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에 빛난 별"정디(정지)! 어디 가시오?"후문 보초가 물었다.
"동무, 우리 강에 내려가 땀 좀 닦으려고 그래요. 어디 끈적거려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기럼, 나두 같이 갑세다.""뭐요! 보초가 복무시간에? 동무! 부대나 잘 지키세요.""알갓습네다. 기럼 날래(빨리) 다녀오시라요. 아, 김 동무는 도캇다(좋겠다)."그들은 낙동강 강가로 갔다. 하현달빛이 어슴푸레 강물에 비쳤다.
"내가 멱을 감는 동안 동무는 멀찍이서 보초를 서다가 나중에 감으시오.""아, 알가시오. 날래 멕(멱)이나 감으시라요.""김 동무는 내가 멱 감을 동안 하늘만 쳐다보세요.""아, 알갓시오."준기는 사방을 살핀 뒤 곧 하늘을 바라보았다. 은하수의 별들이 금세 쏟아질 듯 반짝거렸다. 순희도 강물 속에서 멱을 감으며 하늘을 쳐다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준기는 그 노래에 맞춰 휘파람을 불었다. 그 순간 낙동강은 전선 같지 않았다.
"이제 동무도 강물로 들어와 멱 감으시오. 단, 내 곁 10미터 내로 접근치 마시오.""알가시오. 하지만 국방군이라두 오면 어쩌려고 기러시오(그러시오)?""걔네들은 야맹증이라 밤에는 꼼짝도 못해요.""기럼, 왜 보초를 서게 하오?"
묘향산 향로봉"그래도 혼자 오면 무섭기도 하고 … 심심하기도 하고 ….""머이오(뭐요). 내레 이데(이제) 동무 노리개라는 말이오?""김 동무는 내 조수예요.""조수? 나두 용감무쌍한 인민군 전사입네다.""누가 영용한 인민군 전사 아니래요."그들은 강물 위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소곤거렸다.
"참 아름다운 밤이네요. 물도 맑고 별도 많고.""내레 고향 넹벤 청천강에서 너름(여름)밤 멕감을 때 오늘밤처럼 별들이 찬란햇디요(했지요).""그랬어요? 어디나 밤경치가 비슷하구먼요.""긴데 강물은 우리 고향 청천강이 데일(제일)일 거야요. 강물이 어찌나 맑은지 강 이름에도 맑을 '청(淸)' 자를 썼디요.""내가 살던 서울 한강도 물이 아주 맑아요.""하기야 우리나라 강은 어디나 다 맑고 아름답디요. 그래서 네(예)로부터 금수강산이 아니갓소.""
고향 영변 이야기 좀 더 해주세요.""우리 고향 넹벤(영변)에는 묘향산이 이서요. 조선 4대 멩산(명산)이야요. 이 산 상원동, 만폭동, 향노봉(향로봉) 일대 풍치가 뛰어나디요. 이 산에는 향나무들이 많아 향기가 돟다고(좋다고) 묘향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구요. 그리구 약산에는 약수도 있구, 약초도 많은데, 약산 데일봉(제일봉)을 둥심(중심)으로 기암괴석들이 틍틍이(층층이) 쌓여 경치가 돟아요. 그 바우(바위) 가운데는 매우 널틱한(널찍한) 바우가 있는데 기게 약산 동대이디요. 약산 동대는 네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봄에는 진달래꽃, 가을에는 단풍이 일품이디요. 일 년에 두 차례나 붉게 불타오르디요."
봉이 김선달"
네에?""봄에는 진달래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산에 불이 난 듯 붉기 때문이디요.""아, 네에. 저는 정말로 산불이 나는 줄 알았지요.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기때(그때) 내레 안내하디요. 만일 봄에 오신다문 진달래 꽃방맹이를 만들어 순희 동무에게 바치디요.""진달래 꽃방맹이라뇨?""우리 고당(고장)에서는 총각이 처네에게 바치는 사랑의 증표라요.""네? 사랑의 증표, 그 아주 재미있는 풍습이네요.""그리구 묘향산에는 전설두 많디요. 천하의 봉이 김선달이 부잣집 마나님에게 상원암 가는 가파른 디옥(지옥)길을 안내하면서 자기 죄를 거짓 고백했디요. 자기의 죄를 뉘우테(뉘우쳐) 낱낱이 고백하면 디옥길을 사뿐히 디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죄조차두 모두 깨끗이 없어지구 앞으로 부처님 가피루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구 마나님에게 사기를 텟디요(쳤지요). 마나님들이 그 꾐에 넘어가 김선달이 말한 바우에서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했대요. 김선달이 바우 뒤에서 이를 다 들은 뒤 나중에 기걸(그걸) 까탈삼아 재물을 빼앗았답네다." "그 사람 아주 치사한 사기꾼이네요.""기렇디 않아요. 김선달은 거(그) 재물을 학대받은 하인들과 어려운 인민한테 골고루 나누어줬답네다."달밤"동무, 이야기 잘 들었소. 그런데 오늘은 김 동무가 어찌 이리 이야기도 잘 하오?""사람이나 새, 그리고 짐승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자연히 말이나 노래를 많이 하게 마련이디요. 새들도 보라요. 사랑의 계덜(계절)인 봄에는 아주 야단스럽게 디더기디요(지저귀지요).""뭐예요. 이제는 사수를 사랑한다니, 동무를 군기문란 죄로 넘기겠소.""마음대루 하시라요. 기럼, 나두 최 동무가 낙동강에서 나랑 발가벗구(벌거벗고) 멕감았다구 동네방네 소문낼 거야요."준기는 두 손으로 강물을 순희 편으로 끼얹었다. 그러자 순희도 지지 않고 두 손으로 준기에게 강물을 끼얹었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에게 물을 끼얹는데 달빛에 두 사람의 가슴이 다 드러났다. 곧 순희는 그 사실을 알고서 화들짝 놀라며 앞가슴을 물속에 얼른 감췄다.
"김 동무! 내가 잘못 말했어요. 이제 그만 갑시다." "알가시오. 기럼, 갑세다. 앞당 서라요.""아니에요. 동무가 먼저 나간 뒤 뒤돌아보지 말고 곧장 강둑으로 가세요." "알가시오." "역시 동무는 나의 착한 조수요?" "메라구?" "동무는 영용한 우리 인민 전사라구요." "체, 아주 가디고 노시라요."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소설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일일이 검색하여 수집한 것들과 작품 취재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지인 및 애독자들이 제공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