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인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는 충무로. 대개 경제적인 이유로 이런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곳을 47년 동안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5월, 김영환 전 영화감독을 충무로 영화골목에서 만났다. 그를 통해 옛 충무로의 모습 그리고 예술인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들어봤다. 아래는 김영환 전 감독과의 대담 내용을 그의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추억①] 영화인들로 북적였던 충무로
김영환 전 감독은 누구? |
김 전 감독은 발가락 시인 이흥렬씨의 자전적인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앉은뱅이꽃>을 각본 감독해 보급했다. 그 후에 여성 장애우들의 인간 승리를 그린 영화 <천사의 시>를 제작감본 감독하여 상영했다.
김 전 감독은 <천사의시 2탄 난의연가>를 미국 현지에서 로케이션으로 촬영, 미국의 장애인과 노숙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식으로 개봉되지 못했다.
그후 2005년부터 청소년들의 인성교육과 소중한 내 몸 지키기에 대한 교육 영화 <위험한사춘기>, 유치원생 성교육 영화와 초등학생 성교육 영화, 중고생 성교육영화를 제작·각본·감독했다. 2012년 8월께부터 상영을 위해 디딤 교육 등과 합작으로 준비 중에 있으나 흥행이 예측되지 않아 개봉이 미뤄지고 있다. 김 전 감독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영상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일을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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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그분의 인상은 그야말로 불덩어리였다. 연기의 투혼이 두 눈 속에 이글거리는, 허스키하면서도 심장에서 울려 나오는듯한 굵은 톤의 음성은 그분의 자그마한 체구로도 거인을 압도할 지경이었으니까."
나는 당시 최고의 영화감독 정진우 선생의 문하생으로 그곳 사무실에서 기거했다. 나는 시나리오 윤색도 하면서 작가가 원고지에다 대충 긁어온 시나리오를 손으로 써서 (골필) 잉크 등사판을 밀어 대본을 인쇄했다. 그리고 그 대본을 연기자와 스태프들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통행금지 시간이 정해져 있어 오전 5시 이후에나 연기자·스태프들이 움직였는데 영화촬영 집합시간은 거의 오전 6시께였다.
왜냐면 당시 영화 촬영을 하려면 주로 불광동 고개를 넘어 야외로 가거나 외딴 장소를 찾아 미아리 촬영소 등 변두리로 많이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모여 촬영 준비와 아침식사를 한 뒤 오스틴이라는 낡은 화물차에 모두 몸을 싣고 출발했다(당시에는 연기자들에게 자가용이란 단어는 거의 없었다).
물론 주연배우 역시 오스틴의 나무의자 신세였고, 주연 여배우만 특별히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아 비교적 편하게 촬영지로 갔다.
당시 충무로 골목은 영화인들로 북적였다.
[추억②] 내가 알고 있는 이순재 선생은...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촬영에 임하는 연기자의 자세다. 대 연기자가 된 이순재 선생의 성실하고 겸손한 일화를 소개하겠다.
배우 이순재 선생은 언제나 통금해제 싸이렌이 울리고 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확히 30분이 채 안 돼 홍길동처럼 사무실문을 두드렸다. 나 역시 당시에는 영화감독의 꿈에 부풀어서 새벽부터 각색한 대본의 등사판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으니 새벽의 방문객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마다 만난 나와 이순재 선생은 당시 친형제처럼 가까웠고, 서로의 신상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순재 선생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극 셀러리맨에 심취해 초창기에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수업을 많이 받았다. 나와 만난 작품이 그의 영화계 첫 대뷔작이었다(주연 이순재·신성일·남정임·정훈).
언제나 겸손하며 서글서글한 미소와 인자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가진 이순재 선생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인격을 존중하며 언젠가 큰 감독으로 출세할 것이라는 격려까지 아끼지 않았다.
나와는 그동안 다섯 작품 정도를 함께했는데 언제나 촬영현장에서 감독과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 항상 모범이 됐다.
그로부터 43년 뒤 2009년부터 나는 청소년들의 건전한 교육내용을 담은 <위험한 사춘기>를 제작 감독하면서 이순재 선생을 초대했고 약 3년간 오가면서 촬영을 하게 됐다. 나와는 무척 끈질긴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연기자나 영화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평범하지만 무척 중요한 말이다. 이순재 선생은 5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연기자의 길을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걸어왔다. 그는 오늘날에도 찬란한 예술인의 금자탑을 세우고 있다.
연기자의 참된 자세는 연기를 하는 현장에서 쓰러져 최후를 맞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대배우 이순재 선생의 준엄하고 진심어린 충고를 후배 연기자들은 연기자의 길을 걷는 동안에는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영원한 도전자이신 이순재 선생의 가내에 축복과 건투 그리고 무궁한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