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있으면, 그의 곁에는 항상 보좌관이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 상당 부분에 보좌진의 손길이 미쳐야만 한다. 그러나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슴팍에 배지를 단 의원뿐이다. 그렇다면, 늘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는 보좌진들의 생활은 어떨까. 밤을 새워 일해 국회의원을 빛나게 하지만, 평생 '4년짜리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보좌진들의 정치 역정 스토리를 들어보자. [편집자말] |
"보좌관으로 간다니깐 주변에서 고생만 하고 국회의원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 많이 했죠."
남부럽지 않은 수입과 사회적 존경을 받는 변호사에서 '상관을 돕는 직책'인 보좌관으로 전업한 이가 있다.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실의 조성재 보좌관(43)이다. 그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로 입성한 경 의원을 따라 보좌관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사실 변호사 등 법조인이 국회의원으로 전업하는 경우는 흔하다.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 의원은 모두 43명으로 전체의 15%에 육박한다. 지난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4대 25명, 15대 41명, 16대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으로 법조인 출신 의원은 언제나 있었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조 보좌관의 '상관'인 경대수 의원도 법조인 출신이다. 그는 지난 2006년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 수사부장으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사행성 오락 '바다이야기' 수사를 진두지휘하다 '일신상의 이유'로 검찰을 떠났다.
조 보좌관은 검찰을 떠난 경 의원이 지난 2006년 11월 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경 의원은 당시 상황을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그가 사무실에서 실무를 '걸음마 단계'부터 배웠다"고 표현했다.
경 의원이 2009년 10·28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보궐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도 그 인연은 끊기지 않았다. 조 보좌관은 지난 19대 총선 때는 '자원봉사자'로 경 의원을 도왔다. 그렇다고 이 모든 '역사'가 남부럽지 않은 직업인 변호사를 그만둘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 보좌관은 지난 2012년 경 의원의 보좌관 제안을 수용했다. 공무원 신분이 된 조 보좌관의 변호사 경력은 '휴업 상태'가 됐다.
"변호사는 있는 길을 추적하고, 보좌관은 없는 길을 만들어가죠"쉽지 않은 '전업'을 결정하면서 고민이 없을 수는 없었다.
"먼저 아내한테도 의견을 물어봐야 했죠.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지금까지 병원에 계시는데 매번 주말마다 병원에 있어야 하는 형편이었어요. 보좌관 업무가 바쁘면 그조차 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죠. 경제적인 수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요."조 보좌관은 또 익숙한 일에서 벗어나 생소한 업무를 하면서 결국 의원에게 누를 끼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반면,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는 "보좌관을 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큰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평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만나서 인적 네트워크도 쌓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고맙게도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가 나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해도 된다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경 의원과 쌓아왔던 신뢰 역시 힘이 됐다. 그는 "변호사들이 의기투합해서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고 파트너십을 맺는 경우는 상당히 많지만 나중에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개성이 충돌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며 "(경 의원과 나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일에 대한 스타일도 맞았고 무엇보다 한창 선배인 의원이 제 판단을 항상 존중해줬다"고 말했다.
보좌관은 의원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세간의 우려도 다른 각도로 봤다. 그는 "보좌관이란 직업을 선택했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생각한다, (보좌관이) 정책이나 예산, 감사 등 잘 준비해 의원을 통해서 자신의 일이 빛날 수 있도록 하는 게 본질 아닌가 싶다"며 "단순한 희생이 아닌 보람이 섞인 희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갓 1년을 넘긴 보좌관 생활이지만 생각했던 대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도 자평했다.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국정감사 현장을 모두 다니면서 여야 구분 없이 어려움에 처한 농림축산수산 종사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확인했고, 장애인복지관 특별교부세 등 지역구의 민원을 해결하며 "이 일이 몸은 힘들어도 보람 있는 일"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 여의도 입성 전 기대했던 '큰 그림'도 느낄 수 있었다.
"변호사 업무는 거칠게 정리하자면 과거지향적 업무죠. 소송 업무만 보자면, 과거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나 유·무죄 여부를 입증할 자료를 법논리에 따라 정리해 타당성 여부를 법원으로부터 판단 받는 업무. 있는 길을 추적하는 거죠. 그러나 보좌관 업무는 미래지향적 업무죠. 예를 들어 지역에 사업이 필요하다면 필요한지 살펴보고 관련 법령과 관할 부처, 예산 등을 추적하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그런 차이가 있어요.""법안발의 건수로 의정활동 평가? 법안 제대로 만들려면 중심 잡아야"변호사 경력도 환영받고 있다. 조 보좌관은 19대 국회 들어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관련 '자문' 요청을 꽤 받고 있다. 보좌관 '전업' 전 변호사일 때도 선거법 자문을 해봤고 19대 총선 당시 경대수 의원의 '법적 자문' 역할을 했던 점이 '알음알음' 알려져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조 보좌관은 "잘 모르지만 실질적인 선거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변호사는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현직 변호사 중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선거의 프로세스를 피부로 느낀 다음 소송기록 등을 보면 확실히 온도 차가 있다"고 했다.
"선거를 치를 때 주변에 이른바 '선거박사'들이 많아요. 그 분들을 믿고 선거에 임하는 분들도 많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분들이 정치자금법 규정이 어떤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시는 거죠. 선거에 임하기 전에 선관위나 전문가 상담만 제대로 받았더라도 의원직을 상실한다던가,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안 당할 수 있는데 안타깝죠."'입법'을 업으로 삼는 국회 시스템을 되돌아보는데도 변호사 경험은 도움이 됐다. 그는 "경력이 풍부하신 베테랑 보좌관님들과 견줄 수는 없지만 변호사로서 법안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며 "법안 하나하나가 그 의원의 자존심이고 법체계상 문제가 있더라도 의미 있는 법안이라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법안은 신중하게 검토해서 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여론기관에서는 한 의원의 법안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지만 저는 (의정활동을) 단순히 수치로 평가할 문제도 아니라고 봐요. 법안을 발의할 때는 현행 법체계와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죠. 국민 전체의 관점에서 실현 가능한지, 재정적으로 뒷받침되는지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보좌관들 전문성 갖추면 장기적으로 '정치불신' 옅어질 것"
조 보좌관은 그런 취지에서라도 '역량 있는 보좌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역량 있는 보좌관들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제대로 뒷받침할 때 국민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보좌관들의 '의무교육이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보좌관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좌관들의 역량을 제대로 키워가기 위해서는 특정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하고 일정 수준을 통과하는 사람만 보좌관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며 "그렇게만 된다면 굉장히 양질의 법안도 나올 것이고 각 분야별 전문성이 갖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보좌관을 상대로 교육을 하지만 활성화돼 있지는 않고 각 의원실이 의원의 개성에 따라 운용되면서 체계성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는 정책보좌관이라면 그 이름에 걸맞게 국정감사, 예산, 지역사업 및 정책 등에 대해 나름의 식견을 갖출 수 있도록 전문화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좌관이 각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다면 관련부처나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할 때 업무효율성을 훨씬 높일 수 있어요. 지금 정부 각 부처가 세종시로 많이 내려가 있는데 의원이나 보좌관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들이 하루를 거의 투자해서 국회로 올라와 그를 설명해야 하거든요. 미리 준비된 보좌진들이 있다면 그럴 일이 줄지 않겠어요?"조 보좌관은 이렇게 보좌진의 전문성이 강화되면 국민들의 '정치불신'도 어느 정도 약화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대개 한 의원실에 인턴까지 포함해 총 9명이 일하는데 이를 놓고도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는 이 9명이 의원 한 명의 왕성한 활동을 다 쫓아가기 어려운데 말이다"며 "이 같은 부정적 시각을 장기적으로 바꾸려면 (보좌관 교육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이나 교육 과정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도 '변호사 경력'을 강점으로 삼아서 양질의 법안을 만드는데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관련된 개정안을 만들거나 책을 써보려 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 보좌관을 넘어 '변호사 출신' 의원이 될 생각은 없는지 물어봤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국회의원을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봤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사실 지역구 주민에게는 '절대적인 을(乙)'이 국회의원이죠. 가족들과 식사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등 사생활도 거의 없어요. 못할 것 같네요."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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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수 의원 "책상물림한 변호사와 달라, 눈여겨보길" |
- 조성재 보좌관과 어떻게 일하게 됐나? "2006년 검찰을 나와 변호사 사무실을 열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조 보좌관은 변호사 자질이 충분하지만 당시 경험이 없어 우리 사무실에서 걸음마 단계부터 실무를 배웠다. 그때부터 8년 가까이 같이 일했다. 4·11 총선 때 자원봉사자로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총선 승리 후 '변호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면 같이 국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오래 일을 함께 한 만큼, 말을 길게 안 해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일하기 편하다. 또 변호사라는 게 세상물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지 않나. 조 보좌관도 그런 점을 생각하고 결정했다."
- 함께 일한 결과, 기대를 부응했나. "국회에서 일하면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을 접해야 하지 않나. 각종 민원인은 물론, 관련 단체 기관장도 만나서 성심껏 얘기를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보좌관의 기본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도 사실 사회에 봉사하는 업이다. 그런 면에서 조 보좌관이 사법연수원 졸업 후 책상물림을 해왔던 변호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 기대한다."
- 보좌관과 의원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좌관은 정부와 국회에 관계된 일에 대해 정확히 내용을 파악해서 의원에게 제대로 전달되게끔 해야 한다. 의원 역시 보좌관의 의견을 듣고, 그에 대한 책임을 다 미뤄서는 안 된다. 토론이 필요하다면 토론하고 서로 잘못된 것은 바로 잡는 것이 의원과 보좌관 사이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 보좌관, 한 번 눈여겨보길 바란다. 변호사로서도 훌륭하고 보좌관으로서도 정말 꼼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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