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박근혜정부의 인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대를 가져볼만한 합리적인 인사로 보였던 것이 서남수 교과부 장관. 그는 이전부터 고교서열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을 주창해 왔던 비교적 합리적인 인사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관직을 수행한 지 불과 몇 달도 안 되어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의 이전 모습에서 병들대로 병든 우리 교육을 정치적 논리로 왜곡시키고 악화시키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것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최근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곽노현 교육감 시절 복직된 지 하루 만에 이주호 장관에 의해 해임된 박정훈, 조연희, 이형빈 세 교사에 대한 해임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당연히 그들을 즉각 복직시키는 조치가 취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문용린 교육감은 역시나 법원의 판결도 뭉갠 채 시간을 보냈고, 항소를 포기한 교과부에서는 서울교육청에 이들의 재해임 조치 명령을 내렸다.
사실 이들 세 교사는 법원의 판결 이전에 당연히 복직이 되어야 할 이들이었다. 조연희 교사는 15억 원에 이르는 사학 비리를 고발하여 투명사회상까지 수상한 이다. 그는 우리 사회 부패 방지를 위해 보호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이였음에도 당시 교육청의 내부고발자 공개라는 협조를 받아 오히려 해임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다.
박정훈 교사는 사면복권 조치가 취해져 2006년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복직권고공문까지 보냈던 이다. 이형빈 교사는 서남수 장관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고교 서열화의 주범인 자사고에 반대해 교사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사직한 이다. 그런데 이들 세 교사가 지금 법적인 교사 신분을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부의 임용취소 명령으로 인해 학생들이 있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교육청 앞 길거리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22일 광주를 방문한 서남수 교과부장관이 5·18민중항쟁을 '정치적으로 대립되고 있는 이슈', "교육하는 입장에서 최대한 해야 될 것은 '내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반성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이가 교과부 장관이다. 교과부 장관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교과서에 5·18민중항쟁이 민주화 운동으로 명시되어 있고, 이미 전국 초·중·고 교과과정에 5·18 역사 교육이 포함되어 실제 교육도 이뤄지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가 같은 자리에서 발언한 "교육하는 사람들로서 염두에 둬야할 하나가 헌법정신이다"라는 말을 그는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임이 명시되어 있다. 5.18민주화 운동이야말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이만큼이나마 진전시키게 한 자랑스러운 역사임을 가르치는 것이 그가 말한 헌법정신을 염두에 둔 교육이 아닌가? 서남수 장관은 헌법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직도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도들의 난동' 쯤으로 이해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문제는 그가 그저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개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공인이며 더욱이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지는 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은 우리나라 교육의 향방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교수 시절에는 교사승진제도 개혁을 부르짖고 우리나라 사학법인을 '위장형 영리법인'이라며 비판하는 데 앞장섰던 이주호 장관이 교과부 장관이 되면서 그의 예전 주장들을 백지화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보수적 교육정책의 선봉에 서는 것을 우리는 지켜봐야만 했다. 그가 교과부 장관을 하고 있는 동안 어린 학생들의 자살은 계속 늘어났고 학교 폭력 관련 기사는 끊이지 않았다. 공교육의 고통에 짓눌린 교사, 학생, 학부모의 신음 소리는 더욱 깊어만 갔다.
정권이 바뀌고 서남수 교과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우리 대한민국 교육의 불행이 조금은 덜어질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와 희망을 가져보았다. 그러나 최근의 그의 발언과 행보는 불과 몇 달 전에 벗어난 이주호 전 장관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교육을 교육의 눈으로가 아니라 정치의 눈으로, 보다 정확하게는 특정 정권의 눈으로 보고 재단하는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서남수 장관에게서 이주호 전 장관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의 이런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해고무효판결을 받은 세 교사들을 즉각 복직시키게 하고, 5.18 관련 발언에 대해 국민 앞에 진정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정어린 사과를 하는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과부 장관이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교육적인 모습이 아닐까?
제2의 이주호를 바라지 않는 나는 아직 서남수 장관에 대한 이런 기대와 미련을 버리고 싶지 않다. 서남수 장관이 그의 말대로 '헌법정신'에 투철한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