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내 한 지역신문에 '학교 '전기료 폭탄' 몰라서 맞았다'라는 기사가 났다. 기사 한 부분을 들어보겠다.
강원도내 일선 학교들이 한국전력이 시행하는 전기 요금체계인 '진상역률제'를 정확히 알지 못해 '전기료 폭탄'을 맞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4월부터 고압 전력을 사용하는 사업체와 공장, 학교 등에 '진상역률제'를 도입했다. (가운데줄임) '진상역률제'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전기를 사용하지 않지만 콘덴서가 작동되는 경우 역으로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요금체계다. (2013년 6월 12일치 강원도민일보 일부)
기사를 보면, 진상역률제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전기를 사용하지 않지만 콘덴서가 작동되는 경우 역으로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요금체계'라고 풀어놓았다. '진상역률제'라는 말도 어려운 데다 풀이마저 만만찮게 어렵다.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전기를 쓰지 않아도 콘덴서가 작동할 때는 거꾸로 전기요금을 매기는 새로운 방법'처럼 쉬운 말로 고쳐 생각해 보아도 어렵다. 한국전력공사(cyber.kepco.co.kr) 누리집에서 '진상역률'을 찾아보았다. 실망스럽다. '전기공급약관'에 진상역률이라는 말이 있어서 읽어보았다.
제41조 [역률의 유지]
① 고객은 전체 사용설비의 역률을 지상역률(遲相力率) 90%(이하 "기준역률"이라 합니다)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② 고객은 제1항의 기준역률을 유지하기 위하여 적정용량의 콘덴서를 개개 사용설비 별로 설치하되, 사용설비와 동시에 개폐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고객의 전기사용 형대에 따라 한전이 기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사용설비의 부분별로 또는 일괄하여 콘덴서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고객은 콘덴서의 부분 또는 일괄개폐장치 등 한전이 인정하는 조정장치를 설치하여 진상역률(進相力率)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말을 도대체 '고객'이 알아먹으라고 한 것일까? 이건 고객을 병아리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태도다. 첫 문장에서 '역률'이라는 말부터 탁 막힌다. 우리 말 사전을 펴보았다.
역률(力率) 「명사」 [전기] 「1」 유효 전력을 외관상의 전력으로 나눈 값. 교류 회로에서 전류와 전압의 위상차의 코사인값으로 나타낸다. 「2」 변환기의 정류기에 대한 총볼트암페어(VA)에 대한 총전력 입력의 비율. 「3」 유전체 위상각의 코사인값 또는 유전체 손실각의 사인값.
하아, 이건 개똥 피하려다 소똥 밟은 기분이다. 이름만 우리 말 사전이지 이건 사전도 아니다. 다시 한국전력공사 누리집에서 '역률'을 찾아보았다. FAQ에 '진상역률이란 무부하상태에서 콘덴서를 개방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콘덴서 기능상 오히려 역률이 나빠지는 현상'이라고 적어놓았다. 거푸 읽어봐도 이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FAQ는 '잦은 물음'이나 '자주 하는 물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남이 모르게 끼리끼리 만들어 쓰는 말을 '은어'라고 한다. 우리 말 사전에 보면, '거지, 교도소 재소자와 같은 소외 집단이나 심마니, 군인, 학생층 등과 같은 특수 집단 안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약관을 한국전력 직원끼리만 돌려볼 요량으로 은어로 쓴 것일까? 은어는 끼리끼리라는 울타리 바깥 사람들하고는 소통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약관은 전기 공급자인 한국전력보다 소비자인 국민이 알도록 써줘야 한다.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전깃불을 밝히고 텔레비전을 보고 냉장고, 세탁기를 돌리고 선풍기를 켜고 산다. 전기를 쓰는 사람이 누구든 약관을 알 수 있게 써줘야 할 책임이 있다. 더욱이 공기업이 아닌가. 그런데 학교에서조차 말을 정확히 알지 못해 전기료 폭탄을 맞는다니 이노릇을 어쩌면 좋겠나.
말은 소통할 때 의미가 있고 힘이 있다. 어려운 말은 소통을 가로막아 그 사이에 벽을 만든다. '진상역률제'를 알아먹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알지 못하도록 써놓고 못 알아들은 사람을 욕한다. 전기만 팔아먹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요금 제도를 만들고, 전기만 팔아먹으려는 '꼼수'를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려고 만든 말로만 여겨진다. 그러니 '한국전력이 더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는 소리는 빈말일 수밖에 없다. 주는 대로 쓰고 쓴 만큼 알뜰히 받아가겠다는 말이다. 쓴 만큼 알뜰히 받아가겠다는 데는 토를 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알도록 설명해줄 책임은 있지 않은가.
더 가까이 다다가겠다는 말이 헛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쉬운 말로 고객을 배려해야 한다. 알아먹기 어려운 말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게 말이다. 누리집에 약관을 올려놓는다고 고객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고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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