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은 절반을 넘어 전국 평균 비정규직 비율인 47.8%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는 공공부문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서 국가 성장 동력의 주축이 출연연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출연연의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하다. 전체 출연연 비정규직의 73%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출연연의 주요한 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신분이 몹시 불안정한 열악한 근로조건에 처해 있다.
역대 유일한 이공계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 토론회에서 연구자들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대선 정책 자료집을 통해 과학기술계의 비정규직 증가를 문제로 지적하며 과학기술인들의 안정적 연구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아직 그 정의는 명확하지 않지만 '창조경제 구현'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들의 안정적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 하겠다.
지난 4월 8일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의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그 대상에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도 명시되어 있다. 그동안 출연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소위 비정규직 보호법)'의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에서 예외 대상으로 분류되어 2년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편, 고용노동부의 이번 발표에서는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을 담당하는 출연연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직접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이전의 어떤 대책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업무의 상시·지속성 여부에 따라야하지만 여전히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은 세웠지만, 이를 집행할 예산 확보나 집행 과정에서 관리·감독을 할 기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듯하다. 실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임금과 복리후생비용 등에서의 증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세워놓지 않아 당사자인 출연연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무기계약직 전환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획재정부에서 출연연에 필요한 예산을 원활하게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는 소속 출연연이 정부가 내놓은 방침을 제대로 이행하는지의 여부를 엄격히 관리·감독하여야 한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정책 발표의 당사자인 만큼 부처 간의 협력과 의견조율을 통해 무기계약직 전환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출연연의 비정규직 연구원 구성은 어느 공공부문보다 복잡하다. 기간제, 단기계약직, 별정직, 연수 과정 노동자, 위촉 연구원 등 본질은 비정규직이지만 다른 형태로 고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고용노동부의 발표안을 보면 출연연 비정규직의 특수성에 대해 어떠한 구체적인 언급도 되어 있지 않다. 고용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비정규직 연구원인 만큼 석사·박사 후 연수 연구원 및 위촉 연구원 등을 포함한 모든 비정규직 연구원에 대해 직명이 아닌 업무의 상시·지속성에 따라 판단해 무기계약진 전환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무기계약직'이 곧 '정규직'이 되려면...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에 비하면 고용 안정과 임금, 복지 등에서 나은 편이지만 정규직에 비하면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앞서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례를 보면, 무기계약직의 월평균 임금은 198만 원으로 기간제의 116만 원보다는 높지만 정규직의 396만 원과는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기계약직은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고용 보장 측면에서도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는 다르게 불안요소가 있어 사업종료, 조직개편 등의 이유로 해고된 사례들이 있다. 또한 각 기관마다 무기계약직에 대한 관리규정이 따로 있어서 아직까지 일관된 규정이 없다. 정부 표현대로 '무기계약직'이 곧 '정규직'이 되려면 무기계약직에 대한 일관된 규정을 세우고 임금 및 노동조건 등에서 정규직과의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08년에서 2012년 동안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23.8%가 증가했지만, 출연연의 정규직 정원은 고작 2% 정도가 증가하는 데 그쳤고 나머지 필요한 인력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정규직 일자리 또한 예산 증가에 맞게 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규직 정원을 제한해온 기획재정부의 출연연 정원 동결 지침을 철폐하는 한편, 지금의 PBS 제도(프로젝트 중심 운영제도)를 개선하여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제시한 대로 출연연 출연금의 비중을 현 50%에서 70%까지 늘려 안정적 일자리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