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현 주중대사)는 빙산의 일각이다."
18일 국회 법사위원장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특히 박 의원은 지난해 대선 당시 권영세 새누리당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박원동 전 국정원 국장 등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박영선 의원은 이날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해) 12월 11일 밤 역삼동에서 국정원 댓글 직원 사건이 벌어진 같은 시간에 새누리당 선거캠프에서 권영세 당시 종합상황실장 주재로 대책회의가 열렸다"며 "대책회의 멤버들과 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통화한 내역들이 몸통"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어 "(새누리당) 대책회의 이후인 오후 9시 40분께부터 원세훈 국정원장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며 "'국정원 직원의 신원파악이 안 됐다, 왜 여자를 감금하느냐'며 교란작전을 펼쳤고 민주당 의원들이 모여 이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원세훈 전 원장이 '교란작전을 펼쳤다'는 것은 이날 처음 나온 얘기다.
박 의원은 전날(17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황교안 법무장관을 상대로 "권영세 실장 주재로 열린 대책회의에서 권 실장의 발언과 이 당시 권 실장이 누구와 통화했는지 수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우리 제보로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박원동 국정원 국장 모두와 다 통화했다"고 밝혔다.
"국정원·경찰 일부, 범죄조직으로 전락... 국민을 바보로 아나"권영세 전 실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민주당은 여권과 국정원과의 연계성을 거론하면서 파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박영선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이 (국정원 사건 관련 민주당에 대응하는) 대책반을 만든다는 보도가 있다"며 "새누리당이 대책반을 만드는 만큼 민주당은 계속해서 몸통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날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내 특별팀을 구성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 새누리당이 국정원 사건 수사 검사의 '운동권' 경력까지 끄집어내며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비호에 나섰지만, 민주당의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국정원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 일부가 범죄조직으로 전락했다. 이런 범죄조직을 옹호하고 두둔하는 행위는 지나치면 법에 어긋나고, 그것만으로도 도덕과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미국의 CIA 국장과 FBI 국장이 서로 내통을 하고 선거에 개입했다면 미국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 선언이 있지 않았을까? 미국 CIA 국장은 한국판 원세훈 전 원장이고 FBI 국장은 한국판 김용판 전 청장이다." -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새누리당 일부 국회의원은 화성인인가. 국정원 사건에 대한 발언과 생각은 지구인이 아닌 것 같다. 하루빨리 지구인으로 복귀하라." - 문병호 민주당 의원"새누리당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속담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 국민들을 바보로 아나?" - 김진표 민주당 의원 지난 16일 박영선 의원이 김용판 전 청장의 '배후'를 언급한 뒤, 민주당의 의혹 제기에 속도가 붙으면서 신빙성도 함께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17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배후'로 권영세 현 주중대사를 지목하면서 정치적 무게감이 배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때문에 현 박근혜 정부와의 연관성이나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국정원 사건 화살, 박근혜 정부 겨누나?
그러나 '몸통' 중 한 명으로 박근혜 대선캠프 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대사가 지목되면서 새로운 정황이 전개되는 분위기다. 박영선 의원이 국정원 사건의 배후로 현 정권의 정치적 기반인 'TK(대구·경북) 라인'을 지목한 것도 이런 상황을 미리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당장 이를 고리로 현 정부를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문병호 민주당 의원은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 현 경찰청장·안전행정부장관·국정원장이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며 "사건의 중대성을 봐서는 즉각 사퇴를 해야 맞는데도 해당 기관장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니까 따라하는 것 아니냐"며 "박 대통령은 국가의 중대한 국기 문란 행위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책임을 추궁하고, 향후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압박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를 지낸 문재인 의원도 지난 16일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자기를 음해하기 위해서 민주당이 (국정원 사건을) 조작했다고 나를 공격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뒤집어 말하면 사실로 드러나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김용판 전 청장은 누구 지시로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이런 행위를 했는지, 국정원 보조 요원의 활동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제압·공작 문제'도 확실히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은 조속한 국정조사 통해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국기문란 진상규명·경찰의 축소 수사·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보고 여부·불구속에 대한 윗선 외압 여부 등을 밝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