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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빈번해지면서 여행사들의 횡포가 날로 극심해져가고 있습니다. 작은 여행사들은 물론 국내 최대 규모의 여행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고객들의 항의에도 눈 하나 꿈쩍 않습니다. 아마도 피해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체념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관행적인 여행사의 횡포를 관대히 넘어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남양유업 사태가 언론에 반짝 등장하고 마는 것처럼 시간은 아마도 기업들의 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덮고 넘어가기에는 끊임없이 피해자들이 생기고 있고, 본인도 또한 그 피해의 일원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지난 6월 6일부터 'H투어'를 통해 '북경 4일 패키지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중학생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 첫 번째 해외 가족여행이었지요.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중국이라는 큰 나라를 한번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두 달 전부터 신청을 해서 다녀온 것입니다.

낯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해외여행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기대와 작은 설렘마저 갖게 합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6월 6일 첫날 천진 공항에 도착하여 H투어 가이드의 버스에 탄 지 5분도 안 되어 깨졌습니다.

 천안문 광장 앞.
 천안문 광장 앞.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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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 속에 시작한 가족해외여행, 그러나

우리 일행은 저희 가족 4명을 포함하여 15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가이드가 일정을 안내한다며 하는 얘기는 대부분 옵션 관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일정표에 추천옵션으로 나와 있던 금면왕조 관람과 인력거투어에 이어, 처음 듣는 용경협이라는 협곡투어(1인당 60달러)를 강조하며, 일행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으레 해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습니다. 저희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암묵적 동의를 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옵션관광을 안 할 겁니다."

가이드가 어조를 바꿨습니다.

"금면왕조 관람과 인력거투어는 회사에 속한 옵션이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합니다. 용경협도 너무 좋은 것이니 웬만하면 협조를 해주세요."

마음은 이미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 챈 아내도 저를 흘끔거렸습니다.

그날 일정이 끝나고 밤 10시경 가이드가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전체일정 가이드 봉사료와 옵션 관광 경비를 미리 지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용경협 1인 60달러씩 4인 합 240달러 + 금면왕조 4인 총 200달러 + 인력거 투어 총 80달러 + 발마사지 팁 총 20달러 + 가이드비 1인 40달러씩 4인 160달러. 총 700달러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용경협 안 한다. 나머지 옵션은 말 그대로 옵션이다. 옵션은 선택사항으로 알고 있다."

"용경협은 제가 가지는 제 옵션이고, 금면왕조와 인력거투어는 회사 옵션이기 때문에 회사 옵션을 안 하면 내가 대신 그 금액을 물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월급이 없습니다. 용경협 해주세요."

작은아이가 물끄러미 보고 있는 가운데 약 20분간 가이드와 실랑이를 한 끝에 회사 옵션은 다음날 본사에 확인하겠다고 하고, 가이드비와 발마사지 팁 경비로 180달러를 지급했습니다.

도대체 어느 회사 가이드가 첫날 밤 열시에 고객의 숙소를 찾아와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패를 부린단 말입니까.

가이드 봉사료도 H투어의 상품 설명에 의하면 '기사 및 가이드 봉사료 40$/인 권장'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권장'이라는 단어에는 '의무'라는 의미가 절대로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가이드봉사료는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기에 따로 출발 전 봉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봉사료는 일반적으로 마지막 날 저녁에 고마움의 표시로 지급하는 것이지, 첫날 저녁 열시에 숙소로 찾아와서 이런 식으로 받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황당함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H투어 여행상품 안내에는 옵션으로 나와 있지만, 사실상 강매로 다가왔던 금면왕조 관람과 인력거 체험.
 H투어 여행상품 안내에는 옵션으로 나와 있지만, 사실상 강매로 다가왔던 금면왕조 관람과 인력거 체험.

선택이어야 할 옵션, 왜 강요하나?

둘째 날 새벽 5시 30분에 모닝콜이 왔습니다. 일정에 따르면 오전에는 만리장성을 가는 것입니다. 아침 7시 출발이었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는데 버스에 탄 가이드 설명이 지금 용겹협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약 3시간 거리였습니다.

용경협을 안 간다고 분명히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만리장성으로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다른 일행들이 있었기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잠잠히 따라갔습니다. 가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용경협에서 일어날 어색한 분위기가 머리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용경협 매표소에 내려서 가이드가 또 관람을 하라고 두 차례나 종용했습니다. 거절했습니다. 다른 일행은 모두 배를 타러 갔고, 저는 비오는 가운데 가족들을 데리고 부근을 둘러봤습니다.

매표소에서 대체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 유심히 봤습니다. 입장료는 한화로 약 8천원이었습니다. 배를 타면 제 기억에 약 3~4만 원가량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이드가 1인당 60불, 7만 원 가량을 요구했으니 한 시간 배를 타는데 저희가족이 관람을 했으면 28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중 약 절반은 가이드에게 떨어지는 셈입니다.

용경협에서 만리장성까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였습니다. 11시 50분경 만리장성에 도착했습니다. 가이드 왈, "둘러보시고 12시 30분까지 버스로 모여주세요."

만리장성에 머문 시간은 고작 40분가량이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저녁에 있을 금면왕조 옵션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까요. 그냥 여행 갔으면 옵션일지언정 좀 하지 왜 그렇게 불편을 겪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러나 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H투어의 부도덕한 행태 때문입니다. 그렇게 옵션을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애초부터 옵션이라고 하지 말고 기본 상품금액에 그 관광 금액을 포함해서 고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얄팍한 상술로 고객을 우롱하기 때문입니다. H투어의 상품 안내에 표현된 정확한 문구를 여기에 옮깁니다.

"본 상품은 특가 상품으로 일정 중 옵션관광 등으로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추천옵션 금면왕조(50$/인), 인력거투어(20$/인)"

옵션!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의무'라는 의미는 단 1%도 없습니다.

그냥 참고 살아야 하나요. 우리 아이들에게 살다가 부당함을 당해도 그냥 관행이니까,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당하고 산다고 가르쳐야 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당하게 강요를 당할 때는 불편함이 따르더라도 내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경여행의 백미라고 꼽으라면 만리장성과 천안문을 경유한 자금성입니다. 만리장성을 휘감은 운무속에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머물고 싶었지만 40분간만 둘러보고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왔습니다.
 북경여행의 백미라고 꼽으라면 만리장성과 천안문을 경유한 자금성입니다. 만리장성을 휘감은 운무속에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머물고 싶었지만 40분간만 둘러보고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왔습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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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끝내 거부하자 믿기 어려운 일이...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금면왕조 시작 직전에 일어났습니다. 옵션관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둘째 날인 6월 7일 금요일 오후 3시경 북경에서 서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옵션관광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고객님, 옵션관광은 거의 기본처럼 다들 하는 거구요, 출발 전에 저희가 미리 설명을 드렸는데요."

출발 전 설명이란 상품에 대한 전체 설명이었지, 옵션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강력히 항의를 하자 본사에 사실을 알리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현지시간으로 저녁 5시까지 연락이 없었습니다. 한국시간으로는 저녁 6시였습니다. 금면왕조는 저녁 7시 30분에 시작이었고, 곧 퇴근시간일 것 같아 다시 서울로 전화했습니다.

담당자 왈,  "옵션에 대해서는 가이드가 다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가이드는 7시까지 관람관 앞으로 모이라고 자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저희는 근처에서 시내구경을 하거나 차를 한잔 마실 생각이었기에 쇼핑홀에서 가이드를 만나 "우리 가족은 금면왕조를 안 볼 것이니 몇 시에 차로 가면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대답이 나왔습니다.

"본사에서 금면왕조와 인력거투어에 대한 옵션비용을 대신 부담할 것이니 그냥 금면왕조 보시고 내일 인력거 투어도 하세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신뢰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확히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아닙니다. 안 보겠습니다."

가이드가 정색을 하며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님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표는 일주일 전에 예약한 것이고, 전체 15명 티켓을 이미 다 구매했어요. 그냥 보세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본사에서는 다른 분들에게는 이런 내용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동일한 상품을 무작위로 고객들에게 판매하면서 강요에 못 이기는 고객에게는 옵션을 강매하고, 부당함을 항의하는 고객에게는 무료로 서비스한단 말입니까.

최소한의 예의와 상도의는 어디에?

가이드가 가고 나서 큰딸아이가 그랬습니다.

"아빠, 우리가 돈 안 냈잖아. 우리 이거 안 봐도 되니까 보지말자."

하지만 가이드가 이미 표를 구입해놨다는 말에 저희는 금면왕조를 봤습니다. 그러나 보고나서 돈을 안 냈다는 거리낌 때문에 금방 후회했지요. 인력거투어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인력거투어는 여행 진행상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력거를 타면서 중간에 내려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그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저희가 경비를 지불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불편한 기색으로 인력거투어를 했습니다.

H투어 상품안내에 '특전'이라고 되어 있던 교자빗기체험과 올림픽경기장 관람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셋째날 아침부터 시작해서 쇼핑몰을 세 군데나 들러야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일정에 포함되어 있던 그 두 가지를 빼먹고도 저희가 그날 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11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9시 5분 귀국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수백만 원의 경비를 지불하고서도 나흘 내내 마음이 불쾌하고 불편했던,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행객들이 저와 유사한 경험을 했을까요. 피해자들을 모아 불매운동을 벌여서라도 비양심적인 행태를 일삼는 H투어에게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상도의가 무엇인지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행 후 H투어에 다시 문제제기 했지만 가이드에게만 책임을 미루는 것 같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직한 기업이 잘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H투어 "옵션인데 고객님이 강압으로 느낀 듯... 사과한다"
H투어 측은 패키지여행 상품 옵션 강매 지적에 대해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우리 고객들이 현지에서 불쾌감을 느낀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전경일씨 고객님과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전한다"며 "모객은 한국의 H투어에서 하지만, 현지 가이드는 중국 여행사 소속이다, 철저히 관리하고 신경 썼지만 가이드와의 관계에서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추천옵션의 금면왕조, 인력거투어는 말그대로 옵션인데, 가이드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고객님이 강압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며 "고객님이 문제제기를 한 후, 우리 불찰도 있을 것이라 판단해 추천옵션을 우리가 비용부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당시 함께 여행 떠난 사람들 중에는 만족한다며 가이드를 칭찬하는 분들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 느낌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며 "어쨌든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준 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따로 사과문도 드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패키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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