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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보리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보리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 김민수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동토가 녹기도 전에 푸른 싹을 내었던 보리밭은 날이 풀리면 흙이 부드러워집니다. 흙이 부드러워지면 보리는 뿌리를 내리고 서 있기 어려울 정도가 됩니다. 그즈음이면 보리밟기가 시작되지요. 흙을 다져주어 보리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보리밟기하는 과정에서 푸릇한 보리싹도 상처를 입지만, 그 상처 때문에 보리가 자라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보리 하루라는 시간들이 얼마나 쌓여가면 그들은 익는 것일까?
보리하루라는 시간들이 얼마나 쌓여가면 그들은 익는 것일까? ⓒ 김민수

보리밟기를 떠올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난들이 딱 그 정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넉넉히 이기고 일어설 수 있을 정도, 견딜만한 정도의 고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약자가 감당해야 하는 고난의 무게가 다시 일어서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것이지요. 너무 버겁다고 아우성을 쳐도 무관심한 사회,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냉랭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이 이 땅에 이뤄질 수밖에 없겠지요.

보리밭 보리밭에 서면 약간은 시큼털털하면서도 알싸한 보리순을 먹던 기억도 새록거리며 떠오른다.
보리밭보리밭에 서면 약간은 시큼털털하면서도 알싸한 보리순을 먹던 기억도 새록거리며 떠오른다. ⓒ 김민수

소위 베이비붐 세대인 저는 배고픈 시절을 보냈습니다. 동네란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마련이라, 어릴 적 친구의 집안 사정도 고만고만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같은 밀가루를 가지고 수제비를 해먹느냐, 칼국수를 해먹느냐 정도의 차이였습니다.

부모가 바쁘게 일해야만 하는 집에서는 밀가루에 물을 풀어 숟가락으로 뚝뚝 떼어 넣는 수제비를 많이 먹었고, 조금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반죽해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는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밀가루 음식에 물릴 즈음이면 보리타작이 시작되었고 톡톡 터지는 보리밥에 참기름과 푸성귀와 고추장을 넣고 썩썩 비벼 먹던 기억 때문인지 보리밭만 보면 어린 시절의 배고픔을 떠올리게 됩니다.

보리밭 보리밭에 바람이 불면 파도의 물결처럼 보리가 출렁거린다.
보리밭보리밭에 바람이 불면 파도의 물결처럼 보리가 출렁거린다. ⓒ 김민수

그렇게 자랐던 이들이 7~80년대 대학생이 되기도 하고, 노동자가 되기도 했지요. 그 젊은 세대들이 유신체제와 80년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성실하게 일하던 친구들은 그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 한 채 마련하고 그렁저렁 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었고, 공부만 잘해도 뭔가 이룰 수 있는 그런 호시절이었지요. 그러다 IMF를 맞으면서 한 차례 휘청거리고, 가까스로 그것을 극복하고 나니 초경쟁사회가 시작되었고, 하나 둘 현직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름 성실하게 일하던 친구들 대부분이 가진 재산이라는 것은 잘해야 퇴직금과 집 한 채 정도였고, 그들은 부모 세대와는 달라서 부모들과 아이들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되 아이들에게 의지하며 노년의 삶을 살지는 않겠다는 확고한 인식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낀 세대'인 셈이지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세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세대, 자녀가 스스로 자립을 하기까지 부모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세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만,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는 세대. 그 세대 노년의 삶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보리 옹골차게 익어가는 보리, 다 익기 전에 꺾어 보리를 하나 둘 까먹으면 좋은 군것질 거리기도 했다.
보리옹골차게 익어가는 보리, 다 익기 전에 꺾어 보리를 하나 둘 까먹으면 좋은 군것질 거리기도 했다. ⓒ 김민수

지난주에는 은퇴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친구, 공부도 제법 잘해서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친구, 명퇴한 후 시작한 사업도 바닥을 치지는 않았던 친구, 나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한 친구. 그런데 그도 불안해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이지요. 성실하게 살았건만 노년의 삶을 생각하면 갑갑하다는 것입니다. 평균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친구 역시도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것입니다. 무슨 허황한 욕심을 부려서가 아니라 열심히 성실하게 살 맘이 있지만 그렇게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보리 잘 익은 보리의 줄기는 텅 비어있어,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다.
보리잘 익은 보리의 줄기는 텅 비어있어,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다. ⓒ 김민수

어렸을 적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첨단 과학기술의 홍수와 편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행복도 그만큼 자라났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입니다. 넘쳐나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온갖 아름다운 말로 치장된 시어들보다 더 아름다운 행복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 과연 우리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요즘 '행복'에 대한 이야기나 '힐링'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 부분은 대체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라!'입니다.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지금 당장 그것을 실천하라!'입니다. 그 사이에서 베이비붐 세대들은 갈등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 수가 없어.' 그러면 나름 물적인 토대를 갖췄거나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그것이 문제'라고 하지요. 마치 무슨 주문 같습니다. 결국, 행복하지 않은 것은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고, 개인의 책임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구조의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보리 비록 가진 것 없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보리비록 가진 것 없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 김민수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무엇 때문에 행복했던 것일까요?

지금은 그보다 훨씬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요? 단순히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비교하며 살아가지 않음에도 사회구조가 우리의 삶을 뒤흔들기 때문일까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경쟁사회, 한번 무너지면 다시 재개할 수 없는 사회, 무한의 개인책임을 강요하는 사회, 행복하지 못한 이유조차도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사회가 문제가 아닐까요?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그때도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행복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추억하는 시간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래도 어느 정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뭔가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안하무인이거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이 감히 고개를 들고 '나입네!'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가진 자들의 횡포가 정의가 된 세상, 그것이 어쩌면 불행하다 느껴지는 근본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도 때가 되니 보리는 익어갑니다. 그냥 묵묵히 세태의 변화에도 자기의 삶을 피워내는 보리, 그렇게 피워낸 삶을 기꺼이 봉양하여 다른 생명을 살리는 보리, 그들의 무심함 속에 행복의 진수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올림픽 공원내에 조성된 보리밭에서 지난 주말(6월 1일) 담은 사진입니다.



#보리#보리피리#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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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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