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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야(사막)의 여명
광야(사막)의 여명 ⓒ 이상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치수와 관개를 통해 농업을 발전시켰다.
치수와 관개를 통해 농업을 발전시켰다. ⓒ 이상기

시를 너무 길게 인용했다. 그렇지만 육사의 시가 이집트 문명을 얘기한 것 같아 전문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첫 연은 문명의 새벽을 이야기한다. 어둠 속에 밝게 피어난 것이 이집트 문명이다. 그것은 모든 문명에 공통되는 것으로 치수와 관개를 통해 가능했다. 나일강이 주는 축복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가장 먼저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

 

두 번째 연에서는 산맥을 사막으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 그 사막을 지나가는 나일강이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문명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네 번째 연이 문제다. 그 땅에는 눈도 오지 않고 매화꽃도 피지 않기 때문이다. 네 번째 연을 이렇게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나일강 양쪽으로 광야(사막)가 펼쳐진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나일강 양쪽으로 광야(사막)가 펼쳐진다. ⓒ 이상기

세상 어수선하고

모두 Out을 외치지만

내 여기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틀림없이 이집트에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육사처럼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를 것이다. 이집트의 미래에 희망의 노래를. 문명교류 탐사를 하며 배운 것은, 역시 자연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또 문명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과거 위대한 문명과 문화를 이룩했던 나라는 모두 강이라는 자연에서 출발한다. 그곳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면 자연과 사람은 문명이라는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명이라는 것도 영원하지 않아 항상 몰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이다.

 

 에루살렘 올드 시티
에루살렘 올드 시티 ⓒ 이상기

나는 지난 보름 동안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룩한 문명과 문화를 살펴봤다.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기원전 1000년까지 2000년 동안 최고의 문명을 이룩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문명은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기원전 10세기에 전성기를 이뤘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처럼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집트의 선진문명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집트 문명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신앙체계와 생활방식을 만들어 역사상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었.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문명은 이집트 문명이 유럽으로 퍼져나가는데 중간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세 가이드 이야기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세 명의 가이드를 만났다. 이스라엘에서는 성서지리학을 전공한 이철규씨가 나왔다. 그는 한마디로 이스라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가는 곳마다 성서에 나오는 지명과 현재의 지명을 비교하며 이스라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를 통해 나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예수와 성서 이야기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도시별 교통체증을 잘 파악해 우회로를 선택하고 여행코스를 조절해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버스 기사와도 호흡이 잘 맞아 전체적으로 효율적인 여행이 됐다.

 

 예루살렘 성전을 설명하는 이철규 가이드(선글라스 낀 사람)
예루살렘 성전을 설명하는 이철규 가이드(선글라스 낀 사람) ⓒ 이상기

그는 텔아비브에 있는 벤구리온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해, 이집트와의 국경인 에일라트 검문소에서 우리와 작별할 때까지 6일 동안 우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타바 검문소에서 우리를 맞이한 두 번째 가이드 제정희씨는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50대의 푸근한 아주머니로 우리의 마음을 아주 편하게 해 주었다.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가게 돼 그곳에서 이집트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됐고, 남편을 따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무려 700km를 달려왔다.

 

전날 밤부터 달려와 오전 10시에 타바 검문소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1시가 돼 검문소를 나가자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그때부터 오후 10시까지 또 버스를 타고 카이로까지 무려 11시간을 가야만 했다. 한 마디로 그녀는 24시간 차를 타야만 했던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사실이지만 가이드는 정말 3D 업종이다.

 

 알렉산드리아 원형극장의 제정희 가이드(모자 안 쓴 여자)
알렉산드리아 원형극장의 제정희 가이드(모자 안 쓴 여자) ⓒ 이상기

한마디로 어렵다(Difficult). 여행객의 사정을 다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위험하다(Dangerous). 특히 여행 자제국의 가이드는 더 위험하다. 제정희 가이드 같은 경우야 현지인이니 별 문제가 안 됐지만, 가는 곳마다 검문이 있고 시간을 지체시키기 때문이다. 셋째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더티(Dirty)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같은 연구 답사팀에게는 해당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쇼핑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쇼핑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일들이 가이드를 더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3일 동안 우리를 안내했다. 젊은 시절 우리나라를 떠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언어표현이 미숙한 점은 있었지만, 정말 진실하게 우리를 대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최고의 가이드 역할을 했다.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서 사진찍는 문제로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잘 해결해줬고, 식당과 카페 등 명소로 우릴 안내했다. 그리고 일과가 끝난 후 우리를 시장으로 안내해 살구·무화과·꿀 등 농산품을 아주 값싸게 살 수 있도록 해줬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이집트 숫자를 설명하는 김은희 가이드
카르나크 신전에서 이집트 숫자를 설명하는 김은희 가이드 ⓒ 이상기

이번 여행의 마지막 가이드는 김은희씨였다. 기자역에서 만나 나일강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7일 동안 우릴 안내한 그녀는 한 마디로 똑소리가 났다. 그녀는 국내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인도를 여행하다, 그곳에서 이슬람 문화에 경도돼 아랍어문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에서 배운 아랍어가 정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카이로에 와 더 공부를 더 하게 됐단다. 그리고는 삶의 방편으로 가이드를 시작했고, 워낙 기초가 튼튼해선지 금방 베테랑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이 아주 명쾌했다. 신전에서도 중요한 곳만 찾아 핵심을 전해 주었다. 야간열차나 크루즈에서도 정말 오차 하나 없이 일을 처리했다. 이때 열차나 크루즈의 종업원은 물론이고, 현지 가이드까지 완전하게 장악하고 그들을 이용했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야간열차가 연착을 하자 아부심벨로 가는 코스를 다음날 새벽으로 바꾸는 일도 아주 신속하게 처리했다. 한마디로 현지인들이 김은희에게 꼼짝을 못했다.

 

 방가로 형식의 이시스 호텔(아스완)에서 바라 본 나일강
방가로 형식의 이시스 호텔(아스완)에서 바라 본 나일강 ⓒ 이상기

아스완에서는 호텔을 나일강 조망이 가능한 방갈로 호텔로 교체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크루즈 일정을 시간대별로 정확히 알려주는가 하면, 선착장에서 문화유산까지 가고 오는 일도 기가 막히게 완벽하게 처리했다. 또 우리 팀원들도 가이드의 요구에 부응해 일정을 정확히 소화해 냈다. 나일 크루즈의 하이라이트는 룩소르 일정이었다. 오전에 왕가의 계곡을 보고, 오후에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를 신전을 보는 정말 빡빡한 일정이다. 그렇지만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녀는 일정을 완벽하게 진행했다. 파라오의 무덤에서 본 벽화, 카르나크 신전 열주의 웅장함, 룩소르 신전의 야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르시, 결국 쫓겨나고 말았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카이로의 구시가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내 치안이 불안한 것은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데모가 계속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세속·자유주의 세력이 무함마드 무르시(Mohamed Morsi)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쫓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와 원리주의자 간에 일종의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군부를 장악하고 30년 철권통치를 한 무바라크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외신으로 기사가 전해졌다. 군부에 의해 무르시 대통령이 쫓겨났다고. 그는 2012년 6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했고, 국방장관 칼릴 알시시(Abdul Fatah Khalil Al-Sisi) 국방장관의 쿠데타로 2013년 7월 3일 해임됐다. 그는 꼭 1년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나 지지기반 미약과 정정불안으로 데모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집트는 정권을 잡기 위해 또 다시 세속 자유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군부의 3파전이 시작될 것이고 정정은 다시 혼미해질 수밖에 없다.

 

쿠데타로 군부가 실권을 쥐고 있는듯하지만 미국은 쿠데타시 원조중단을 공언한 바 있다. 현재는 군부가 무르시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했기 때문에 세속자유주의 세력이 군부와 연대한 입장이다. 그러나 군부가 계속 권력을 행사하면 이들 자유주의 세력은 다시 군부와 충돌할 수 있다. 중동과 이슬람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자유화 운동은 군부가 전면에 나서면 성공하기 어렵다. 중동의 강호라고 할 수 있는 터키는 세속자유주의 세력이 국가를 이끌고,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국가를 이끌고 있다. 이집트가 어떤 길을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카이로를 떠나며

 

 룩소르 신전 야경
룩소르 신전 야경 ⓒ 이상기

나는 지난 9일 동안 이집트 문명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에 넋을 잃었다. 기원전 3000년부터 1000년까지 그들이 이룩해 놓은 찬란한 문화는 당대 최고였다. 아마 그때 지도자들이 지금과 달리 백성을 잘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에 비해 현재의 지도자나 국민의 수준이 퇴보한 걸까. 퇴보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복지를 우선시하고 분배를 공정히 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대사의 두 대통령 낫세르와 무바라크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됐다. 낫세르는 국가를 위해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했고, 국민을 위해 대수로 공사와 농장 개척을 주도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국영사업을 벌이며, 기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아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이제는 그러한 지도자의 부정부패가 국민들에게까지 내려와 나라 전체의 도덕성이 타락했다.

 

 카이로 국제공항 야경
카이로 국제공항 야경 ⓒ 이상기

점심 때 식당에서 설문조사라는 것을 실시했다. 이집트 관광에 대해, 식당에 대해, 음식의 질에 대해, 서비스에 대해.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설문지를 작성하고 나서 그 볼펜을 돌려주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설문조사에 응하면 볼펜을 주는데, 여기서는 설문조사를 하고는 볼펜을 되돌려줘야 한다.

 

또 우리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셋이 우리 팀에 접근한다. 그리고는 안내를 하느니 짐을 들어주느니 하면서 호의를 베푼다. 이집트 여행을 여러 번 한 강상훈 대표가 필요 없다고 해도 가질 않는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팁을 요구한다. 강 대표도 어쩔 수 없이 팁을 몇 푼 줘 그들을 보낸다. 이건 뭐,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여행객은 이집트 관광 인프라의 열악함을, 또 어떤 관광객은 시스템의 결여를 지적하지만, 나는 이집트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성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육사의 시처럼 이집트는 이제 도덕성을 회복시킬 초인이 나타나길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는 언젠가 백마를 타고 이 광야에 나타나 도덕성 회복 노래를 목 놓아 부를 것이다. 그런 초인이 천고(千古)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나타나길 바란다.


#이집트 문명#카이로#나일강#세 가이드#무함마드 무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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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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