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다른 손님들 덥다고 해서 에어컨 못 꺼요. 다음부터 오랫동안 있으려면 긴 옷 하나 챙겨오세요. 아니면 햇볕 들어오는 창가로 자리라도 옮기시던가요."아이들 실내 놀이방의 휴게소 빈자리에 한참 앉자 있으니 온몸이 으슬으슬 춥다. 천장에서 쉴새 없이 쏟아져 내리는 냉기에 머리가 띵할 지경이다. 에어컨을 끄면 좋겠다고 하니까 관리자는 중앙에서 통제하는 시스템이라 불가능하단다. 차라리 창문을 활짝 열어 놓든지, 선풍기 두어대만 돌려도 충분할 것 같은데, 해당 건물은 창문을 열지도 못하는 밀폐 구조다. 거기다 선풍기 수 십대 전기를 한꺼번에 잡아먹는 시스템 냉난방기가 환기와 냉방을 겸하고 있다.
비단 이곳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무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긴 옷을 항상 준비해 다니는 출근족, 병원마다 차가운 실내 온도와 더운 바깥 온도에 적응하지 못해 감기에 걸린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무리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겨울이 지나고 곧바로 여름이 찾아 왔다고 하지만 대형 건물마다 에어컨을 틀어 공기를 순환시키고 실내 온도를 낮추는 진풍경은 너무나 비정상적이다.
에어컨 때문에 긴 옷 준비하라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전력 관련 뉴스가 끊이질 않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존권 투쟁이 커다란 상처만 남긴 채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 한편에서는 원전에 불량 부품이 공급되고 시험성적표마저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원전 2기는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전력 수급에 초비상이 걸리고 2조원 이상의 직접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정부와 한전은 약속이나 한 듯 '성역 없는 수사'를 내세워 민심 달래기에 나섰고, 또 한편으로는 블랙아웃 공포를 연일 증폭시키면서 국민들에게 절전 애국심을 호소하고 있다.
일련의 전력 관련 논란을 대하는 한전과 정부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이명박 정부 내내 전기 과소비를 막기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네 번에 걸쳐 전기료를19.6% 인상했다. 그로 인해 누진제가 적용된 주택용은 전기요금 폭탄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는 퇴임을 앞둔 올해 1월 9일, 평균 4%의 기습 전기요금 인상을 승인하면서 블랙아웃을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수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요금 인상 5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또다시 블랙아웃 운운하는 것은 전기를 볼모로 한 국민협박의 다름 아니다.
역대 정부는 수출을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기업에 산업용 전기요금을 값싸게 공급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몇 차례 인상을 하기는 했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은 타 에너지원보다는 가격이 저렴하다. 또한 주택용 전기요금과 달리 누진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사용시간을 잘 선택하면 가스와 석유 등에 비해 반값 정도에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저렴한 전기요금 때문에 산업용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자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절전지원금으로 기업에 되돌려준 돈만 해도 2012년 한해 4046억원이 넘는다. 기업에는 절전보조금 당근을, 가정에는 누진제 채찍을 사용해왔던 것이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수급 대책이었던 셈이다.
블랙아웃의 공포, 이명박 정부가 만든 작품 생산과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저렴하게 공급된 산업용 전기 요금. 그러나 생산시설만 싼 전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기존 가스로 가동되던 냉난방 시설과 석유나 등유로 난방이 공급되던 보일러 시설이 뜯겨 나간 자리에는 스위치 하나로 냉풍과 온풍 공급되는 시스템 냉난방기가 대체되었다. 이는 비단 산업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산업용 전기요금과 비슷한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대형건물이나 관공서에는 하나같이 천장에서 냉온풍이 쏟아져 내리는 시스템 냉난방기가 설치되었다. 겨울철 대형 건물 옥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수증기를 볼 수 없는 건 보일러가 전기 시스템 냉난방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대형 시스템 냉난방기의 수요를 제어하고 타 에너지원으로 냉난방기기를 분산했어야 할 정부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190억원의 보조금을 주면서 시스템 에어컨 설치를 장려했다. 때문에 산업현장 뿐만 아니라 학교, 공공건물, 상업용 대형 건물에 이르기까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시스템 냉난방기 설치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전은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고 중단된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지 않으면 블랙아웃이 현실화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월 7일 이명박 정부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는 2027년까지의 전력 수요 전망과 발전소 건설 계획을 담은 '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 공청회'를 열었다. 전력 수급 계획 안에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8기의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발전소 18기 중 12기를 SK건설, 삼성물산 등 대기업이 참여하는 민자 발전소로 지을 계획을 담고 있다.
전력거래소는 날마다 발전소에서는 생산하는 전력을 구매한다. 그런데 전력난이 발생할 경우 전력을 생산하는 민간 발전회사에서 가장 높은 가격의 단가로 전력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계통한계가격(SMP) 방식이 적용되는 것인데 전략난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민자 발전소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한전의 누적적자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기업에 민자 발전소를 허가해서 전력난을 해소하겠다는 건 전력난을 빌미로 또 대기업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겠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원전 23기 중 10기 가동 중단. 이 엄중한 사태를 두고 누가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정부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 그러면서도 원전은 안전하고 전력난 해소를 위해서는 송전탑 건설이 지체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한전이 앞장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은 외부 세력이 개입되었거나, 큰 보상을 염두에 둔 님비 현상일 뿐이라고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대도시에는 왜 원전 건설이 안 되는지, 왜 그렇게 먼 곳에 발전소를 지어 놓고 765Kv 고압 선로를 통해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원전의 안전과 블랙아웃의 공포에만 되풀이하는 '원전 마피아'들. 원전 마피아들의 무책임 때문에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발전소나 송전탑 건설만이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는 더 이상 지지 받지 못하는 것이다.
전력대란이 반복되는 이유 블랙아웃과 전력대란은 전기를 사유화해 부의 수단으로 삼아온 결과다. 전기를 다시 공공재로 돌려놓지 않는 한 어떤 해결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대형 자본에 값싼 전기를 공급하여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면서 국민들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전기 아껴 쓰자는 계몽운동 이제는 그만 둬야 한다.
정부는 전력 성수기를 앞두고 전력 사용 억제를 비롯한 갖가지 규제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규제들은 재탕, 삼탕의 규제이고, 규제가 큰 성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기 힘들다. 산업용과 일반용 전력 요금을 현실화해서 에너지 소비를 조정하지 않으면 산업체와 대기업의 과소비와 심화되는 전력난은 해소되기 힘들다. 전력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발전소 건설 역시 지지 받기 힘들다.
블랙아웃의 공포를 말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동의와 협조를 구하려면 원전 마피아에 대한 처벌과 대기업 밀어주기 전기요금 체계를 고치겠다는 의지를 먼저 내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