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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열규의 <공부> 겉그림.
김열규의 <공부> 겉그림. ⓒ 비아북
김열규 선생의 <공부>는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란 부제를 달고 있다. 그래서 내심 김열규 선생이 고전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 연구를 위해서 읽은 책들, 나중에 지식 생산자로서 세상에 책을 내 놓았을 때의 경험 따위가 소상히 나와 있지나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뒤표지에 굵은 고딕체로 찍힌 "우리 시대 석학 김열규 교수의 79년 외고집 공부와 공부법!"이라는 문구가 무색할 만큼 이 책은 그저 공부에 대한 상식 수준의 논의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저자 특유의 개념이라든가, 공부 경험의 생생한 기록이라든가, 바람직하고 유용한 공부법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공부에 관한 책은 셀 수 없이 많다. '이것이 진짜 공부다'라고 우기는 책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것에 닿기 위한 방법을 설명해 주는 책까지 '공부책'들은 다양한 욕구를 지닌 여러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다.

김열규 선생의 <공부>는 저자나 출판사나 타겟 독자를 굉장히 넓게 잡은 듯한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다. 여러 번 '카르페 파시오'를 강조한 공부에 관한 일반론은 도올 선생이나 조동일 교수의 그것보다 재미가 적고, '클릭'과 '터치'를 언급하면서 공부라는 개념의 변화를 서술한 부분은 같은 내용을 다루는 일간 신문의 기획 기사가 훨씬 흥미롭다. 논리적 글쓰기를 설명한 부분은 중고등학생들의 논술 수업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듯하지만 그것이 '지식 탐닉기'라는 부제를 단 책의 내용으로서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평생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석학'이 쓰는 공부론이라면 그것에 걸맞은 '체계와 규모'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공부를 마음먹고 시작했을 때 목표했던 바를 육박해 들어가는 순서나 자신의 전공분야를 기본으로 해서 깊고 넓게 연관분야까지 파고들어 얻어낸 것들을 '석학'의 '공부론'에서 살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열규 선생의 <공부>는 나의 기대에서 적지 않게 벗어났다. 결국 한 책의 존재 이유는 다른 책과의 차별성에서 얻어지는 것인데 <공부>는 기존의 수많은 공부론 서적 중에서 그만의 빛을 낼 수 있는 영역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 

김열규 선생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공부'의 일반적 개념에 대해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이 책을 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데 그것은 대단히 현실추수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 김열규 선생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현재 '공부공화국'이고 오바마마저 한국의 교육을 따라하자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김열규 선생이 모를 리 없다.

에필로그에서 공부는 '전인적 존재'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은 달랑 몇 쪽에 지나지 않는다. 셀레던트도 좋고 평생공부도 좋다. 그런데 현재의 공교육, 학교에서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입시 교육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그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따위로 공부해서는 '전인적 존재'는커녕 해당 분야의 지식인이 되기도 힘들다는 것을 주장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학벌사회에 대한 성찰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스마트폰으로 터치를 하면서 학습하니 이제 우리는 '호모 핑거'다, 와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일종의 조급증을 느낀다. 그 조급증은 이어령의 책을 읽을 때 느끼던 것이었다. 아마 이 조급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번역될 수 있으리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 이보다 더한 현실추수가 어디에 있겠는가. '석학'이라면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의 동인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변화의 실질적 가치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김열규 선생께서 이순의 나이에 낙향하여 공부를 계속하시고 정력적으로 저서를 펴내고 있는 것에 나는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선생이 펴낸 모든 저서에 경의를 표할 수는 없다.김열규 선생의  평생 공부가 농축된 단단한 책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김열규, <공부>, 비아북, 2010. 값 13,000원.



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비아북(2010)


#김열규#공부#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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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씁니다. 문피아에 '천재 아기는 전생을 다 기억함'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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