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파일에 갈 곳을 나는 이미 정해두었다.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산15번지 천을산 입구에 있는 증심사가 바로 그곳이다. 이유는 이 사찰이 대구경북권에서 가장 큰 괘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괘불을 일 년 중 단 하루, 초파일에만 걸기 때문이다.
증심사는 1950년에 창건된 절이다. 정오 화상께서 창건하셨는데, 처음에는 동네 이름을 그대로 옮겨 시지사라 불렀다. 그런데 1955년 탑을 세울 때에 괘불께서 꿈에 나타나 증심사라 개명을 했다고 한다.
대단한 괘불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는데, 과연 높이가 12m나 되고 너비도 6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괘불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자 옆에서 합장을 하고 있던 할머니 신도 한 분이 '작년에는 날씨가 나빠서 괘불을 반밖에 못 걸었다'고 말씀하신다.
초파일 하루만 걸리는 증심사 초대형 괘불할머니의 말씀은 증심사 괘불이 얼마나 큰지를 잘 나타내주는 명쾌한 증언이다. 괘불이 너무 커, 강풍이 부는 날 걸었다간 당간지주와 함께 넘어져 사람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괘불을 지켜보고 있던 내 마음이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흐뭇하고 상쾌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뇌리를 시원하게 스쳐가는 이 기분!
웃음꽃 핀 내 얼굴을 바라보던 할머니도 덩달아 신이 나셨는지 "인간문화재가 그린 괘불이야"라며 "문화재를 관리하는 관청에서도 전에 와서 사진을 찍어 갔다"고 자랑하신다. 1955년 스님의 꿈에 괘불이 나타나신 이후 제작되었으니 창작된 지 약 70년 된 작품이다. 즉, 아무리 인간문화재의 작품이라 해도 아직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는 않은 상태이다. 100년이 넘어야 문화재 지정을 받기 때문이다.
괘불이 다 올라간 직후 천을 벗기는 데 자세히 보니 여러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 이름 중에 괘불 창작자인 인간문화재의 성명이 들어있는지는 미처 확인을 할 수가 없다. 주지스님께 여쭤보면 알 수 있겠지만, 한창 바쁜 초파일 행사 와중에, 그것도 처음 증심사를 찾은 나그네가 그럴 수는 없다.
"다음에 다시 와서 꼭 알아 봐야지."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상도 증심사의 자랑거리다. 요즘 사찰에서 흙으로 빚은 천왕상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단다. 역시 나무로 제작한 천왕상을 보는 것과는 눈에 와닿는 질감부터 다르다. 유리창 안에 보관되어 있는 까닭에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지만, 부드럽고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뚜렷한 천왕상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서운 느낌보다는 거대한 인형과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증심사 괘불은 초파일에만 볼 수 있다. 보통 때는 말아서 건물 안에 고이 모셔둔다. 따라서 평소에 증심사를 찾은 이들은 괘불을 볼 수가 없다. 그런 이들에게는 흙으로 빚은 사천왕상이 '꿩 대신 닭'이 되는 셈이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사천왕상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봉황 대신 꿩' 정도로 표현하자.
흙으로 빚은 사천왕상도 증심사의 자랑거리증심사는 고산초등학교 뒤로 들어가 천을산 등산로 입구에 서면 멀리 굽은 길 끝에 절이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초입의 산불 감시 초소를 왼쪽에 버려두고 오른쪽으로 사뭇 걸으면 증심사에 닿는다. 탑 뒤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도 '대구경북 일대에서 가장 큰 괘불이 모셔져 있고, 장엄한 사천왕상이 수호하고 계신다'고 쓰여 있는 증심사. 괘불과 사천왕상을 보기 위해서도 한 번은 꼭 찾아가보아야 할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