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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비렁길
 금오도 비렁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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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랜만에 길 친구들과 함께 걸으러 갔다. 도보카페 <숲길따라 도보여행> 회원들과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러 간 것이다. 일정은 2박 2일. 버스 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은 섬에서 자는 일정이었다. 금오도에 갔지만 숙박은 금오도 바로 옆에 있는 '안도'에서 했다. 금오도와 안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야간버스는 20인승 소형버스였다. 출발시간은 자정은 30분 앞둔 오후 11시 30분. 버스는 밤새도록 달려서 여수까지 갈 참이었고, 그건 좁고 불편한 소형버스 안에서 옹색하게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버스의 좌석과 좌석 사이는 비좁았고, 등받이는 뒤로 아예 젖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불편한 버스를 타고 싶으냐고? 물론 타고 싶지 않지. 하지만 불편을 감내하고라도 금오도 비렁길을 걷고 싶은 걸 어쩌라고. 야심한 시각에 출발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른 새벽에 배를 타고 금오도로 들어가 비렁길 전 코스를 하루에 다 걸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금오도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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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은 다섯 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다섯 개 코스를 전부 합해봤자 길이는 18.5km. 6~7시간 정도 걸으면 '완주'가 가능하다는 코스다. 하지만 늦게 도착하면 2개 코스 정도만 걸을 수 있는 시간 여유밖에 없을 터. 서두르자. 그러면 더 많이 걸을 수 있으리라.

20인승 버스에 탄 인원은 기사 포함 15명. 20명이 꽉 찼더라면 꼼짝도 못하고 앉아서 가야 했겠지만, 좌석이 여유가 있다는 것은 숨을 돌릴 공간이 있다는 의미. 덕분에 나는 보조의자까지 펼쳐놓고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불편할 것을 각오, 목베개는 챙겨 갔는데 도움이 됐다. 장거리 버스여행은 목베개가 필수품. 이거 있으면 장거리 여행이 훨씬 편해진다.

여수에 도착한 건 새벽 다섯 시. 여수 시내에는 새벽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그 이른 새벽인데도 세상에나, 문을 연 식당이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신기항으로 이동해 배를 탈 예정이었다. 여수항에서도 금오도로 가는 배가 있지만 시간이 1시간 20분쯤 걸린나다. 하지만 신기항에서는 25분 정도면 금오도 여천항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당연히 배삯도 더 싸다.

우리 일행이 20인승 소형버스를 타고 간 것은 버스를 배에 싣고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금오도로 들어가는 배에는 자동차를 실을 수 있다. 금오도에는 버스가 없다. 택시는 딱 2대가 있다고 들었다. 택시 기사가 부부란다. 남편과 부인이 따로따로 택시 운전을 한단다. 그 2대의 버스를 금오도에서 걷는 동안, 머무는 동안 다 볼 수 있었다. 아, 사진은 찍지 못했다. 

비렁길, 여수까지 가서 배 타고 들어가 찾아가 걸을 만한 이유 있네

금오도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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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항에서 첫 배는 오전 7시 45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까지는 하루에 7번 배가 오간다. 하지만 주말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시간표에 없는 시간에도 배가 뜬다. 오전 7시에 배에 탔는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배가 출발했다. 배에 승용차와 버스 등이 가득 실린다. 금오도를 찾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금오도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비렁길을 걸으러 온다. 대형버스를 대절해서 오는 이들도 제법 있다. 하긴 비렁길을 직접 걸어보니, 여수까지 가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까지 찾아가 걸을 만한 길이었다. 바다를 끼고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이어지는 벼랑길은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광이 눈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한순간에 사로잡는 그런 길이었던 것.

우리나라 곳곳에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엄청나게 많지만, 금오도 비렁길은 정말 아름다운 길로 손꼽을 수 있다. 걷기를 즐긴다면 꼭 한 번쯤은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길.

게다가 어찌나 숲이 우거지고 아름답던지 걷다보면 저절로 찬사가 터져 나온다. 종주코스인 18.5km가 전부 숲길과 산길로 이어져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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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코스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되는 길이라, 다소 힘들다. 그러니 금오도 비렁길, 우습게보면 안 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라면 경사도가 심해 미끄러지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길이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곳이 많기에 길 곳곳에 무시무시한 '추락주의'라는 팻말이 꽂혀 있다.

우리가 금오도에 도착했던 날, 날씨는 흐렸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날씨는 맑아졌고, 햇볕은 짱짱하게 빛났더랬다. 여천항에서 내린 우리는 소형버스를 타고 함구미항으로 이동했다. 그곳이 비렁길 1코스 출발지점이다.

1코스는 함구미항에서 시작돼 미역널방을 지나 선선대를 거쳐 두포까지 가는 길로 전체길이는 5km. 소요예상시간은 2시간으로 안내도에 나와 있다. 안내도를 볼 때만 해도 5km를 두 시간이나 걸려서 걸어, 하면서 우습게 생각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는 거의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으면서 쉬지 않고 "너무 멋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던 길이기도 하다. 경치는 1코스와 2코스가 제일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눈도 에메랄드빛으로 물 드는 것 같다

금오도 비렁길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다.
 금오도 비렁길에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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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20분에 함구미항을 출발했는데 두포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10분경. 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었고, 어느 집 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느 집 담은 돌을 쌓아 올렸다. 돌담 위로 양철지붕만 빼꼼히 보이는 집. 그리고 길 위에서 무더기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건조되고 있는 자주색 양파들.

해변에서는 아이들 몇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에 발을 담근 채 놀고 있었다. 그 바다, 빛깔이 에메랄드빛이었다. 보고 있노라니 내 눈도 에메랄드빛으로 물이 드는 것 같다.

금오도에는 지붕에 줄을 두르고 끝에 돌을 매달아놓은 집이 많았다. 줄을 여러 겁을 두르고, 무거운 돌을 매단 것을 보니, 태풍이 올 때 바람이 엄청나게 심하게 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붕이 날아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 밧줄을 두르고 돌을 매달았을 테니 말이다. 

금오도 비렁길 곳곳에는 바다를 제대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10개가 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걸으러 온 게 아니라 전망대 체험을 하러 온 거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전망대가 많다는 건 그만큼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자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비렁길 2코스는 두포에서 출발해서 굴등전망대를 지나, 촛대바위를 거쳐 직포로 가는 길로 전체 길이는 3.5km, 소요예상시간은 1시간. 실제로 걸어보니 한 시간 갖고 어림도 없더라. 아주 잘 걷는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천천히 걷는다면 그리고 전망대에 들러서 바다에 눈길이라도 한 번 주려면 시간은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금오도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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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걸으러 온 것, 발걸음만 재게 놀릴 이유가 어딨나. 바다도 보고, 숲도 보고, 금오도에 지천인 방풍나물도 보고, 머위도 보면서 천천히 걷는 거다. 길만 부지런히 걸을 거면 뭐하러 야간버스를 타고 밤길을 달려가나. 뭐하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나. 그냥 집 근처 길만 주야장천 걸으면 되지.

비렁길, 정말 좋다는 감탄사는 이 길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새벽 다섯 시에 여수여객선터미널 부근 식당에서 아침 밥을 먹었더니, 10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배가 고팠다. 우리 일행의 오늘 점심은 김밥. 길위에서 점심을 때울 예정이라 여수에서 김밥을 사왔던 것.

비렁길은 곳곳에 표지판이 아주 잘 세워져 있다. 하긴 길이 외줄기 길이라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세워진 비렁길 표지판, 멋있다.

3코스는 직포에서 시작한다. 갈바람통 전망대와 매봉전망대를 지나 학동까지 이어지는 길, 3.5km다. 소요예상시간 1시간. 하지만 그 시간에 이 길을 다 걸으려면 발바닥에 모터를 달아야할 걸. 아니면 엄청나게 폐활량이 좋거나. 깔딱고개가 따로 없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숨을 헉헉거릴 수밖에 없는 길이다.

에구에구, 요 오르막길 언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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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5개 코스 가운데 가장 힘든 길이다. 에구에구,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막길을 걷는다. "조기만 넘으면 내리막길이겠지" 하면서. 허나 길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길게 이어진다. 에구에구, 요 오르막길 언제 끝나나.

이런 길은 걸을 때는 힘들지만 다 걷고나면 뿌듯하다. 오르막길이 힘든 거야 너나할 것 없이 마찬가지. 하지만 걸을 때만 늘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금오도에서 지천인 것은 머위와 방풍나물. 온 섬에 머위가 퍼져 있다. 누군가가 머위밭에 "머구 따가지 마시요"라는 표지판을 세워놓은 것을 보았다. 여기서는 머위를 머구라고 부르는구나, 했다.

그리고 하얀꽃이 핀 방풍나물 밭 역시 엄청나게 많았다. 방풍나물은 중풍을 방지한다고 해서 방풍나물이라고 불린대나. 하얀 꽃은 멀리서 볼 때는 망초꽃과 비슷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전혀 다르다. 방풍나물 꽃 사이로 망초꽃이 듬성듬성 무늬처럼 피어있다.

1코스부터 3코스까지 걷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 오후 3시가 훌쩍 넘은 것이다. 이런, 대체 몇 시간이 걸린 거야? 거의 7시간 가까이 걸렸다. 종주하는데 6~7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무리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놀았더라도 너무 늘어지는 거 아냐?

18.5km를 후다닥 걸어치우면 시간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길의 난이도가 높아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던 것. 안도의 어느 횟집에 저녁식사를 '회정식'으로 예약했는데 저녁식사 시간을 6시 반으로 했다가 5시반으로 당겼는데,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시간을 다시 늦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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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숲은 나무가 우거졌다. 동백나무 숲은 너무나 나무가 무성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하기까지 하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동백나무숲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2월,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계절에 핏빛으로 붉은 동백이 뚝뚝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동백이 지는 계절이 이 길을 다시 걷고 싶다. 붉은 동백이 숲을 물들이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지.

금오도에는 동백나무 말고 대나무도 많았다. 빽빽하게 자란 대나무 숲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대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손을 맞잡은 것처럼 서 있다. 대나무숲 역시 어둡다. 너무 빽빽하게 대나무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에 댓잎이 서걱거리면서 흔들리는 소리를 낸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별로 없는 대나무숲이라니, 역시 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다. 금오도 비렁길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아름답지만, 동백나무 숲이, 대나무 숲이 울창한 자연 그대로의 길이라 더 좋다.

4코스는 학동에서 사다리통 전망대를 거쳐 심포까지 이르는 길로 길이는 3.2km, 소요예상시간은 1시간. 3코스보다는 난이도가 낮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길은 아니다. 1시간에 다 걸으려면 걸음을 재게 놀려야할 것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게. 하지만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섬에서 잘 예정이니까.

5코스가 시작되는 심포마을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장지를 거쳐 안도로 가는 863번 국도, 다른 하나는 비렁길 5코스로 이어지는 길. 오전에는 연한 잿빛으로 흐린 하늘이 오후가 되면서 개이더니,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더불어 땡볕도.

금오도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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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에서 막개를 거쳐 장지에 이르는 비렁길 5코스는 3.3km로 3코스에 비하면 아주 걷기 쉬운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간 중간 돌을 깔아놓은 길을 걸어야하니 방심은 금물.

비렁길 5개 코스를 종주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 빠지는 10시간. 물론 길 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때때로 숲길에서 쉬거나 전망대에서 바다에 홀려 넋을 잃고 바라보긴 했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만큼 쉽지 않은 코스라는 얘기가 되시겠다.

그렇다하더라도 금오도 비렁길은 정말이지 아름답고 좋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토요일 아침에 이어 일요일 아침에도 배가 대형관광버스 몇 대를 실어 나른다.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러 온 단체손님들이 탄 버스다. 이렇게 오는 단체 손님들은 비렁길 두어 코스를 걷고 다시 배를 타고 나간단다. 종주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이날밤, 금오도와 다리로 이어진 섬, 안도의 민박집에서 머물렀다. 횟집에서 저녁식사로 흐드러지게 차려진 회정식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밤, 방파제를 잘 쌓아 파도가 전혀 치지 않아 마치 마을 저수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바닷가에서 모기에게 뜯기면서 맥주를 마셨다.

하늘에는 별 하나 뜨지 않았다. 다음날, 비가 온다나 어쩐다나.

금오도 비렁길 지도
 금오도 비렁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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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보여행, #금오도, #비렁길, #여수, #숲길따라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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