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은 저의 첫 대통령선거였죠. 20년 넘게 살면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해 국민의 권리를 더럽혔어요. 배신감을 느꼈죠."
시국선언 선포식-기자회견 중 경찰에 연행-촛불문화제 자유발언-촛불문화제 사회-여름농활대 출발. 지난 5일간, 봉우리(23·무용학과 10학번)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의 스케줄이다. 한여름, 강행군의 일정을 소화하는 이유는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촉발된 시국선언 그리고 촛불문화제 때문이다.
"'이제 아빠가 간다'는 멘션을 봤다... 부모들도 나선다"봉 회장은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날 오후 전북 군산으로 여름농활대를 이끌고 떠난 봉 회장. 그는 자리를 비운 사이 '촛불이 사그러들까' 조금은 걱정했다. 다음달 1일 돌아온다는 계획이지만 상황에 따라 일정이 변경될 수 있다.
지난 19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작한 대학가의 '국정원 선거 개입 규탄' 시국선언은 20일 경희대, 동국대, 이화여대를 비롯해 서울 시내 주요 대학으로 번졌다. 시국선언 불길은 21일 촛불문화제로 활활 타올랐다. 이날까지 4일째 문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점점 대학생들의 비율은 줄고 있지만 40, 50대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합세해 촛불은 유지되고 있다.
지난 22일 촛불문화제를 진행한 그는 시민들의 분노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첫날에는 연행되는 장면을 보고 친구들이 잡혀갔다는 것에 분노해 대학생들이 많이 나왔죠. 일반 시민들이 참여 이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트위터에서 "이제 아빠가 간다"는 멘션을 봤어요. 대학생을 둔 부모들도 나서고 있다고 봐요."그는 일각에서 일부 세력들이 대학생을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을 직접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을 제대로 보지 않고 관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요. 문화제에 와서 시민들의 발언을 듣고 학생들의 공연을 보면 누군가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힘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촛불 들면서 세상 보는 눈 달라졌다"
그에게 '2008년 쇠고기 파동 촛불'은 기억에 없다. 2011년 6월,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며 열었던 촛불문화제가 처음이다. 무용을 전공했고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적었다.
"예전에는 제 할 일만 하는 학생이었죠. 당시 반값등록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행동하지 않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촛불을 들게 됐어요. 촛불을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지금은 그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 반값등록금과 달리 대학생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 자칫 촛불문화제의 동력이 쉽게 고갈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봉 회장은 대학생들이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대부분에게는 지난해 18대 대선이 첫 대통령선거였기 때문이다.
물론 반값등록금 문제도 걸려 있다.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야권의 반값등록금 정책에 대한 공세 대응 방안을 담고 있어 논란이 된 바 있다(관련기사:
"정동영·권영길은 종북"... 또다른 국정원 정치개입 정황).
"농활하면서도 국정원 놓지 않겠다""국정원이 선거뿐만 아니라 반값등록금 정책에도 회의적인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했다는 사실에 분노했어요. 국정원 문제는 분명 대학생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지난 19일 이화여대 45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다음날 학교 정문에서 시국선언 선포식을 열었다. 시국선언은 순전히 학생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봉 회장은 "국정원이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들을 기만했다"면서 "진실을 밝히고 실추된 대한민국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학생들에게서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있다. 다만 총학생회의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함께 한다는 지점 때문이다.
"이 시국에 행동하고 나서는 것이 막상 한대련 밖에 없다는 거죠. 연대는 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활동 방향은 학우들과 소통해서 고민해 나가야겠죠."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탄생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한 마디를 남겼다. 국정원 국정조사와 책임자 처벌의 열쇠가 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믿는 그는 명확한 해답을 요구했다. 국민 요구를 하찮게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서울을 떠났지만 그곳에서 농민들에게도 국정원 문제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농활은 농민과 학생의 연대활동이에요. 오히려 농활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더 많은 사람들과 국정원 문제를 얘기할 수 있어요. 농활에 함께 참가한 학생들과도 왜 이 시기에 촛불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눌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