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국회 브리핑 과정에서 언급한 이른바 '귀태(鬼胎)'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더니 '사실상' 민주당의 굴욕적 패배로 막을 내렸다.
시작부터 혼란스럽더니 정리되는 과정 역시 혼란스러웠다. 처음부터 새누리당이 '귀태'라는 단어를 두고 분노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당사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별스럽지 않았던 이 일이 파문으로 커진 것은 청와대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누리당에 전달되면서부터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단도직입으로 표현한다면, 귀태의 대상으로 지목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분노'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야당인 민주당 지도부가 이에 대해 쉽게 고개 숙인 사실에 대해서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지나간 논란 '귀태'를 다시 꺼내 분석해 보고 싶다. 사실 '귀태' 논란은 이미 끝난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귀태' 불씨, 정치 일정을 불태우다지난 12일, 청와대 춘추관에 나타난 이정현 홍보수석이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을 향해 강하게 항의하면서 파문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이 수석은 홍익표 의원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 내용을 인용하며 쓴 '귀태'를 문제 삼았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귀태'는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으로 쓰이며 홍 의원은 이러한 '귀태' 대상으로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전 대통령)와 기시 노부스케(1957년 일본의 총리, 후에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횡포로 국민의 거센 비난 끝에 1960년 총리직 사퇴, 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홍 의원은 "이들 (귀태의) 후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
이정현 수석이 홍익표 의원을 향해 공식 사과를 요구한 이 항의가 이른바 '귀태' 표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임을 알게 된 정치권 기류는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예정되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일정이 중단되는 등 모든 정치 일정이 멈추어버렸다.
예상치 않는 곳에서 터진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반응에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국정원 국조와 대화록 열람을 통해 공세의 고삐를 잡겠다는 계획이 어긋나면서 민주당의 행보가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민주당의 사과, 과연 옳은가과정은 복잡했지만, 결국 정리하면 민주당은 귀태 파문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완패를 선언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이 그런 말도 못 하냐"며 목청을 높일 만한데 미묘한 유교적 관점에서의 비난 가능성으로 그저 쩔쩔매다가 결국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익표 의원은 원내대변인 자리를 내놓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김한길 당 대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향해 사과했다. 명분은 원만한 국정조사를 회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른바 '귀태'와 관련한 사과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새로운 출발임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해찬 의원의 15일 발언에 대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반응이 그것이었다.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당원 행사에서 "(국정원과 단절해야) 당신(박 대통령)의 정통성이 유지가 됩니다. 자꾸 비호하고 거짓말하고 하면 오히려 갈수록 당선 무효까지도 주장할 수 있는 세력이 자꾸 더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 이를 '막말'이라고 주장하며 다시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당 인사의 발언 하나하나를 문제 삼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부모를 누군가가 비난한다면 이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맞다. 198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를 다닌 기자의 경험도 그러하다. 당시 같은 반 학생이 싸우면 선생님은 야단치면서 "네 부모님 욕하는 것 아니면 싸우지 마라"고 훈계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벌어진 귀태 논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한' 효녀 딸을 두어서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공인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존재에 대해 그 누구도 함부로 비판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존엄'으로 등극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양면이 존재하는 공인이다. 그의 생전 업적에 대해 누군가는 기념관까지 지어가며 추앙한다. 또한 특정 정당과 지역에서 그는 사후에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공인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진 그에 대해 생각이 다른 누군가는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민주국가라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무슨 문제냐며 말할지 모르지만, 그가 일제 치하에서 보여준 친일 행각과 이어진 군사쿠데타를 통한 권력 찬탈 역시 결코 그를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가족관계 틀 속에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외국 언론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라 부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귀태' 파문 과정에서 이러한 비판의 자유가 결정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현 지도부가 '귀태' 파문을 조속히 매듭 짓자며 너무나 쉽게 사과해 버린 일이다. 사실 이 사과를 통해 문제가 봉합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정으로 진입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매우 중요한 권리, 즉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해찬 의원의 발언에 대해 재차 기세 등등한 목소리로 집중 포화를 날리는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언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와대 이정현 수석은 야당을 향해 "민주당이 대선 무효 협박을 하고 있다"며 대선 결과 불복 여부에 대해 공식입장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황당한 것은 이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반응이다. 이미 확인된 부정선거의 사실마저도 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에 불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국정 운영에 불복하는 것입니다."100전 100승. 새누리당이 원하면 그 방향대로 들어준다는 비아냥이 국민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처럼 정치적 타협을 통한 '파문 확산 차단'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국정원 국조는 옥동자다. 사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천만의 말씀이라고 반박하지 않을 수 없는 발언이다.
민주당 지도부, 지지자 믿고 야성 회복해야'국정원 국조'는 결코 옥동자가 아니다. '국정원 국조'야 말로 진짜 '귀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권력형 부정 선거가 벌어졌고 이러한 부정 선거의 진실을 밝혀야할 책임이 있는 경찰이 재차 은폐, 조작을 통해 부정선거를 완성시킨 사건이 바로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권력 부정선거의 수혜자인 현 정부 연관성을 포함하여 진실을 밝히자고 추진되는 이 국정조사는 사실 태어나서는 안 될 '귀태', 그 자체인 것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국민적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스스로가 진실을 밝히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지금 형국은 오히려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밝혀진 사실에 대한 확인 사살'을 언급하며 가해자를 압박해야 하는데 의도적으로 이를 회피하고자 별별 시비를 다 거는 가해자에게 사정해서 조사에 임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말하건대 진실은 사정하고 빌어서 얻을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조사는 쉽게 말해서 '기세 싸움'인데 이미 기울어버린 이 상태에서 과연 어떤 방법으로 무슨 진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적지 않은 시간동안 '국가기관의 조사관으로 일해온' 기자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가해자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싸우기에 부담스러운 상대방 선수마저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는 황당한 주장도 거침이 하고 있다. 마치 장기를 두는데 '차', '포'를 모두 포기해야 장기를 시작하겠다는 식의 주장이다.
문제는 장기를 이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상대방이야 무슨 주장이든 할 수 있는데 이를 요구받은 당사자가 보이는 무력감이다.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이같은 야비한 요구에 대해 부당함을 항의하며 국민에게 함께 싸우자고 호소해야 한다. 정 안 되면 '장기판을 들어 엎는' 용맹성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는 점이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장기를 두고 말겠다는' 목적 외에는 무슨 전략이 있는지 묻고 싶다.
묻고 싶다. 과연 그렇게 해서 장기를 두면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정말 새누리당이 요구하는대로 김현 의원과 진선미 의원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사퇴시키고라도 꼭 장기를 두라고 요구한다고 보는가.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지난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표들이 다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벌어진 이번 귀태 논란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얻은 이익은 적지 않다. 우선 '우리 사회에도 존엄은 있다'고 생각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쩌면 최고 존엄인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민주당이 더 이상 비판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명분과 관행을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다가오던 '부정선거 수혜' 시비에 대해 공세를 차단시키고 이러한 매개체가 될 수도 있는 국정원 국조를 사실상 '이미'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민망할 정도다. 결국 17일 오전, 민주당 지도부는 스스로 옥동자라 칭한 '국정원 국조'를 한다며 새누리당의 요구대로 김현-진선미 의원을 사퇴시키고 말았다. 과연 이것이 옳은가. 귀태 파문에 이어 야당 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을 한 이해찬 의원의 연설에 대해서도 또 다시 논란이 불거질까 두려워만 하고, 그래서 대선 불복이 아니라며 이정현 수석의 물음에 답해주는 민주당 지도부를 보며 이 나라 야당 지지자들은 누굴 믿고 싸울까 걱정이다.
장준하 선생께 묻고 싶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역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는 것은 그 딸이 대통령으로 있다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을 통한 사회적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을 행사할 때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은 세 번 감옥에 가야 했다.
그리고 그중 두 번은 연설 도중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했다며 '국가 원수 모독죄'로 감옥에 보내졌다. 기자는 이번에 귀태 논쟁을 지켜보며 1988년 12월 폐기된 이 법이 다시 떠올랐다. 존경은 강요나 겁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과 국민에게 화를 낸다고 진실이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분노가 정당할 만큼 홍익표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채 발견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장준하 선생에게 이 문제를 여쭤본다면 그는 무엇이라고 답했을까.
"장 선생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귀태입니까? 아닙니까?"권력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이제 4년 6개월 남짓의 시간만 남았다. 지금 민주당 두 의원의 사퇴 여부를 명분으로 '의도적' 보이코트를 하고 있는 '국정원 국조' 시간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임기 역시 함께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5년을 마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불거지는 모든 의혹을 당장 깔끔하게 소명하지 못한다면 먼 훗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할지 모른다.
"2012년 12월 16일, 국정원이 개입한 관권 부정선거를 은폐, 조작한 경찰의 허위 발표를 통해 '사실상'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3. 15 부정 선거에 비견되는 '관권 부정선거'였다. 또한 4.19 혁명을 통해 합법적으로 세워진 민주당 정부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쿠데타로 무너뜨린 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그 부녀에 의해 훼손된 두 번째 '치욕의 역사'였다."야당만 이기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부정선거 의혹의 진실을 국민은 알 권리다. 또한 이는 박근혜 정부를 반대하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 정부의 정통성을 '스스로 확립하기 위해서'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진실은 느리지만 '반드시' 정의를 찾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