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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사형폐지국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국제사회는 최근 10년 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나라를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고, 한국은 지난 1997년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외침은 종교인들의 몫으로만 여겨지기도 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사형제도 존치 여부를 해묵은 논란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참혹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언론이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저런 범죄자는 사형시켜 버려야 해!"라며, 묵은지 꺼내듯 사형제도를 입에 담기 시작한다.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필자 또한 이러한 감정적인 반응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국가는 언제나 냉정해야 하며, 그 어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타의에 의해 생명이 빼앗기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국의 사형제도 폐지 운동 상황을 국제 사회에 전하고 전략 마련, 경험공유 그리고 사형수의 가족, 전직 사형집행관 등 사형과 관련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6월 12일~15일, 4일간 개최된 다섯 번째 세계사형제도폐지총회(5th World Congress Against the Death Penalty_ 이하 총회)에 다녀왔다.

3년마다 개최되는 총회는 2001년 독일 스트라스부르그를 시작으로 캐나다 몬트리올,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바에 이어 올해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총회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사형폐지를 위해 하나로'(Together Against the Death Penalty, Ensemble Contre la Penie de Mort_ECPM)가 주관하고 주최국인 스페인과 함께 노르웨이, 스위스, 프랑스외 6개국 정부와 세계사형폐지연합(World Coalition Against the Death Penalty)의 후원과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총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2번의 전체토론, 11개의 라운드 테이블, 8개의 워크숍과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쉴틈없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공식 개회식을 앞두고 아시아사형반대네트워크(Anti Death Penalty Asia Network_이하 ADPAN) 전체 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사형제도 존치 입장을 명확히 하였고 이는 당선된 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그로인해 지난 15년간의 사형집행중단을 위한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임을 전했다. 이에 ADPAN 멤버들은 한국의 상황과, 어려움에 처할지도 모를 종교·시민사회와 인권활동가들에 위로를 전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의 눈을 떼지 않을 것이라고 응원하였다.

총회 개회식은 미국 플로리다의 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스페인인 사형수 파블로 이바(Pablo Ibar)의 편지를 아내인 타냐 이바(Tanya Ibar)가 대신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파블로 이바는 1994년 살인으로 체포되어 2000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이후로 19년여간 그와 가족들은 죄가 없음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그는 "정의를 추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 전했다. 가족들은 플로리다주와 사형집행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도록 결정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며 반문했다.

억울한 투옥 후 불공정한 재판 가능성 실감한 어느 사형집행관

이어서 미국 버지니아 주 전직 사형집행관이었던 제리 기븐스(Jerry Givens)는 "17년 동안 전기의자로 37명, 독극물 주사로 25명의 사형수들에게 사형을 집행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1999년 자신의 친구가 저지른 마약거래와 돈세탁에 대한 위증 혐의로 억울하게 4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에야 누구나 얼마든지 불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실감하며,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즈먼드 투투(Desmond Mpilo Tutu) 대주교는 영상메시지로 용서 없이는 미래가 없음을 역설하고 전 세계의 사형폐지를 위해 힘써줄 것을 호소했다. 이밖에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서면메시지와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의 외교통상부 장․차관 그리고 이라크, 필리핀, 베냉의 외교 및 법무부 장관이 개회식에 참석하여 사형폐지를 향한 세계인의 열망에 함께했다.

성황리에 진행된 개회식을 마치고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사회학적, 종교적, 법률적인 중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사형선고를 받은 외국인을 위한 법률 및 외교 전략은 무엇인가?', '세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청소년들', '캘리포니아의 사형폐지 캠페인을 통해 본 사형제도 폐지 전략' 등 각국의 인권활동가, 변호사, 국회의원, 교수, 분야별 전문가들의 발제로 전체토론 및 워크숍,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새로운 희망을 위한 믿음과 용기 재확인"

숨가쁘게 이어진 2일 간의 수많은 논의를 끝으로 어느새 폐막식이 다가왔다. 까야로 극장(Cines Callao)에서 진행된 공식 폐막식은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이 날 교황 프란치스코 1세가 교황청 국무장관을 통해 전달한 서한이 도착했다. 서한에는 "이번 총회를 통해 전 세계적인 사형폐지는 인류가 범죄에 굴복하지 않고 복수를 거부하며 새로운 희망을 드높일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재확인했다"며, 교황청은 줄곧 사형폐지를 위해 노력해왔음을 밝혔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마지막 행진이었다. 까야로 극장에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광장을 지나 다시 까야로 광장(Plaza Callao)으로 돌아오는 길을 총회 참가자 전원과 사형폐지를 지지하는 수많은 스페인 시민들과 함께 어깨에 밧줄을 메고 행진했다. 흥겨운 스페인 전통 음악과 함께 총회 공식 포스터에도 등장했던 빨간색 손바닥 모양의 피켓을 손에 끼우고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마드리드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더불어 밧줄을 어깨 대신 목에 감싸고 자국의 사형제도 폐지를 있는 힘껏 외치던 어떤 이의 모습 또한 잊을 수 없다. 그의 외침이 강렬했던건 사실상 사형폐지국인 한국에 살고 있는 필자에게 아직 수백 건의 사형이 집행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의 상황이 절실하게 와닿았기 때문이고, 이를 위해 전 세계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이미 사형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여유롭고 친절한 모습으로 전세계의 사형폐지를 위해 함께 해주었다. 국경을 떠나 언제 어디서든 사형이라는 이름의 살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5회 세계사형폐지총회에 참석한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이바디 (Shirin Ebadi)
5회 세계사형폐지총회에 참석한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이바디 (Shirin Ebadi) ⓒ 천주교인권위원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은정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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