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조영만 교장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로부터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라는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격려해주기도 하지만 예사 교장이 아니니 와보면 알 것"이라고 추천해줬다.
교사 출신이 아닌 기업체 출신 공모교장이니 뭔가 다르겠지만 크게 기대는 안 하고 교장실에 들어가 학교 현황과 경영관에 대해 듣다가 충격을 받았다. 훌륭한 교장이란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조영만 교장선생님은 올해 3월 초에 학교에 부임한 공모 교장이다. 여수산단에 소재한 LG화학에서 28년을 근무한 기업체 출신인 조교장이 교육계획서를 보여주며 학교운영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존 학교와 다른 학교장 교육목표가 눈에 띈다.
설명을 들은 후 교장선생님의 학교 경영철학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교육계획서는 대개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이 만들기 때문이다. 잠시 후 책상에서 서류 몇 가지를 가져온 교장이 자신이 제작한 공모계획서와 이력서를 보여준다.
아니! 교육계획서의 학교장 교육목표와 공모계획서가 똑같지 않은가! 나는 당연히 교무부장이 만든 줄 알았다. 학교 경험이 없는 분이 어떻게 저런 교육목표를 말할 수 있을까? 하며 의아해 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의 학교 경영관을 듣다가 귀가 번쩍 띄었다.
"연초에 전국 폴리텍대학 주최 전남 교장연수가 있었어요. 광주전산고 이영주 교장선생님 말씀이 '취엄과 관련 각 기업 CEO를 만나 어떤 인재를 원하느냐고 여쭤보니 전문기술은 회사에서 가르칠테니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이나 똑바로 해달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2010년도에 여수시 테크니션스쿨 인재상을 만들기 위해 여수산단 인사팀장들을 만났는데 인사팀장들의 요청은 첫째도 인성교육, 둘째도 인성교육, 셋째도 인성교육을 시켜서 회사에 보내달라는 겁니다. 기업체에서 필요한 전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기술인이기 전에 갖춰야 할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장인을 길러내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긍정 마인드를 가진 장인을요." 꽉 다문 입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서 그의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긍정주의자이며 일을 시키면 안 되는 이유보다는 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사람을 육성하는 게" 교장의 꿈이다.
진정성이 없으면 안 된다며 무감독 시험을 이뤄내는 것도 그의 목표다. 패배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강점을 개발해 현장을 혁신할 기술명장을 기르겠다는 포부로 조교장이 내세운 슬로건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의식개혁에 치중하는가 알 수 있다.
"능력의 차이는 열배, 의식의 차이는 백배' 산업체가 바라는 인성을 길러 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교직원들에게는 보람을 심어주려는 게 목표인 그는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자신이 금과옥조로 여길 행동규범을 만들 것을 제시했다.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이 준 숙제를 하느라 요즘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다. '나의 인생 사명서'와 '인생목표 100가지'는 전교생이 의무로 제작해야 하며 전교생이 참여한 공통신조도 작성 중이다. 게다가 연말까지는 반별 10계명도 만들어야 한다. 이들의 목표를 모아 책을 펴낼 것도 그의 플랜이다.
조교장과 대화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교육현장에 계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학생들을 잘 알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대화하는 동안 의문이 풀렸다. 공대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해 회사에 근무하다가 LG화학 인재개발팀장을 맡으며 직원들의 인성교육과 전문성교육을 해왔다.
28년 동안의 회사 근무를 마친 그는 2010년 여수시 테크니션스쿨 원장으로 초빙 받아 기업에 필요한 인재상을 만들고 직업교육에 전념했다. 여수시 테크니션스쿨은 여수산단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여수시가 만든 일종의 직업전문학교다. 전문기술인들을 양성하면서도 중점을 둔 것은 인성교육이다. 전원 금연, 무감독시험, 매일 감사일기 쓰기를 통한 품성함양이 주효했다.
그와 맺은 인적네트워크와 여수석유화학업체들의 적극적인 인재등용으로 1기생 100%, 2기생 94%의 대기업 취업률을 달성해 2011년 여수시가 선정한 시책에 넘버원으로 선정됐다. 서울에서 명문대를 나와도 입사시험에 떨어지는데 고졸 출신들로만 이뤄진 테크니션스쿨 출신들이 대기업에 합격한 것이다.
박사 학위를 가진 그가 취득한 자격증은 10개나 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중등학교 2급 정교사자격증. 그는 대학시절 교사가 꿈이기도 해 교직을 이수하기도 했던 것. 전남대 경영대학원 CEO리더십과정을 비롯한 34개의 강의실적도 그의 능력을 입증해준다.
화장실을 개혁하기 위한 약속, 치킨 파티조교장은 부임하기 전 학교를 둘러보다 더러운 화장실에 크게 실망했다. 부임하자마자 간부들과 회의를 하며 화장실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학생이 사회에 나가 무얼하겠습니까?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도록 하고 화장실에 화장지를 비치합시다." "안됩니다. 학생들이 화장지를 둘둘 말아 변기에 처박아 변기를 뚫은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안 된다고 하지 말고 이걸 통해서 인성교육을 한번 해봅시다. 화장지 하나도 관리 못하는 학생을 어떻게 산단에 취직시킬 수 있습니까?"
그는 부임하자마자 전교생에게 "화장실이 깨끗해지면 담당학생들과 화장실에서 치킨파티를 열겠습니다"라고 공언했다. 이틀 후 한 학생이 교장실에 찾아와 물었다. 다음은 교장선생님과 학생이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이다.
"교장선생님, 진짜로 치킨파티를 해요?" "당연하지! ""진짜로요?" "진짜다니까"3월 29일이다. 깨끗해진 어느 화장실에서는 신소재 3학년 2반 학급 전체가 참여해 20마리가 차려진 치킨파티가 열렸다. 예고도 않고 방문한 화장실은 웬만한 호텔 화장실 같았다. 매일 등교하는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학교를 혁신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 학생회장(이순선 3년)을 불렀다.
"전임 교장선생님은 위엄이 있어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현 교장선생님은 학생들과 같이 소통하고 매일같이 이른 시간에 나와서 선도부랑 40분 동안이나 정문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요. 하이파이브를 하시면서도 똑같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오늘 행복지수는 얼마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시고~. 밥 맛있게 드세요. 하시면서 상쾌하게 인사해 주세요. 되게 신선한 충격이었죠. 대부분 학생들은 엄청 좋아해요."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진정한 개혁을 위해 달라질 학교가 빛나 보였다. 좌절에 빠지지 않고 희망을 꿈꾸며 나아갈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회의 일반 통념은 실업계 진학을 꺼린다. 하지만 조영만 교장선생님과 함께 희망과 신념으로 가득찬 여수석유화학고 학생들의 달라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그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