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 했을까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에 수제비가 '박탁'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언제부터 수제비를 먹기 시작했는지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답니다.
수제비는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얇게 펼쳐 뚝뚝 떼어 넣어 끓인 음식입니다. 여름철에 먹어야 맛있습니다. 서민 음식인 수제비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면 더욱 더 생각납니다.
경상도 통영 지방에서는 수제비를 '군둥집'이라고 한답니다. 북한 지역에서는 '뜨더국'이라고 부른답니다. 이와 비슷한 음식으로는 닭 육수에 밀수제비를 넣어 끓인 황해도의 '또덕제비', 메밀가루를 익반죽하여 멸치장국에 미역과 함께 끓여낸 제주도의 '메밀저배기'도 있습니다.
애호박과 조갯살을 넣어 끓여낸 수제비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비오는 날은 수제비가 썩 잘 어울리는 메뉴지요.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강진 월출산 자락에 있는 찻집 다향산방입니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차보다 수제비가 더 유명합니다. 알음알음 알려져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지 오래지요.
어스름 해질녘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옵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월출산을 배경으로 지어진 찻집은 볼수록 정겹습니다. 찻집 곁에는 이 한영 생가가 있습니다. 차의 신, 다선으로 추앙되었던 이 한영 선생(1968~1956)은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차 역사의 맥을 잇는 다인입니다.
손반죽으로 만든 수제비랍니다. 다시마와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 그 맛이 정말 좋습니다. 고려청자에 담아내 기품 있어 보입니다. 죽순과 쑥갓 부추를 액젓에 버무려낸 죽순나물은 압권입니다. 상추 물김치도 상큼합니다.
1인분 5천 원인 수제비가 호텔 음식 부럽지 않습니다. 안 먹어보면 후회할 그런 음식입니다. 수제비 한 그릇에 음식 먹는 즐거움이 넘쳐납니다. 이내 마음마저 행복하게 해줍니다.
명품차도 있습니다. 백운옥판차, 국화차, 생강차 등 직접 이곳에서 덖어 만든 자연차 한잔에 4천원으로 커피에 비하면 이 또한 무지 착한 가격입니다. 월출산을 품은 찻집에서 맛본 수제비와 차 한 잔에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스레 뚫립니다. 은은한 자연의 맛과 어머니의 손맛이 가득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