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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50분, 가은읍 가는 차는 막차다. 내일(9일)은 하루 종일 가은읍을 둘러 볼 예정이라 문경읍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 일찍 가서 쉬고, 새벽부터 가은읍을 살피는 것이 좋을 듯해 막차를 타기로 결심했다.
   
막차를 타기 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오전에 갔던 오미자찐빵집으로 가서 간식으로 찐빵과 도넛, 만두를 먹었다. 오전에 제대로 찍지 못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특히 찐빵은 무척 맛있어 몇 개 더 사고 싶었지만, 더운 여름이고 내일도 가은에서 머물러야 하기에 일단 요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문경읍 오미자찐빵
▲ 문경읍 오미자찐빵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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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찐빵을 먹는 사이 여자 손님이 한 분 오시더니 주인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문경새재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문경아리랑 노래를 무척 잘한다고 주인 아주머님이 노래 한 번 하라고 성화다.

새재에서 일하는 '장효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분은 정말 걸쭉하게 '문경아리랑'과 '정선아리랑'을 비교하면서 한곡씩 했다. 같은 노래지만, 여성미가 느껴지는 음감과 남성미가 느껴지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들어보니 단번에 알 수 있다.

녹음을 할까하다가 사진만 찍고 나중에 문경아리랑 전수자인 송옥자 선생을 만나면 녹음을 하는 것으로 하고 기분 좋게 노래를 들었다.

아리랑을 들려 준 장효자씨 노래 솜씨가 대단하다
▲ 아리랑을 들려 준 장효자씨 노래 솜씨가 대단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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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문경새재에 물 박달나무 큰 애기 손끝에 놀아난다. 아주까리 피마지는 일 년에 한번 지름 머리단장은 나날이 하네. 우리 딸 일흠은 금쌀애기 동래 부산 김할량의 맏며느리 산천초목은 변하더라도 우리 동무는 변치마라. 너캉 나캉 정들었지 이웃집 노인이 요사로다. 수심은 첩첩한데 잠이 와서야 꿈을 꾸지~♪"

무척 기분이 좋았다. 구성지게 노래를 잘 하는 장효자씨를 만난 것이 반가웠다. "아리랑을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부친이 노래를 좋아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수준급"이라고 찐빵집 주인 아주머님이 칭찬했다.

난 노랫소리에 취해서 길 가는 것을 잠시 잊고 있다가 황급히 찐빵 값을 주고는 7시가 다 되어 버스를 타고는 가은읍으로 이동했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버스는 마성면을 거쳐서 가은읍에 닿았다.

작은 소읍인 가은읍도 예전에는 '은성광업소'가 있어서 대단히 번창했던 곳이다. 그러나 현재는 생산기반이 거의 없는 농촌의 소읍이라 그런지 너무 황량했다. 가은읍은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왕이 나고 자란 곳으로 그의 집터와 사당, 탄생과 연관된 갈전리의 금하굴, 방자유기촌, 문경석탄박물관, 가은 사극촬영장, 철로자전거, 오미자 와인, 소양서원, 봉암사 등이 유명한 곳이다.

난 일단 읍내를 대충 둘러보고는 숙소를 정하기 위해 마을 끝 양조장 앞에 있는 여관으로 갔다. 그런데 이런... 가은읍에 1곳뿐이라는 여관은 문이 닫혀있었다. 숙박하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관계로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런 큰일이 있나' 막차를 타고 왔고 마을 둘러보느라 시간을 보낸 관계로 다시 문경읍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택시를 타는 방법뿐이고, 노숙을 하기에도 그렇고, 아무튼 눈앞이 캄캄하고 다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여관 옆 작은 가게로 들어가 음료수를 한통 사고는 물을 마시며 "혹시 잘 곳이 있으냐"고 물어보았다.

"여관이 망해서 가은은 잘 곳이 마땅하지 않지만, 옆집에 민박을 하니 한번 가보세요"라고 한다. 급히 물을 마시고는 옆집으로 가보니 다행히 방이 있다고 한다. 남자 혼자 왔다고 하니 작은 방을 하나 내어준다.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씻고 몸을 누이기에는 상관이 없을 것 같아 2만 원을 주고 방을 잡았다. 하루 종일 걸었다. 서울 집에서 아침으로 먹은 토마토 2개와 선식 한 사발, 문경에서 먹은 찐빵과 크로켓 각 1개, 오후 4시께 먹은 순두부 정식, 그리고 6시께 먹은 찐빵과 도넛 각1개, 만두 2개가 오늘 먹은 것의 전부다.

원래 많이 먹지 않지만, 하루 종일 더위 속에서 걷고 거의 먹지도 않아서 그런지 탈진 수준이다. 난 샤워를 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씻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더운물이 나왔다, 안 나왔다를 계속 반복한다. 정말 겨우 씻었다.

아무튼 샤워를 마친 나는 잠시 TV로 뉴스를 잠깐 보고는 이내 잠들었다. 아무리 숙박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읍 소재지에 여관도 하나 없는 곳이 있다니 놀라운 가은읍이다.
  
가은읍 방앗간
▲ 가은읍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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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강행군을 했던 탓에 너무 피곤하여 9일(일) 오전 6시까지 너무 잘 잤다. 역시 피곤함이 수면제인 것 같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모자 쓰고 선글라스, 선크림을 바른 다음 밖으로 나왔다. 민박집 주인내외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고 있지만, 문이 잠겨 있어 그냥 나왔다.

오전 7시가 되기도 전에 벌써 이웃한 '가은떡기름방앗간'은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다. 혼자 일하고 계시는 주인 아주머님은 나를 만나기 무섭게 "총각, 이 떡 상자 좀 들어서 옆에 올려 주세요"라고 했다. 난 40대 중반에 총각이라는 기분 좋은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떡 상자 5개를 입구의 마루 위로 옮겼다.

조만간 떡을 부탁한 사람이 찾으러 올 시간인가 보다. 부지런도 하시지. 벌써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작업을 준비 중이니 말이다. 주인 아주머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농사를 짓다가 18년 전부터 아들과 함께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들이 논으로 가서 혼자 일하고 있는데, 농사일보다는 편하고 매일 같이 돈이 들어와서 살만하다"고 한다. 조금 떠들고 있는 사이에 손님이 왔다. 콩, 쌀, 누룽지 등을 가지고 온 아주머님이다. 미숫가루를 하기 위해 아침부터 나왔다고 한다. 부지런도 하셔라.

난 조금 더 방앗간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왔다. 예전 고향 마을에서 방앗간을 하셨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 전에 양복점도 하시고 다른 장사도, 정치도 하셨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는 방앗간을 돌리시던 조부의 얼굴만 간간이 떠오른다.    

가은읍 영강
▲ 가은읍 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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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읍내를 살펴보기 위해 읍내를 관통하는 영강을 따라 조금 걷다가 견훤교를 건너서 아침 햇살을 맞는다. 참 기분이 좋다. 아침 공기가 품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사진도 한 장 찍으니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싱그럽다.

호두 상당히 크다
▲ 호두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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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 갈전리 방향으로 길을 잡아 걷는다. 벌써 사과는 엄지손톱보다 크게 자랐다. 문경은 사과가 무척 많이 나는데, 가을에 한 달 동안 사과축제를 한다. 물론 맛도 무척 좋다. 사과 받을 지나 다시 길 옆에 있는 호두나무를 발견했다. 호두 크기는 벌써 사과보다 두 배는 되는 듯하다.

문경사과 벌써 크다
▲ 문경사과 벌써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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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덜 익은 호두를 따서 안쪽의 핵을 먹기 위해 벽에 문질러서 까먹던 기억이 났다. 오디를 먹은 것과 비슷하게 손에 온통 파란 물이 들어 어른들에게 혼나던 기억도 떠올랐다.

갈전리 마을까지 걸어서 마을회관을 둘러보고 산언덕까지 갔다가 돌아서 나왔다. 한 시간 넘게 산책을 했더니 배가 고프긴 한데, 작은 읍이라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을 발견할 수가 없다. 밥심으로 사는데, 식사를 거르기엔 오늘도 강행군이라 읍내를 배회한다.

가은읍 가은성당
▲ 가은읍 가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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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원두막에 앉아 보기도 하고, 읍사무소 앞을 지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발견한 곳이 '가은성당(加恩聖堂)'이다. 어제 본 문경성당 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더 이쁘고 멋지다. 가은성당은 지난 1957년 점촌 충현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지난 1961년에 사제관과 함께 준공되었다고 한다. 입구의 유치원과 안쪽의 사제관 등이 너무 정갈하게 만들어진 예술품처럼 보이는 것이 좋다. 신도는 많지 않은지 무척 조용하고 규모도 작아서 멋스럽기까지 하다.

덧붙이는 글 | 6월 8일 문경읍, 6월9일 가은읍을 걷다



#문경읍#가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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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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