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종류만큼 자연 상태에서 잡종 형성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드물다. 그래서 사람마다 각각의 변이 형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정상적인 종의 형태 특징을 다룬 기재문을 바꾸기도 한다. (줄임) 일본의 유명한 제비꽃 전문가가 펴낸 도감에서도 정상적인 종류 이외에 야외에서 관찰한 수많은 잡종을 분류학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숙제로 남겨 놓았을 정도이다. (줄임) 최근 들어 환경 변화로 일시적인 변이 양상을 보이는 개체들이 마구 새로운 종으로 명명되어 우리나라의 제비꽃 종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신종 분류에 신중했으면 하는 마음과 더불어 인위적인 교잡 과정이나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표본 자료 등을 세심히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이들에 대한 정확한 분류학적 위치 설정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에서
위 사진은 공원이나 학교, 아파트 등지의 화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국제비꽃이고, 아래는 점박이 꽃을 피운 미국제비꽃 변종을 찍은 것이다. 꽃잎의 무늬가 전혀 달라 다른 종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둘은 같은 미국제비꽃으로 지난해 각각 다른 곳에서 같은 모습으로 피었었다.
북아메리카 원산이라 '미국제비꽃'이라 부른다. '종지나물'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잎의 가장자리가 말려서 전체적으로 종지모양이 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란다. 재배종으로 화원 등에서도 파는데, 공터나 숲 언저리 등에 야생화처럼 군락지어 자라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미국제비꽃은 일반적인 제비꽃들보다 꽃이 큰데다가 흰색 바탕의 남색무늬가 시원해서인지 이 제비꽃을 볼 때면 시원시원하고 화통한 여장부가 연상되곤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꽃을 피운 제비꽃 앞에서 올 봄 무척 아쉬웠다. 지난해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미처 보지 못한 변화를 사진으로라도 살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체 이 미국제비꽃들은 왜 꽃잎을 바꿔 핀 것일까? 미국제비꽃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첫 꽃송이가 피어난 이후 나머지 꽃들이 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 오가며 전형적인 미국제비꽃이 한 송이라도 필까 살펴보곤 했지만 끝까지 점박이 꽃만 피웠다가 져버리고 말았다. 내년에는 또 어떤 꽃들이 필까? 벌써부터 꽃 피울 봄이 기다려진다.
"나는 제비꽃 종류를 대상으로 몇 년간 식물 분류학적 연구를 시도했었다. 처음에는 이른 봄에 꽃이 피고 전국적으로 분포하므로 한 가지씩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또 봄이 시작되면 콧등에 바람이라도 쐬러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충족시켜주는 재미로 제비꽃에 대한 연구를 편하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7년이나 지난 지금 머릿속에는 정리된 것은 없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얻었다. 오전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종을 구분하는 것 같은데 오후가 되면 각각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형태적 변이 때문에 머릿속이 흐릿해지고 만다. 어떤 세미나에서 그동안 연구한 것들을 정리하여 발표했더니, 그 발표 자료에 대한 요구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적어도 제비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혼란스러워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유기억 씀 <솟은 땅 너른 땅의 푸나무>에서
제비꽃을 무척 좋아한다. 때문에 제비꽃이 보이면 십중팔구 바쁘게 뛰던 길까지 멈추고 서서 바라보곤 한다. 이런지라 제비꽃이 보이면 찍고 또 찍는다. 아마도 세어보진 않았지만 지난 4~5년 동안 찍은 제비꽃 사진은 1천장은 거뜬히 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찍은 제비꽃들이 정확하게 어떤 제비꽃인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 야생화나 제비꽃을 훨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검색을 해 알아내곤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틀리고 있음이 보이곤 했다. 이런지라 야생화가 주제인 책에서 가장 먼저 찾아 읽곤 하는 것은 제비꽃이다.
지난해 3월, 유기억의 <솟은 땅 너른 땅의 푸나무>(지성사 펴냄) 제비꽃 편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가 몇 년 동안 매달려 왔던, 그리하여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제비꽃만을 주제로 한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알면 알수록 자신감보다 혼란스러워만 지는 제비꽃에 대한 어떤 명쾌한 것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됐다.
"가끔 '제비꽃 종류를 분류하려면 머리가 맑을 때 도전해야 한다'고 말할 때가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분류의 열쇠가 되는 형질들이 헛갈려 모든 종류들이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제비꽃 분류를 어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줄임) 이 책은 각 종류에 대하여 편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접근한 뒤 주요 형질을 백과사전식으로 설명해 야외에서 제비꽃이란 식물을 대하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인용되었던 대부분의 제비꽃 종류를 유사 분류군에 포함시킴으로써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격적인 종 분류를 하기 전에 제비꽃속 식물에 대한 기록과 유래 등 일반적인 현황과 흔히 사용하는 부위별 용도를 정리하였으며, 종별 검색이 쉽도록 검색표도 제시하였다." -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 '저자의 말'중에서<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지성사 펴냄)은 나의 이런 바람에 대답이라도 한 듯 나온 책이다. 앞에서 언급한 <솟은 땅 너른 땅의 푸나무>의 저자가 쓴 책이다.
제비꽃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정확한 동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올봄 내가 만난 미국제비꽃 변종처럼 잡종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다가 누가 분류하는가에 따라 제비꽃 종류와 우리나라에 자라는 제비꽃 종류 숫자, 이름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제비꽃 수가 30여 가지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50여 가지, 어떤 사람은 70여 가지는 된다. 이에 변종까지 다루면 그야말로 100가지를 훌쩍 넘길지도 모른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이다.
대체 우리나라에는 몇 종류의 제비꽃이 살까? 누구의 말이 정확할까? 여하간 일반인인 내가 느끼기에 제비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 만큼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에 비해 제비꽃에 관한 명확한 정보가 적은 편이다.
게다가 믿을만한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전문가의 책을 보다보면 틀렸다는 것이 느껴지기 일쑤이기도 하다. 뭐랄까. 좀 더 세심하게 분류한 때문에 늘어나는 종류는 그렇다 치고, 비교적 흔한 제비꽃들마저 사람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 달라 누가 분류했는가에 따라 다른 제비꽃이 되고 있다는 그런 뒤죽박죽의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고 할까. 여하간 알다가도 모를 제비꽃을 누가 명확하게 분류해줬음 좋겠단 바람이 제비꽃이 만발한 봄이면 몇 차례씩 들곤 했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말이다.
이 책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은 노랑색 꽃이 피는지라 제비꽃 중 구별이 가장 쉬운 노랑제비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제비꽃들이 폐쇄화기로 접어든 요즈음에도 낮은 산이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콩제비꽃과 졸방제비꽃,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기에 일반 사람들은 접하기 쉽지 않을 각시제비꽃이나 간도제비꽃 등처럼 다소 귀한 제비꽃들까지, 기본적인 제비꽃이랄 수 있는 32종과 그 유사종, 재패품종 등을 770여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종임에도 제비꽃 종류 중에서 흰색 꽃이 핀다는 특징 때문에 잘못 기억한 종이 있었다. 바로 흰제비꽃으로, 순백색의 꽃이 피고 개화기 때의 잎 모양이 장타원상 피침형 또는 좁은 삼각상 피침형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흰젖제비꽃이 있음에도 흰색 꽃만 보이면 흰제비꽃으로 동정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들의 분포는 자생지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흰제비꽃은 낮은 지역부터 어느 정도 높은 지역의 양지바른 초지 부근까지 넓은 분포역을 갖는 데 비해 흰젖제비꽃은 대부분 낮은 지역에서 자란다. 아무리 분류학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계속하다보면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맥도 빠진다. 나의 잘못된 지식으로 그동안 발표한 많은 보고서에 거짓말을 써놓은 셈이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 지경이다. 식물 한 가지 한 가지를 관찰하고 동정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에서 사실 전문가들까지 이처럼 당혹하게 하는 제비꽃을 일반인인 내가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기를 기대함은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자꾸 제비꽃으로만 관심이 간다. 언급한 미국제비꽃의 변종처럼 관심을 두고 보면 관찰의 재미를 얻을 수도 있는 것 또한 제비꽃이기 때문이다.
사족을 좀 덧붙이면, 2011년 봄 북한산 어떤 산자락에서 남산제비꽃과 태백제비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됐다. 주변에는 노랑제비꽃 군락만 있을 뿐 다른 제비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인 2012년 다시 그곳을 지나다 이전과 달리 남산제비꽃도 그렇다고 태백제비꽃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잎이 많이 갈라진 제비꽃을 보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을 지날 수 있는 구간을 선택해 몇 번 눈여겨봤다. 이전에 만났던 남산제비꽃과 태백제비꽃의 잎이 늦게라도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봄이 다 가도록 남산제비꽃도 그렇다고 태백제비꽃이라고 할 수 없을, 둘의 중간정도로 보이는 잎의 제비꽃 외에는 어떤 제비꽃의 잎도 올라오지 않았다.
다시 올봄 그곳을 찾았다. 지난해 아주 조금 갈라졌던 잎은 올핸 조금만 갈라져 나왔다. 올봄에도 3년 전에 봤던 남산제비꽃과 태백제비꽃은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까지 순백의 꽃이 피더니 올핸 연한 자주색이 약간 도는 그런 꽃을 꽃봉오리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태백제비꽃들은 녹색 빛이 도는 봉오리였었는데…….
내년에는 또 어떤 모습의 제비꽃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떤 꽃을 피울까? 이 제비꽃 역시 몇 년 동안 꾸준히 관찰하며 관찰의 재미와 무언가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곤 하는 그런 제비꽃 중 하나다. 제비꽃 구분이 어렵다고 말했을 때 "보라색 꽃이 피면 그냥 제비꽃, 흰색 꽃이 피면 흰제비꽃, 노랑색 꽃이 파면 노랑제비꽃이라 부르면 될 것"이라고 내게 말했던 사람은 전혀 맛보지 못할 그런 귀중한 행복 말이다.
이 책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은 식물분류학자가 쓴 책이라 믿음이 더 간다. 개인적으로 각 제비꽃마다 언급해 준 '비슷한 종류' 소개나 관련 사진, 변이 모습, 혼동하기 쉬운 제비꽃들의 비교사진들을 가장 솔깃하게 봤다. 그간 만난 제비꽃들이나 올 봄에 만났으나 정확한 이름을 몰라 그냥 두고 있는 제비꽃들을 분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아쉽기도 하다. 미국제비꽃의 이런 변종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이 말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 미국제비꽃 변종 관련 글은 거의 없지만 이미 2008년에 누군가 미국제비꽃의 변종 모습을 올린 바, 이 정도의 시간차이라면 저자에게도 정보가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의 첫 번째 주인공은 노랑제비꽃이다. 제비꽃 설명 중에 '해발 600~700미터 이상의 약간 높은 곳에 자라는 노랑제비꽃'이란 부분이 있다. 사실 노랑제비꽃 설명에 보면 이처럼 주로 높은 곳에 자란다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는 필자가 그간 만나온 노랑제비꽃의 현실과 전혀 다른 언급이다.
2009년부터 올 봄까지 5년 동안 필자가 노랑제비꽃들을 만났던 곳들은 북한산 문수봉 문수사, 사패산 능선, 삼천사계곡~사모바위 구간, 구기분소~대남문 구간,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대남문 구간 등에서였다.
문수사는 해발 645m에 있는 절이니 설명에 맞는다. 사패산 능선의 가장 높은 곳이 552m라 근접하니 일부러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다. 문제는 이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들이 문수사 인근이나 사패산 능선보다 낮으며 노랑제비꽃이 훨씬 낮은 곳에서도 아주 많이 자란다는 것이다. 작은 군락들을 이루며 말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꽃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말이다.
해마다 노랑제비꽃을 보는 구간 몇 곳의 높이를 대략 짐작해 보건데 해발 200m쯤 선부터 자라는 것 같다. 북한산 노랑제비꽃들의 현실이 이럴진대 어떤 기준과 이유로 해발 600~700m 이상의 약간 높은 곳에 자란다는 설명이 나왔을까 모르겠지만, 여하간 이런 현실이 하루빨리, 그리고 반드시 참고 되어야 할것이다.
참고로 미국제비꽃의 변종을 검색해 본 결과 '은하수제비꽃', '얼룩제비꽃','얼룩무늬제비꽃' '점박이제비꽃', '주근깨제비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인다. 이처럼 이름이 5가지나 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간 많은 변종이 일어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미디어다음 검색 결과 겨우 3사람 정도의 글이 보일 정도로 아직 미미한 변종이다. 그러나 미국제비꽃의 이런 변종도 반드시 참고 되어야 할 부분인 것 같다.(김현자)
덧붙이는 글 |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 유기억 (지은이) | 장수길 (사진) | 지성사 | 2013-04-02 | 정가 3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