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민모임 '즐거운 교육상상'에서 일하며, 성북구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복지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도부터 서울시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해 시민들에게 사업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지역회의가 따로 구성되지 않아 각 구의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지역회의 역할을 맡아 사업을 발굴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성북구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각 분과별로 사업 제안을 받았고, 전체회의를 통해 사업 우선순위를 선정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제출했습니다.
복지분과 사업 제안 가운데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을 위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운영 방안이 제출됐고, 분과위원들의 적극적인 찬성으로 전체회의에 올라갔습니다. 전체회의 안에서 수많은 논의 끝에 꽤 많은 위원들이 찬성을 해주셔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제안사업으로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업을 제안한 배경은 성적 지향과 정체성의 차이 때문에 차별을 받으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이 시급히 필요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13~23세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논문(청소년 동성애자의 동성애 관련 특성이 자살 위험성에 미치는 영향,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 2005년)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정서적인 고립을 경험하면서 자살·우울증·성적일탈행동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인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반동성애 폭력은 연구 대상자의 절반이상(52.9%)이 경험했을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이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자살의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2003 한국 청소년상담원 보고에 있어서도 '가까운 친구가 동성애 성향이 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거부하는 행동(79%) 이 수용적 태도(17%)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탈학교·탈가정하는 청소년들은 대개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숙식을 하거나 거리에서 생활합니다. 성매매에 노출돼 있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청소년 쉼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웃'인 성소수자 배척하는 기독교 언론서울에서 최초로 인권도시조례가 만들어진 성북구에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인권도시성북'을 구현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센터의 역할은 성북구에 위치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과 교사·청소년 상담가들을 대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성정체성과 자신의 성별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 그리고 적절한 상담과 지원이 무엇인지 그 고민을 담은 내용을 매뉴얼(책자·영상)로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또한 다르다고 차별받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평등한 학교가 필요하다는 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하고, 가족과 또래친구들, 학교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지원하고 상담하기 위한 기초시스템을 마련합니다.
이 사업은 서울시주민참여예산위원들의 긍정적인 평가로 주민참여예산총회에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 6월 서울시주민참여예산 여성보육분과위원들이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현장실사를 나와 여러 가지 질문이 오고간 내용이 왜곡돼 <국민일보> <크리스찬 투데이>와 같은 기독교계 신문에 실렸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는 지난 7월 3일 "서울시 예산을 동성애 옹호와 조장에 이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기사(
성북구에 혈세 5900만원 들여 '성소수자 상담소' 설치 추진... 교계 "동성애 옹호�조장 우려")를 내보냈으며, <크리스찬 투데이>도 같은 날 '즐거운 교육상상' 단체명과 '말썽'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동성애를 조장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업에 서울시와 성북구가 예산을 쓰려한다는 내용의 기사(
서울 성북구, '성소수자 지원센터' 추진 논란)를 내보냈습니다.
이 건과 관련해 두 가지 문제제기를 합니다.
첫 번째는 어떻게 현장실사 녹취파일이 언론사에 전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장실사 당시 어느 누구도 녹취의 사실을 모를 만큼 녹취 동의 과정도 없었던 파일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여성보육분과의 우선순위 논의과정 절차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사에 그대로 전해진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 기자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녹취 파일이 <국민일보>를 비롯한 기독교계 신문에 넘어 갔으며 넘긴 당사자에 대한 신원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예산의 사각지대와 소외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주민들이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게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도입된 취지입니다. 성적 소수자들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지만 마치 없는 사람 취급당하며 예산 소외지대에 있어 왔습니다. <국민일보>를 비롯한 기독교계 신문의 보도들은 차별적 상황에서 사회적·정서적 고립을 경험하며 힘든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긴급하게 필요한 예산 제안임에도 저런 악의적인 보도를 통해 소수자를 위한 예산 제안 통로조차 막아버리는 악의적인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성적 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대한민국의 상황 속에서 성소수자를 지원하고 인식개선을 위한 센터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동성애가 조장된다고 하는 생각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그들만의 망상일 뿐입니다. 마치 비혼모들을 위한 지원 센터가 생긴다고 하여 비혼모들이 많아지느냐 하는 문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얘기하는 하느님의 창조질서 안에 성적 소수자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들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이가 바로 '이웃'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0:25~37, 공동번역)진정 기독교인들이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기꺼이 사마리아인이 되어 살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강도 만난 이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노동자들이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밀양과 강정·홍천 등지의 농민들이며, 자신의 가정에서조차 존재를 부정당하는 성적 소수자들과 이주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문에서, 강정에서, 밀양에서, 홍천에서, 그리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곳에서 당신의 이웃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예수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진정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돼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에도 보내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 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