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곡 계곡 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 같다 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1584~1624)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배롱나무를 심어 가꾼 정원이다.
소쇄원이 깊숙한 계곡에 자리 잡아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면 명옥헌은 산언덕 툭 터진 곳에 터를 잡아 눈맛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 유홍준은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못 주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장엄하게 포치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야를 끌어들임으로써 더없이 시원한 공간을 창출한 뛰어난 원림"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배롱나무에 대한 전설 하나. 평생 바람을 피우던 미운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의 묘 옆에 배롱나무를 심었단다. 배롱나무 꽃은 향기가 없고 더운 여름에 백일 동안 질리게 피는 까닭에 바람둥이 남편이 죽어서도 향기 없는 여자와 한여름 뜨거운 백일 동안 묘 옆에서 괴로움을 당해보라는 뜻이 숨어 있단다.
물 빠진 연못황지우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나무가 나의 화엄(華嚴) 연못, 물들였네 이제는 아름다운 것, 보는 것에도 질렸지만 도취하지 않고 이 생을 견딜 수 있으랴 햇빛 받는 상여처럼 자미꽃 만발할 제 공중에 뜬 나의 화엄 연못, 그 따갑게 환한 그곳;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고 돌아와야 편한 정신병원 같은 나의 연못, 나는 어지러워서 연못가에 진로(眞露) 들고 쓰러져 버렸네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나무가 나의 연못을 떠나 버렸네 한때는 하늘을 종횡무진 갈고 다녔던 물고기들의 사라진 수면(水面); 물 빠진 연못, 내 비참한 바닥, 금이 쩍쩍 난 진흙 우에 소주병 놓여 있네. ※ 시인 황지우는 명옥헌 전체가 보이는 연못 옆에 통유리를 끼운 작업실을 갖고 있었기에 그의 시 한 수를 소개한다.