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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남-북 실무회담 대표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지난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화의 집에 도착한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왼쪽 두번째)이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대표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악수하는 남-북 실무회담 대표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지난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화의 집에 도착한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왼쪽 두번째)이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대표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통일부제공

12일 열릴 예정이던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됐다. 남북이 모두 회담에 수석대표로 누가 참석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수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대화가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라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속이 타는 건 회담을 준비하는 실무자들뿐만이 아니다. 강원도는 이럴수록 더 속이 탄다.

"평화만이 강원도 번영 보장" 남북관계 개선을 갈망해온 강원도

접경지역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래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휴전이 된 이후에도,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 바람에 접경지역 사람들은 늘 남북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남북관계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이곳 접경지역에서는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그때마다, 경제 활동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삶의 조건까지 뒤바뀌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에도 제약이 따른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당연히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2008년 이후 남북 간에 대립 국면이 강화되면서, 이 지역이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에서도 강원도가 입은 피해는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고성군 명파리의 한 식당. 문을 닫은 지 오래 돼, 자갈이 깔린 주차장으로 잡풀이 올라오고 있다.
고성군 명파리의 한 식당. 문을 닫은 지 오래 돼, 자갈이 깔린 주차장으로 잡풀이 올라오고 있다. ⓒ 성낙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강원도가 입은 피해는, 남북관계가 접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강원도 고성은 그 피해액만 수천 억 원에 달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피해 추정치만 1700억 원이다. 여기에 또 금강산 관광 사업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 입은 피해액은 7천억 원이 넘는다.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고성은 지역에 실제 포탄을 맞은 것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지역에 경제적인 피해만 입힌 게 아니다. 심각한 사회 문제까지 불러왔다. 금강산 관광 붐을 타고 빚까지 내 사업을 시작했던 지역 주민들이 파산 상태에 몰리면서, 한밤중에 야반도주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되자 이혼 가정도 늘었다. 부부가 남기고 떠난 아이들은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사회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양상이 나타났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강원도가 추진하는 남북 교류 사업도 숱한 파행을 겪어야 했다. 강원도는 남북관계가 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그동안 지자체 차원에서 남북 교류 사업을 펼쳐왔다. 남북 관계가 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경제 활동까지 좌우하는 마당에 강원도가 직접 나서서 남북 교류를 이끌어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경제 교류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추진해 왔다.

그런데 남북 간 갈등이 심화되고 대화 창구까지 막히면서, 최근에는 그 사업들 역시 모두 중단 상태에 놓여 있다. 남북 교류 사업을 통해 위기에 몰린 강원도 경제를 되살리려는 시도 또한 모두 차단됐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 시점에 놓인 것이다. 그러자 최문순 도지사는 "강원도가 악화된 남북관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만이 강원도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문순 도지사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상황은 그만큼 절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일 남북 간에 다시 대화가 시작됐다. 강원도로서는 가뭄 끝에 단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큰 희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남북 간 교류 사업도 활성화된다. 최 지사는 평소 "강원도가 평화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의 남북 대화 분위기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도 강원도다.

도 차원에서 다양한 남북 교류 및 협력 사업을 펼쳐온 강원도

남북 간 대화 재개 소식이 알려지면서 강원도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이다. 강원도는 당장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강원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남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남북 관계가 조속히 복원돼 또 서로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는 그런 체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남북 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남북 대화가 강원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기대는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강원도의 한 관계자는 10일 "아직 남북이 대화를 통해 어떤 결과를 도출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해 도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과 '남북강원도 교류협력사업'을 재개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중단했던 사업들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강원도 최북단 마을, 고성군 명파리.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강원도 최북단 마을, 고성군 명파리. ⓒ 성낙선

강원도는 우선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것에 대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거기에는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성 지역의 음식점과 숙박시설, 편의점, 도시환경 등을 말끔히 정비하는 것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을 연계한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강원도로서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 못지않게 남북 간 교류 및 협력 사업을 재개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이 사업에는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을 비롯해, 스포츠 교류 사업과 인도적 지원 사업 등이 있다. 해야 할 일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 사업에는 '남북강원 경제협력체 구성', '철원·동해안 평화산업단지 조성', '설악·금강 국제관광 자유지대 조성', '남북 공동어장 조성', '남북 동계스포츠 활성화', '남북강원도 문화체육축전 개최', '일본뇌염 예방백신 접종, 결핵 및 간염요양소 지원 등 민간 구호', '금강산 솔잎혹파리 방제 등 산림병해충 방제' 등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강원도를 '평화특별자치도'로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업 중에 하나다. 강원도는 "남북 분단 상황으로 인해서 접경지역이 모두 개발을 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상태"라며, 앞으로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돼) 철원에 평화산업단지 등이 조성되고, 북을 통해서 대륙으로 가는 철도가 연결이 된다고 하면, 그런 것들이 강원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이 강원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남북관계 개선에 고성군 역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이번 남북 간 대화에서 이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결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고성군의 한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지역 전체가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번 남북 대화에 군민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성군은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 금강산 관광 관련 정책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남북 대화에 강원도 전체가 들떠 있는 건 아니다. 금강산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강원도 고성군의 최북단 마을인 명파리는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마을에 속한다. 자연히 남북 대화에 촉각을 곤두세울 만하다. 하지만 남북 대화를 대하는 명파리 주민들의 반응은 강원도나 고성군과는 조금 다르다. 최근에 일고 있는 남북 간의 변화에 예전처럼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았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담담한 모습이다.

 고성군 명파리 명파해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여름 피서철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고성군 명파리 명파해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여름 피서철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 성낙선

지칠 대로 지친, 그래서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고성군 명파리

명파리에서는 그 사이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8년 이전과 2008년 이후의 명파리는 극과 극을 달린다. 2008년 이후, 명파리에서는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던 건어물 가게 4곳이 1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았다. 한 마을에 무려 14곳이나 되던 음식점은 단 1곳만 살아남았다. 현재 영업을 하고 음식점과 건어물 가게도,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 명파리에서 일용 잡화를 파는 한 슈퍼는 매상이 1/10로 줄었다.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명파리는 지금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명파리는 지역 내 상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한 번 무너진 상권은 되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런 상태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 해도, 명파리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외에 명파리의 미래를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또 있다. 앞으로 명파리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가장 큰 변수는 금강산 관광이 아니다.

최근에 명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도로 건설이다. 명파리에서는 지금 마을 밖으로 7번 국도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로를 넓고 곧게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 도로 건설로, 명파리는 또 다른 충격과 변화를 앞두고 있다. 주민들은 이 도로가 건설되면, 예전처럼 '고성 통일전망대'나 금강산으로 가던 차들이 마을 안쪽 도로를 거쳐서 지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민들은 당연히 관광객들이 마을에서 머물렀다 가는 일 역시 줄어들 테고, 그로 인해 "예전처럼 마을 경제가 좋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도 관광객들이 옛날처럼 마을로 몰려드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금강산 관광 재개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은 금강산 관광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도로 건설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명파리 주민들은 지금 남북 간에 대화가 재개됐다는 소식에도 예전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기대는 걸지 않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는 "지금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을 때보다는 나아지긴 하겠지만, 그 전만큼은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마을 주민들은 "남북 대화 재개가 고성군과 나라를 위해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명파해변, 승마장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휴게시설.
명파해변, 승마장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휴게시설. ⓒ 성낙선

그렇다고 남북관계 개선에 명파리 주민들이 모두 기대를 접은 건 아니다. 지난해 명파해변에서 문을 연 '승마체험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수학여행단이 자주 들러 가던 곳이다. 그런데 지난 3월 북한에서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관광객이 뚝 끊겼다.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접경 지역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남북 대화 재개 움직임이 일자 이곳은 다시 회생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남북 대화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5년 동안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려 온 고성군도,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고 있다. 가장 상처가 깊었던 명파리는 더 차분한 분위기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5년이 경과하면서, 명파리는 나름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별 욕심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5년 만에 남북이 다시 대화를 시작한다고 하니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걱정이 이번에는 '나'를 향한 게 아니고, '남'을 향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제는 남은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강원도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명파리 주민들은 지금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우리야 이제 뭐 어떻게 돼도 상관없지만, 우리 후손들은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명파리 주민들은 지난 5년 동안의 일은 그냥 자신들 세대에서 일어난 일로 끝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남북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최소한 명파리에서 일어났던 일만은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려면, 남북이 이번 대화에서는 진심을 다해 과거와 달리 서로 양보를 하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12일 열릴 예정이던 회담이 일단 무산됐지만,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 악화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온 강원도민들은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남북회담#강원도#명파리#최문순#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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