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 송우리에서 사업을 하는 산 친구(한서락)에게 지난 9일 전화가 왔다. "형님 내일 설악산국립공원 북설악 지역에 있는 회암사 경유 성인대(신선대) 산행"이나 가볍게 다녀오시자고.
아니 아우 설악산에도 화엄사가 있나? 화엄사가 아니고 화암사요. 아~~~ 그렇지 않아도 지난 일요일 '서울 둘레길' 도보 여행을 하고 2% 부족한 듯한 느낌에 동네 계양산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오려 했는데, 잘됐네 더 생각하고말고 할 필요 없이 OK 약속을 한다.
그리고 오후 아내에게 "여보 나 내일 새벽에 '설악산' 에 가니 요즘은 여름이라 차거워도 되니 저녁에 도시락 좀 미리 싸 줘요" 하니 "아니 이 양반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설악산엘 가냐"고 한다. 덧붙여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이 장마철에 웬 설악산 타령이냐"며 구시렁거린다. "아녀요 기상청 예보에 설악산 방면엔 비 안 오다던데 하니" 그러면 그렇지 "당신 그 똥고집을 누가 말리겠어요" 하더라.
어디 간다 온다 소리도 없이 마치 '부잣집 업 나가듯' 집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나섰다. "아니 저 여편네가 도시락을 싸 준다는 거야 못 싸준다는 거야?" 혼자 한동안 찧고 까불다 더 훼방 놓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예쁜짓 하나를 한다. "사람 맘이 부메랑" 같아서 '내가 준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는 속담을 생각하며 6학년 손자 녀석이 정신없이 어질러 놓은 집안을 정리하고 내친김에 청소기 돌리고 뻗뻗히 서서 닦는 걸레로 '흥부 부부의 슬금슬금 톱질하세'가 아니라 '슬금슬금 걸레질'을 하며 한바탕 청소를 하고 나니, 누구보다 "내 마음, 정신"이 그렇게 맑고 깨끗할 수 없다.
|
▲ 친구따라 설악산 화암사 숲길 우중 산행 비오는날 친구따라 설악산 화암사 숲길 우중 산행에 나서 체험한 산행길 동영상 기사 입니다.
|
ⓒ 윤도균 |
관련영상보기
|
이후 아내가 돌아오는데, 슬쩍 곁눈질로 훔쳐 보니 아내의 손에 내일 도시락 쌓을 반찬거리 재료를 사 들고 들어와 집안을 살핀다. 그러더니 아니 "당신 대청소 했네요"하며 조금 전까지 멋대가리 없이 뻣뻣하게 비 오는데 설악산에 간다며 구시렁거리던 아내가 어쩌면 그렇게 사근사근 살갑게 달라져 수고했다며 수박이랑 자두를 내놓으며 고맙다고 치사를 한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여보 몰랐지 내 작전"였는데…, 고맙긴 뭣이 고마워 직장도 아니고 가정에서 여자 할 일, 남정네 할 일 따로 있나? 그것도 일 년 전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100% 오리지날 백수인데" 어쩌다 마누라 바쁜 손길 돕는 것이 뭔 공로라고 치사를 받는단 말인가 나 혼자 킥킥 웃었다. '부메랑' 원리를 다시 한번 도리키며 사는 것이 어쩌면 '연극'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행 날 10일 오전 5시 일어나 보니 아내는 벌써 일어나 가족들 잠깰까 까치발을 들고 정성스레 준비한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건네주며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당부를 하고 새벽 예배를 간다. 나는 일행들을 만나려 부평에서 한 시간 반여 달려 도농역에 도착했다. 동화중고 앞에서 일행들을 만나 경춘고속도로를 달려가는데 분명히 안 온다고 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홍천 IC를 빠져 나와 '화양강랜드 휴게소' 부근에 이르니 폭우로 변해 세차게 쏟아진다.
거참 이상하다. 분명히 오전 6시까지 설악산 지역 일대에 비가 안 온단 일기예보를 확인했는데 불과 몇 시간 사이 예보가 바뀌어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니... 그러다 보니 비도 비지만 한 수 더 떠 안개, 구름이 잔뜩 껴 조망이 완전 '오리무중' 상태다. 그러자 한서락 아우가 "형님 모처럼 설악의 비경 보러 왔는데 이 무슨 낭패냐"고 하지만, 어디 비 오는 것을 사람이 임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조화인 걸 속상해하면 뭘해 마음만 상하지, 모든 것은 그날 운(運)에 맡기자구, 우리 운이 있으면 설악산 비경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니 너무 속상해 말고…. 현지에 도착해 상황 보아 산행이 비로 정 어려우면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나온 김에 속초 바닷바람이나 쐬고 오자."
이렇게 말하니 일행들 모두 다 좋아한다.
화엄사(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 산136-31)에 도착했는데도 아직도 비가 내린다. 그러나 가까운 곳도 아니고 이렇게 먼 곳까지 달려와 비가 온다고 멋쩍게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았다. 우산을 바쳐들고 '회암사'나 한 바퀴 돌아보고 추후 일정을 정하기로 한다.
'회암사'는 "신라 혜공왕 때 징표율사가 화암사(華巖寺)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을 조선 인조 1년(1623) 소실됐다. 인조 3년(1625)에 중창 등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던 중 고종 1년(1864)에는 현재의 자리인수바위 밑에 옮겨 짓고 이름도 수암사(穗岩寺)라 하였다가 1912년에 다시 화암사(禾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6·25 전쟁 때 다시 불에 타 훗날 법당만 개축하고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에 맞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중창하였으며 현존 건물로는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도 군(浮屠群)과 일부 계단석이 남아 있다." <화엄사 안내문 발췌>화암사 관람을 마치고 나니 계속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곳 회암사의 명물 '수바위(일명 쌀바위' 탐방을 위해 '화암사'일주문 입구에서 좌측으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비탈길을 15분여 힘겹게 오르니 바로 그곳에 '수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비가 내리는 데다 안개와 구름으로 조망이 없는 상태에서 수바위에 오르려 시도하지만 바위가 워낙 미끄러워 혹시라도 실족 사고가 염려되어 더 오르기를 포기하고 내려서 '수바위' 전설을 살펴본다.
"수바위는 계란모양의 바탕 위에 왕관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고 웅덩이에는 항상 물이 고여 가뭄이 오면 이 웅덩이 물을 퍼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후 수바위 이름의 '수 자가 (水 물 수)'자 라 주장하는 이도 있었으나 워낙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秀 자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화암사'는 민가와 워낙 멀리 떨어져 시주를 구하기 어렵던 어느 날 이 절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꿈을 생각하며 수바위에 올라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와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히 도량에 열중했는데,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객승 한 사람이 찾아와 이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객승은 세 번 흔들어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음날 일찍 수바위에 올라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선 엉뚱하게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이 산신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수바위 안내판 내용 발췌>
수바위 오르기를 포기하고 나니 비가 잠시 소강상태라 우리는 이 기회를 노칠새라 내친김에 우중 산행을 각오하고 성인대(일명 신선대 : 강원도 토성군 토성면 원암리)를 향했다. 바람도 없이 가파르게 이어지는 깔딱 고개 구간을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며 40여 분 오르니 '땀은 범벅이지요. 비로 디카는 습기'가 찾아온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사면초가' 상태. 영락없이 어느 유행가 노랫말처럼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내가 왔던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신선대 바위 펑버짐한 장소에 올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섯 이 정답게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좌측 신선봉 1214m 방면이 멀뚱멀뚱 구름이 걷히는 듯 나타난다. 서둘러 신선봉에 오르니 거짓말 조금 보태 축구장 넓이 크기의 마당바위에 드문드문 공룡 발자국 같은 큰 웅덩이가 나 있고 장맛비로 웅덩이에 물이 가득 고였다. 신기한 일은 여기에 어디서 어떻게 부화를 했는지 이름 모를 희귀종 개구리 수십 마리가 짝짓기를 하며 집단 서식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개구리는 알에서 부화해 올챙이가 되었다가 개구리로 성장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개구리 알이 바위 어디에서 부화해 저토록 많은 개구리가 서식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더 신기한 것은 타 종류 개구리는 일체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더 궁금하다. 마당바위를 지나 백두대간 샛길로 이어지는 암릉길 빗탈길 방면은 안개와 구름으로 오리무중 상태라 더 진행도 어려웠다. 비경도 꼭꼭 숨어버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되돌아서 '화암사 '방면으로 하산을 했다.
이곳 회암사 주변 등산로는 최근 새롭게 조성한 듯 곳곳에 계단 공사 흔적이 있다. 등산로 주변 잡목 제거 작업을 해 다행히 후줄근하게 옷이 젖지 않고 편안하게 화암사 뒤편으로 내려섰다. 이날의 산행을 모두 마치고 서둘러 귀갓길에 들어 '옛 미시령 고개'를 지나 강원도 인재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황태마을(황태 축제장)에 도착해 전망대에 올랐다. 주변 경관과 용대황태전시관을 돌아본 후 황태구이로 이른 저녁을 맛나게 먹고 귀갓길에 들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