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선거·정치개입'을 기획·지시해온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약 2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취임 직후부터 심리전단(심리정보국)을 독립부서로 편제하고, 사이버팀을 총 네 개팀으로 확대해 인터넷 여론조작 등을 통해 선거·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국정원이 정치공작이나 정보수집이 아닌 인터넷 댓글 달기 등을 통해 선거·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촛불집회'에 자극받아 취임 직후 심리전단 사이버팀 대폭 확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취임했다. 이명박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은 '촛불집회'의 여진이 남아 있을 때였다. 그는 취임한 직후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을 독립부서로 편제하고, 사이버팀을 두 개팀으로 확대했다. '촛불집회'에 영향을 받은 조직개편이었다.
검찰도 "원세훈 전 원장이 이명박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장관으로서 2008년 '광우병 촛불 사태'가 종북좌파세력의 조직적인 선전선동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식해 취임 후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수행을 방해하는 종북좌파에 효과적인 국정홍보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국정원의 중요한 과업이라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2009년 5월 15일 전부서장회의에서 "국정원의 임무는 정부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넓은 시각에서 업무를 더 공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1월 22일 회의에서는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후 원세훈 전 원장은 총선과 대선 등 중요한 정치 일정을 앞두고 심리전단을 크게 확대했다. 심리전단의 사이버팀을 지난 2010년 10월 세 개로, 지난 2012년 2월 네 개(70여 명)로 확대한 것이다. 이들은 매일 '이슈와 논지'를 받아 '오늘의 유머'(오유) 등 인터넷 커뮤니티와 네이버·다음 등에 접속해 글 게시, 추천·반대 클릭 등 사이버 활동을 벌였다.
북한·종북 관련 찬반 클릭은 2.7%에 불과... "종북대처활동 변명은 궁색"
검찰의 수사결과, 국정원은 오유 등 인터넷 커뮤니티와 네이버·다음 등에 총 5179건의 글을 올렸다. 이 가운데 선거와 관련한 글은 226건이고, 지난해 대선과 직접 관련한 글은 73건이었다. 73건 가운데 민주당 반대 37건, 통합진보당 반대 32건, 안철수 반대 4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선 투표일에 가까워지는 것에 비례해 게시글도 늘어났다. 2012년 9월 3건에 불과했던 대선 관련 게시글이 10월 9건, 11월 24건, 12월 35건으로 늘어난 것이다. 검찰은 "대선일이 임박할수록 게시글이 급증하고, 대선과 관련 이슈의 쟁점화 시기마다 민주당·통합진보당을 반대하고 비방하는 취지의 글을 게재하는 편향성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찬성·반대 클릭활동에서도 선거와 관련한 것이 가장 많았다. 총 5174건의 찬성·반대 클릭활동에서 1314건이 서울시장선거(1건)와 총선(32건), 대선(1281건) 등 선거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는 전체 찬성·반대 클릭활동의 24.7%에 해당하는 수치다. 신변잡기(2961건)를 제외한다면 선거와 관련한 찬성·반대 클릭활동은 전체의 59.4%에 이르고, 이 가운데 57.9%가 대선과 관련한 것이었다.
검찰은 "여당에 우호적이고, 야당에 비판적인 일정한 경향이 확인됐다"며 "새누리당 관련 찬반 클릭은 실행행위자들이 원 전 원장의 낙선운동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야당 후보 낙선운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종북좌파와 관련한 찬성·반대 클릭 활동은 143건으로 전체(신변잡기 포함)의 2.7%에 불과했다. 신변잡기를 제외하더라도 약 6.5%다.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던 국정원의 해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검찰도 "종북 대처활동의 일환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국정원은 총 1970건의 불법 정치관여 글을 게시했고, 1711건의 불법 정치관여 찬성·클릭 활동을 벌였다. 1711건 가운데 대선과 관련한 것은 1281건이었다.
"불구속 기소" 비판도 있지만 국정원 선거개입 공식 확인은 성과원세훈 전 원장은 이러한 심리전단의 활동을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심리전단 사이버팀 요원들은 사이버활동을 조직적으로 수행하고, 그 활동 결과를 최종적으로 원장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을 확대개편했다는 점을 헤아리면 국정원장이 직접 선거·정치개입을 기획하고 그것을 지시한 것이다.
원세훈 전 원장은 '공격적인 종북세력 대처'를 통해 원활한 국정운영을 꾀하려고 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의 수사결과는 그가 불법적으로 선거·정치에 개입해왔음을 증명한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원 전 원장의 '사적 충성심'이 국가안보기관인 국정원을 '정권안보기관'으로 전락시켰음을 보여준다.
검찰의 수사결과를 두고 선거·정치개입이라는 중대한 국기문란사건인데도 원세훈 전 원장을 불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이 거세게 나온다. 검찰이 법무부와 갈등하다 절충하면서 나온 자충수다. 하지만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달기 등을 통해 선거·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는 점만은 분명한 성과다. 검찰도 수사결과 발표문에 "각종 선거과정에서 국정원의 합법적인 직무범위를 일탈하여 불법적인 지시를 수시로 반복하여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