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재산 환수를 위해 경제검찰이 뒤늦게 총동원되고 있다. 16일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에 이어 전씨 가족 회사 등에 대해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도 전방위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국씨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에 대한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세워 비자금을 빼돌린 의혹을 받아왔다.
국세청과 금감원 등은 재국씨와 시공사를 상대로 불법외환거래와 역외탈세 등의 혐의를 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 역시 시공사를 비롯해 전씨 가족 소유의 회사와 부동산 등의 자금흐름을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 비자금, 시공사 통해 드러날까... 검찰 압수수색-국세청 역외탈세 조사
시공사의 전두환 비자금 은닉설은 지난 2004년 7월 재국씨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Blue Adonis Corporation)'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버진아일랜드는 세금회피 등의 목적으로 전세계 기업과 개인들이 회사를 세우는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꼽힌다.
비영리독립언론인 <뉴스타파> 쪽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씨는 당초 자본금 5만달러짜리 회사로 등록을 마쳤지만,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1주만 발행된 서류상 회사였다. 그는 2004년 8월13일 이사회에서 단독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뉴스타파> 쪽은 "블루 아도니스와 연결된 해외 은행계좌로 자금을 움직이려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블루 아도니스의 법인 계좌를 만든 곳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이었다.
특히 이 회사가 세워졌던 때는 검찰이 전씨 동생인 재용씨에 대해 조세포탈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검찰은 당시 전두환 비자금 가운데 73억 원이 재용씨에게 흘러들어갔다고 밝혔다. 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를 만들고, 외국 은행 계좌로 빼돌리려했던 돈 역시 역시 전두환 비자금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국세청 역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세청은 재국씨 등을 상대로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역외탈세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초 이미 시공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도 진행했다. 시공사에 대한 과세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세청 관계자는 "시공사에 대한 과세 자료와 최근에 드러난 싱가포르 계좌 등과의 자금 흐름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국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세웠을 당시를 전후로 시공사의 자금흐름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 조사와 함께 정작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의 전씨 해외계좌 정보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는 조세협약이 체결돼 지난달 28일부터 정식으로 발효된 상태다. 국세청은 싱가포르 당국에 전씨의 아랍은행 계좌에 대한 정보제공을 요청할 방침이다. 김덕중 국세청장도 지난달 국회에서 "싱가포르와 조세협약이 정식 발효되면 정보공유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전씨 계좌에 대한 정보 공유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금감원도 불법외환거래 여부 조사 착수... 싱가포르와의 정보 공유도 관건
금융감독원도 전씨 등에 대한 불법외환거래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이날 재국씨를 포함해 이수영 오씨아이(OCI) 회장과 최은형 한진해운 홀딩스 회장 등 184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쪽에서 공개한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 혐의자가 대부분 포함됐다. 금감원이 조세피난처를 통한 외환거래법 위반 여부를 대대적으로 조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금감원은 재국씨를 상대로 외국환 거래와 관련한 자료를 요청하는 등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행 외환거래법은 국내 거주자가 해외 직접투자나 부동산 취득 등 거래를 할 경우 거래은행 등에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 또 해외로 돈을 보낼 때도 거래목적과 내용을 해당 거래은행의 외환업무 담당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도록 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국씨를 포함해 최근에 언론에 불거진 조세피난처 관련 탈세혐의자에 대해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면서 "일부 인사에 대해선 조사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