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는 감시대상자, 요주의대상자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자에게 어울리는 단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했어요.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생각 깊숙이 들어와 있는 '왜곡된 생각'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의 생각까지도 검열하게 만드는 '생각의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의 실체를 파헤치고, 맞서보려 합니다. - 기자 말
'한국사회 생각의 블랙리스트' 중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 '어쩔 수 없지 않냐', '약소국의 운명 아니냐' 하는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서정주를 예를 살펴보면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1988년 출판된 <팔할이 바람>이라는 시집에 <종천순일파>란 시가 있습니다. 그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줄임)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만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 '부일파(附日派)'란 말도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안다./ 일본에 바짝 다붙어 사는 걸로 이익을 노리자면 끈적끈적 잘 다붙는 무얼 가졌어야 했을 것인데 나는 내가 해준 일이 싼 월급을 받은 외에 그런 끈끈한 걸로 다붙어 보려고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이것은 하늘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 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줄임)서정주만큼 논란의 대상이 된 시인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의 시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항상 붙이는 말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주는…". 우리는 그가 시를 너무 잘 써서 자자손손 말밥에 오르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정주는 일제강점기 일본어를 '국어'로 여기며 살았고, 일장기를 아랫목에 세워두고 합장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태양신 아마테라스와 메이지 왕의 신사에 참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 소설, 평론에 이르는 그의 '친천황' 작품의 내용은 열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노골적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그의 천황'은 그 외형만 바뀐 채 지속되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중을 학살한 전두환을 위해 TV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전두환의 56세 '탄생일'을 맞아서는 <처음으로>라는 축시를 통해 "단군 이래 최고의 미소"를 가졌다고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서정주가 '종천순일파'라는 표현을 쓴 걸로 봐서 친일행위를 긍지로 여기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친일을 한 이유는 대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쩔 수 없다'는 가치관입니다.
물론 모든 이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친일을 강요당하자 김기림같이 침묵하거나 이육사같이 망명을 택한 문인들도 있었고, 일본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작가들도 많았습니다. 문학평론가 김재용 원광대 교수(한국어문학부)는 <협력과 저항>이란 저서에서 "친일 협력을 했던 이들보다 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이 엄연한 문학사적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서정주는 말년까지도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죠. 정신자체가 식민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가치관은 근대 이후 한국사회 지식인들에게 강력한 변명거리가 되었습니다.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를 두고, '당시 힘없는 나라 백성으로 별 수 없지 않았냐,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이냐 나라 팔아먹은 놈들이 문제지'라는 적극적 방어논리도 등장할 정도니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 근대 이후 지식인들의 강력한 변명
노무현의 경우는 서정주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우지만 '친미'의 틀거리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노무현은 새로운 인물이었습니다. 학력, 경력, 정치행로,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모든 것이 '도전정신'의 상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했고, 2002년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민중들은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 기대를 가지게 되었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의 도전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검찰, 사학 등 그동안 성역으로 둘러 쌓여 있는 영역들에 선전포고를 하고 싸웠습니다. 실패도 있었고 탄핵도 당했지만 민중들은 그의 '용기'에 지지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달랐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강요에는 맥없이 물러섰습니다. 결국 비정규직은 갈수록 확대되었고, 구속된 노동자 수도 역대 최대였습니다. 여의도 농민대회 도중 진압경찰의 폭력에 사망한 전용철 열사처럼 거리에서 죽어가는 농민들도 많았습니다.
개방전략의 성공 가능성은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해도, 흔히 말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경우에 뛰어들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세계 경제가 이렇게 운동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FTA를 회피해도 함께 갈 수 있는 것인가?(노무현 자서전 <성공과 좌절> 중에서)노무현의 입장은 '미국식 세계화"는 불확실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속에서 살기 위해서 '회피'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군사적 동맹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조건에서 경제적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거스를 수 없는 미국의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죠. 이런 틈을 비집고 김현종 같은 관료들이 미국에 유리하게 FTA 협상을 진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협정의 내용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국제적으로도 금융제도와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도 그리고 다른 나라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미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입니다.(2008년 11월, <민주주의 2.0> 누리집에서)노무현은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닥쳐오자 전술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점이 노무현 정신이란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우리 곁을 떠나니 빈자리도 커 보이고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새 시대를 열망하던 그가 불과 2~3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점입니다. 누구보다 열려 있고, 진보적이었던 그가 도대체 어떤 공포에 사로 잡혀 있었을까요? 다음 이야기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사실,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것이 해방될 때, 그리고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줄임)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만은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현실 속에 북측도 함께 발을 들여야, 시장에는 발을 디뎌야지 안 디디고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그런 해명을 좀 말씀드리고요.. 그래서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중에서)결국 살기 위해 미국과 친한 척해야 했다는 말입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크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 문제를 몇몇 개인의 문제로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사실 몇몇에게 국한된 문제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심각한 정신적 증상입니다.
미국에 도전하면 '종북'이 되는 사회... 어떤 두려움 때문일까
보통 식민지 잔재라고 하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서울대 교수 이영훈 같은 현재의 부역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친일파이면서도 아직도 대접받고 있는 과거의 부역자들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식민지 잔재는 '정신의 식민화'가 아닐까요? '우리는 약소민족, 시대의 대세, 어쩔 수 없는 일' 등을 내세우는 일종의 '자주성 포기선언' 말이죠.
위기가 오면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짐을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3월 말 한국에는 B2 전략폭격기가 날아왔습니다. 공중급유를 받으며 1만5천 킬로미터를 날아왔다는 이 스텔스기는 적(?)의 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 16발의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는 미국의 전쟁 선봉대라고 선전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12년간 연료 없이 항해할 수 있는 핵잠수함, 지하 30미터까지 파고들어가 터지는 벙커버스터까지 미 군수자본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들이 한반도를 겨냥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었어요. B2 스텔스기가 온 다음 날인 2013년 3월 29일 주요 조간신문은 일제히 이 스텔스기 사진을 1면에 실었고, 어느 신문도 사설란에 평화의 '평'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 국방장관 헤이글의 말을 인용하여 'B2는 방어용'이라는 기사만 쏟아냈죠. TV 방송도 물론 마찬가지였고요. 평화는 미국의 스텔스기가 지켜준다는 종교적 믿음을 강요한 것이죠.
미국의 적은 우리에게도 적인가요? 같은 민족끼리 대립하면 우리만 손해인데 왜 미국 비행기를 그토록 열렬하게 환영할까요? 상식적으로 다른 나라 군대가 우리나라를 지켜준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대세에 순응하는 것, 강대함을 쫓아가는 것이 때로는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새 시대'를 말합니다. 새 것과 낡은 것의 구분을 찾아야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새로움이라면 어쩌면 '새 시대'는 정신의 식민화를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강요되는 '미국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에 도전하면 한국사회에서 블랙리스트에 갇히게 됩니다. '종북'이 되고 말죠. 이것은 북한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요, 미국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요? 이제 여러분이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예술과철학(주)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