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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묵은 숙소는 제가 포카라에 처음 왔었던 2001년에 인연을 맺은 곳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숙소는 페와 호수가 있는 레이크 사이드 중심 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옥상에서는 안나푸르나 사우스(7219m)와 마차푸차레(6997m) 모습과 페와 호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옛 추억을 생각하며 숙박하였는데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숙소 인근 카페와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자정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좋은 음악도 때와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 같습니다. 트레킹을 끝내고 포카라에 온 여행자에게는 소음으로만 느껴집니다. 

새벽 산책길...

여명이 트기 전 산책을 하였습니다. 숙소 앞 보리수나무에는 작은 신전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과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쉬'를 모신 신전입니다. 액운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오는 '가네쉬'는 네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힌두교 신입니다. 누군가가 불을 밝히고 향을 피워놓았습니다. 저도 두 손을 맞잡고 식구들을 생각하며 기원해 봅니다.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 보리수 나무 아래
▲ 가네쉬 사원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 보리수 나무 아래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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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 호수를 걸었습니다. 물안개가 피어나는 호수는 고요 그 자체입니다. 낮 시간의 혼잡함은 사라지고 밤새 손님을 기다리던 텅빈 보트만이 호수를 지키고 있습니다. 호수에 투영되어 아름다움을 빛내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도 보이지 않습니다. 설산도 밤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 산책길의 호수 모습
▲ 페와 호수 새벽 산책길의 호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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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가 아름다운 것은 설산이 호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와 호수는 설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은 계기도 이곳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페와 호수에 담겨있는 설산의 모습은 저를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소음 때문에 숙소를 옮겼습니다. 새로운 숙소는 중심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지만 예쁜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꽃과 소박한 조형물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더구나 창을 통해 페와 호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레이크 사이드 외곽에 있는 숙소 모습
▲ 숙소 레이크 사이드 외곽에 있는 숙소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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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에는 6개월 전에 우리나라를 출발하여 중국과 티베트를 거쳐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가는 두 젊은이가 숙박하고 있습니다. 장기 여행자답게 식사를 직접 해결한다는 젊은이들은 포카라가 좋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의 장점을 묻자 "편안함"이라고 대답합니다. 2년 동안 아시아, 유럽 그리고 남미를 여행할 계획인데 언제 인도로 떠날지 미정이라고 합니다.

'박영석'과 '고미영'의 흔적이 있는 곳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자전거는 여행자들의 가장 좋은 이동 수단입니다. 100루피(1300원)면 한나절을 빌릴 수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한가롭고도 아름다운 포카라를 배회합니다. 힘들면 호수 옆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가게에  들어가 시원한 청량음료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나마스떼"와 "안녕하세요"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옵니다.

제가 간 곳은 국제산악박물관이었습니다. 박물관에는 히말라야 등정의 역사와 세계적인 등반가들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1층 한 면에는 우리나라 코너가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박영석, 엄홍길, 한완용, 고미영 등 많은 우리나라 산악인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악인의 코너가 있는 박물관 정경
▲ 국제산악박물관 우리나라 산악인의 코너가 있는 박물관 정경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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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에 띈 것은 고인이 된 '박영석'과 '고미영'의 부스였습니다. 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다 운명을 달리한 '박영석'과 2009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눈앞에 두고 에베레스트에서 고인이 된 '고미영'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의 숫자가 가장 많습니다. 지금까지 완등에 성공한 사람은 모두 30명(2013년 5월 기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는 엄홍길, 박영석, 한완용, 김재수, 오은선 그리고 최근 14좌를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한 김창호까지 무려 6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정상을 오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막대한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에 서고자 하는 '등정주의'와 최소한의 장비와 인력으로 남들이 개척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통해 오르는 '등로주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등반의 역사는 아웃도어 업체의 후원으로 남보다 빨리 14좌 완등을 목적으로 하는 '등정주의'가 주류였습니다. 박영석은 '등정주의'에서 탈피하여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이어 안나푸르나 남벽에 '코리아 루트'를 개척하려다 운명을 달리하였기에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샨티 스투파'

늦은 오후, 페와 호수에서 배를 빌려 호수를 건넜습니다. 뱃사공 처녀가 우리말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네옵니다. 산업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가기위해 한국어 학원에 다닌다고 합니다. 얼굴만큼이나 친절한 네팔 처녀의 소박한 꿈이 우리나라를 통해 실현되었으면 합니다.

포카라 페와 호수에서..
▲ 뱃사공 처녀 포카라 페와 호수에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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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여행자들을 위한 레이크 사이드와 달리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입니다. 호수만큼이나 순박해 보이는 가족이 인사를 건네옵니다. 가족사진을 찍어 선물로 줍니다. 카메라 앞에 자세를 취하는 가족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세계평화탑을 오르면서
▲ 행복한 가족 세계평화탑을 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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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길을 30분쯤 오르니 좋은 전망을 가진 '세계평화탑'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탑은 2001년 일본의 불교단체에서 건립하였습니다. 네팔말로 '샨티 스투파'라 불리는 탑은 높이 40m의 거대한 모습입니다. 탑이 아름다운 것은 좋은 전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불교단체에서 세계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건립한 탑
▲ 세계평화탑 일본 불교단체에서 세계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건립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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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의 해발이 800m인데 비해 이곳은 해발 1113m입니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으며 아래쪽에는 페와 호수와 포카라가 있습니다. 푸른 하늘과 하얀 설산이 호수와 어우러진 포카라의 모습은 사람을 몽환적으로 만듭니다. 

세계 평화탑을 오르기 위해
▲ 페와 호수 건너편 모습 세계 평화탑을 오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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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탑에서....
▲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세계평화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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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인 저는 그늘에 자리 잡고 하염없이 설산과 호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라운딩,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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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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