 과정에서, 사옥을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우선매수청구권)를 포기해 약 20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다.
사측은 이에 즉각 대응했다. 이틀 뒤인 5월 1일, 경영진은 이영성 편집국장을 창간60주년기획부장으로, 하종오 전 사회부장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는 등의 인사를 감행했다. 비대위는 "보복 인사이자, 측근을 주요 부서 부장으로 발령해 검찰 수사에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상원 <한국일보> 비대위원장은 "29일 장재구 회장을 고발한 후 사측에서 인사조치, 징계 등 여러 방법으로 저희를 옭아매려고 한다"면서 "그러나 지난 3주 동안 흔들림 없이 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한국일보>가 지키고 싶은 가치와 법질서가 설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반드시 결과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사측의 부당 인사에도 여전히 정상적으로 지면 제작을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측은 데스크의 승인권을 빼앗고, 편집국 밖에서 몰래 지면을 바꿔 1면 단독기사를 뒤쪽 경제면 구석으로 빼돌리는 등의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기사는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의 압수수색 관련 내용으로, <한국일보>가 단독 취재한 기사다.
변태섭 <한국일보> 기자(32)는 "편집국 내부에서는 똘똘 뭉치는 분위기"라며 "사장은 계속 사원들에게 '노조가 악의적'이라는 메일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 시절 '시사저널 파업사태' 등을 보며 글을 썼었는데 그게 내 얘기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실제 당해보니 편집권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필립 고문은 "<한국일보>는 우리 언론노동조합운동사에 아주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언론사"라며 "장재구 회장이 지금이라도 아들, 딸과 <한국일보>를 위해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