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만났던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집이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은 뇌성마비·자폐아를 가졌습니다. 이 분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아등바등하는 이도 없습니다. 자기 이익에 눈먼 이도 없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꿈을 이루어갑니다. 그 꿈이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참 고귀합니다.
이들처럼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비웃고, 같이 출발했지만 다른 동무들은 벌써 저만치 달려갈 때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기소개를 하고, 100미터를 달렸고, 뜀틀을 뛰어면서 '꿈'을 가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너는 안 해도 돼"라는 배려 아닌 배려와 "이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한국 여성 최초로 국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버지니아 주 조지 메이슨 대학 교수인 정유선입니다. 그는 강의를 목소리 대신 보완대체 의사소통기기로 하는 데 일주일 내내 리허실을 합니다. 이를 아는 동료 교수들은 경의를 표했고, 메이슨 대학은 지난 해 '최고 교수'로 뽑았습니다.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예담)은 뇌성마비 장애를 이겨내고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찬사를 듣기까지 그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뇌성마비를 이겨내고 대학교수가 된 '참 괜찮은 사람', 정유선"나의 걸음은 아직도 서툴고 흔들린다. 그래서 또 넘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흔들리는 걸음으로 지금까지 굽이 돌아가는 길을 당당하게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내가 원하는 '참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참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서툰 걸음 때문에 자주 넘어지면 그냥 좌절해버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도움만을 주기를 바라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흔들리는 걸음으로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뇌성마비가 '장애'가 아니라 "스스로 심리적 한계를 긋고 자신과의 싸움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행위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 교수가 이런 생각을 넘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뇌성마비 딸에게 늘 "교수가 돼라"며 "유선아, 네가 크면 멋진 집을 한 채 지어주마. 거기서 너는 장애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거라. 아버지는 그 집의 수위를 할게"라고 말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또 "딸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딸을 위해 끊임없이 동화책을 읽어주며 꿈을 심어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정유선 교수 어머니 김희선 씨는 1960,70년대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 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릉도!"를 부른 이시스터즈 멤버였습니다.
스스로 걷기는커녕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딸에게 "교수가 돼라"는 아버지 말은 정말 '뜬구름'이고, 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어머니때문에 정유선은 뜬구름같은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힘들과 괴로울 때 혼자가 아니었다"내가 힘들고 괴로울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어떤 역경이나 고난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그는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없는 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운명아. 덤벼라.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절대 등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론 정유선처럼 반드시 대학교수와 '최고 교수'가 되어야만 참 괜찮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는 길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좀 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걸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아주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걸 수도 있다"는 정유선 말처럼. 장애를 가진 이, 장애가 없는 이, 많이 배운 이, 배우지 못한 이, 물질이 풍부한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다 다릅니다.
"비포장도로건 아스팔트건 누구나 자신의 길에서 장애물을 만나 부딪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느냐 맞서 넘어가느냐이다."그 장애물을 넘고 넘어 산꼭대기에 분명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은 '나 혼자 만의 세상'을 꿈꾸지 않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과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는 정유선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운명아, 덤벼라"...당당하게 나아가 '참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자
"나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충실히 살다보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나와 다른 운명에 굴복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같이 가자고 합니다. 눈으로 보기에 꿈꾸는 것이 다를지만, 가보면 같습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조지 메이슨 대학 최고 교수'가 너무 높아 함께 할 수 없는 정유선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는 우리에게 "누구나 생각보다 뛰어나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라"고 합니다. 편견 속에서도 당당하게 앞으로 살았던 정유선은 자신을 보고 다른 이들이 용기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부족한 내가 꿈을 이룬다면 다른 이들도 용기를 얻을 것이라는 작은 소망을 품는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정유선 지음 ㅣ예담 펴냄 ㅣ 272쪽 ㅣ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