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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 망덕포구.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에 몸을 섞는 곳이다. 왼쪽이 전남 광양이고 오른쪽이 경남 하동이다.
광양 망덕포구.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에 몸을 섞는 곳이다. 왼쪽이 전남 광양이고 오른쪽이 경남 하동이다. ⓒ 이돈삼

전남 광양은 경남 하동과 맞닿아 있다. 가운데로 물길이 흐른다. 사람과 자동차가 오가는 땅길로도 연결돼 있다. 이 길 위에서는 모두 '우리'로 만난다. 좌파도 없고 극우도 없다. 지역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단순한 도계(道界)이고 지도에 표기된 지명일 뿐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33주기를 전후해 펼쳐진 역사 왜곡 시도를 보면서 이곳이 생각난 이유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는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싶어서다.

 광양 망덕포구 풍경. 배알도 앞으로 횟집과 주택이 줄지어 있다.
광양 망덕포구 풍경. 배알도 앞으로 횟집과 주택이 줄지어 있다. ⓒ 이돈삼

 망덕포구의 쉼터. 오가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망덕포구의 쉼터. 오가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 이돈삼

광양 망덕포구에 섰다. 지난 21일이다. 이른 봄 섬진강에서 건져 올린 강굴(벚굴)로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했던 곳이다. 가을이면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까지도 돌아온다는 포구다. 계절이 초여름을 향하는 데도 포구의 바람결이 살랑살랑 감미롭다.

장장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물이 남해바다와 몸을 섞어 함께 흐른다. 진안 팔공산에서 발원해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 하동, 광양까지 흘러온 물이다. 물줄기에 강변마을 주민들의 애환이 함께 서려있다. 우리 국민의 마음도 바닷물처럼 하나되는 날을 그려본다.

 망덕포구의 배알도 풍경. 그 뒤로 광양과 하동을 잇는 금남대교가 보인다.
망덕포구의 배알도 풍경. 그 뒤로 광양과 하동을 잇는 금남대교가 보인다. ⓒ 이돈삼

지명의 유래도 재밌다. 덕유산이 보인다고 해서 '망덕(望德)'이라 했단다. 왜적의 침입을 망봤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망덕마을 앞바다에 떠있는 섬 배알도가 보인다. 솔숲으로 둘러싸여 멋스럽다. 건너편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어서 '배알(拜謁)'이라 이름 붙었다고 한다.

뒤로는 광양과 하동을 잇는 금남대교가 놓여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위용도 그 너머로 펼쳐진다. 하동과 남해를 배경으로 풍경화 한 폭을 완성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포구 사람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다. 지역경제를 이끄는 견인차이면서도 포구의 환경을 한순간에 바꾼 주범이기도 하다. 일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지금도 실향민으로 살고 있다.

김을 처음 양식했던 시식지도 제철소에 묻혔다. 김 양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궁기마을의 김여익(1606∼1660)이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에 엉긴 김을 우연히 보고 산죽과 밤나무 가지로 지주를 세운 것이 시초다. '김'이란 이름도 그의 성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광양 망덕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광양 망덕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내부. 집안에 윤동주와 정병욱에 얽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내부. 집안에 윤동주와 정병욱에 얽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이돈삼

윤동주 유고 보존했던 가옥

포구를 따라 선소마을 쪽으로 간다. 포구는 여전히 한산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행자들이 간혹 보일 뿐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광양과 하동의 산하를 번갈아보며 걷는데 집 한 채가 눈길을 끈다. 오래 전 시골마을의 가게를 떠올리게 하는 겉모양에 낡은 함석지붕을 이고 있다.

조그마한 안내판에 윤동주(1917∼1945)의 육필원고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보관됐던 곳이라고 씌어있다. 이른바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다.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돼 있다. 안내판이 아니었다면 포구의 낡은 집쯤으로 여기고 그냥 지나칠 곳이다.

유리문 안으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옆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멍 뚫린 마룻바닥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다. 문짝과 벽지도 너덜너덜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방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동주의 육필 원고 표지. ‘윤동주 드림’이라는 의미로 ‘尹東柱 呈’이라 씌어 있다.
윤동주의 육필 원고 표지. ‘윤동주 드림’이라는 의미로 ‘尹東柱 呈’이라 씌어 있다. ⓒ 이돈삼

시인 윤동주는 1941년 자신의 시를 책으로 엮으려고 했다. 하지만 일제 치하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우리말로 된 책자 발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인은 열아홉 편의 시를 써놓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까지 붙여놓은 터였다. 여기의 서문을 시로 적어놓은 것이 지금도 우리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서시(序詩)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
거러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왼쪽)와 정병욱. 정병욱 가옥의 안내판에 있는 사진이다.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왼쪽)와 정병욱. 정병욱 가옥의 안내판에 있는 사진이다. ⓒ 이돈삼

 윤동주의 육필원고를 숨겨뒀던 정병욱 가옥의 마룻장. 정병욱의 어머니는 이 마룻장을 뜯고 그 아래에 윤동주의 원고를 보관했다고 한다.
윤동주의 육필원고를 숨겨뒀던 정병욱 가옥의 마룻장. 정병욱의 어머니는 이 마룻장을 뜯고 그 아래에 윤동주의 원고를 보관했다고 한다. ⓒ 이돈삼

시인은 이 원고 표지에 '윤동주 드림'이라는 의미로 '尹東柱 呈'이라 써서 정병욱(1922∼1982)에게 맡기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 시인은 항일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원고를 자신의 어머니한테 맡겼으며, 어머니는 이 집의 마룻장을 뜯어내고 그 안에 숨겨뒀다고 전해진다. 이 원고는 1948년 시인이 생전에 써뒀던 다른 원고와 함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돼 빛을 봤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정병욱과 그의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지금껏 민족시인 윤동주의 존재를, 그의 시 '서시'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까마득히 몰랐을 것 같다. 포구의 허름한 주택이 더 애틋하게 다가선다. 이 집의 보존과 유지를 둘러싼 광양시와 소유주의 이견이 좁혀져 온기로 가득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망덕포구의 나무데크 길. 나무의자도 놓여있어 걸으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망덕포구의 나무데크 길. 나무의자도 놓여있어 걸으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 이돈삼

 망덕포구와 섬진강. 망덕포구를 따라 최근 나무데크가 놓여 맘놓고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망덕포구와 섬진강. 망덕포구를 따라 최근 나무데크가 놓여 맘놓고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 ⓒ 이돈삼

포구를 따라가는 길은 섬진강을 거슬러 선소마을과 신답마을로 이어진다. 이곳이 전어의 고장임을 알리는 전어조형물 '망뎅이'도 눈길을 끈다. 나무 데크가 강변을 따라 이어지고 나무의자도 간간이 놓여있어 잠시 쉬어간다.

벚나무 줄지어 선 신답마을에선 만선의 기쁨을 흥겨운 가락으로 풀어낸 전어잡이노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길은 섬진강변을 휘돌아 신기마을을 거쳐 다압면 매화마을로 연결된다.

 광양 망덕포구 풍경. 신답마을에서 선소마을 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광양 망덕포구 풍경. 신답마을에서 선소마을 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 이돈삼

 섬진강변 도로. 망덕포구에서 매화마을 쪽으로 가는 길이다.
섬진강변 도로. 망덕포구에서 매화마을 쪽으로 가는 길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망덕포구는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에 속한다. 광주에서 부산 방면으로 호남·남해고속국도를 타고 진월 나들목에서 나간다. 여기서 왼쪽 진상·진월방면, 오른쪽 광양제철소 방면이든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망덕포구로 연결된다. 나들목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포구가 자리하고 있다.



#망덕포구#배알도#윤동주#하늘과바람과별과시#정병욱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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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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